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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Dec 09. 2023

그것은 그것이고

    아이이거나 어른이든지 한 시간을 소중하게 보냈으면 싶다. 식물교실 수업계획서를 짜면서 내 안에 정리가 되고 수업에 오는 이들도 한 번 읽고 시작하면 이해가 잘 되는 것만 같다. 후기를 주라거나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 달라는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 수고한 보람이 있다. 수업과 동시에 모든 것을 다 마무리 짓고 싶다.

 

 집에 복사기 잉크를 넣지 않은지 오래다. 필요할 때는 남편에게 부탁하여 쓴다. 남편은 도움을 주고 싶어 수정해야 할 것이 있으면 매끄럽게 만들어 온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마누라 도와주어서 보람을 느끼겠다고 하면 그저 웃는다.

 

  남편은 젊을 때부터 정리하는 것을 잘하는지 모임에서 서기를 자주 했다. 어쩌다 시 한편씩 쓰면 시어들이 반짝이기도 한다. 시가 안 되는 나는 “당신 하고 나하고 나중에 책 한 권 같이 내자”며 웃을 때가 있다.


 두 번째 리스 만들기를 하러 가는데 그림책 제목을 적고 장소가 다르기에 약간 고쳤다. 첫 번 교안을 남편이 한 줄 고쳐 왔었는데, 그때는 오전에 보아야 되기에 그대로 가지고 갔었다. 이번에는 시간이 되니 남편이 고친 부분을 본디 내가 했던 대로 바꾸어 적어 메일로 보냈다. “미안한데요. 교안 손보지 말고 그대로 빼오면 좋겠어요.”하고 카카오 톡을 따로 보냈는데 아무 답이 없다.


 그 말 그대로 두어도 뜻이 달라지지 않는데 왜 그냥 넘어가지 못할까. 내가 쓴 말은 ‘귀여운 솔방울들이 매달린다’인데 남편이 고친 문장은 ‘하얀 솔방울이 귀요미를 뽐낸다’이다. 잣나무 솔방울과 히말리야시다 솔방울에 흰색물감을 입혔으니 틀린 말도 아닌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닌 것 같다.


 후기가 너무 좋다고 한다는 말을 건네 들어서인지 더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적은 후기를 보면 ‘한 해를 마치며 식물교실로 리스를 만들게 되어 참 즐겁다. 몸도 마음도 쉼이 필요한 시간에 레이스 같은 측백나무의 진초록과, 더글라스의 은빛 이파리, 유카리가 어우러져 리스가 된다. 귀여운 솔방울들이 매달린다. 작은 도서관에 은은하게 퍼지는 피톤치드의 향기. 마지막 달을 알차게 마무리하는 것 만 같다.’이다.


  어떻게 보면 남편 표현이 더 정겨울 수도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저렇게 표현하는 것을 참고 있어 거슬렸다. 내 글이 무게감이 없는 것 같아 조심하고 가벼움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시의 표현과 산문의 늘어놓는 방식인가 싶기도 하고. 이제라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 보아야겠다.


 집에 들어온 남편이 부탁한 수업계획서를 책상에 던지 듯 내려놓는다. “차 한 잔 드릴까요.”하는데 대답이 없다. 속이 상했다는 뜻이다. 이 모양 저 모양 아내 도와주기를 좋아하는데 그것 한 줄 못 넘기고 속을 불편하게 하는가 싶어 조금 미안해진다.


 겉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얼마든지 괜찮다. 비싼 색지에 복사해 오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돋보이게 할까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주는 것도 괜찮다. 실제로 딱딱 맞게 문양을 넣거나 단정하게 정리를 잘해 온다. 내가 조금 산만하기에 교정받는 느낌도 때론 들어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은 그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거나 흔드는 것 같을 때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으니. 남편이 틀린 것도 아니고 내가 꼭 맞는 것도 아닌데 뭔가가 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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