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의 PB(Private Brand) 사업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유통 마진을 줄이고 장기적인 수익성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PB 상품으로 무게중심이 과도하게 이동할 경우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인 제품 다양성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PB 제품이 플랫폼의 주요 위치에 조금이라도 많이 노출될 경우 'PB 상품 밀어주기'라는 의심을 받기 쉽고, 규제의 대상이 될 우려도 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아마존과 같은 대형 이커머스 업체들은 오히려 PB 사업을 축소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PB 사업을 강화할 때 이른바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무신사의 전략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아주 잠시만 옛날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무신사는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트릿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공간으로, 태생적 특성상 대중적인 이미지라기보다는 '힙한'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요. 그 결과, 상대적으로 패션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신사 스탠다드(이하 무탠다드)'의 출시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개성 강한 입점 브랜드의 제품과 달리, 무탠다드는 베이직한 디자인을 중심으로 제품을 전개함으로써 기존 제품들과 조화롭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하고 소비자 층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통상적으로 '기본템' 라인업은 어느 브랜드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이 더욱 치열하기 마련인데요. 그런 가운데 무탠다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무탠다드는 기본에 충실하지만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습니다. 모던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을 접목시키며 '무신사룩', '모나미룩' 등을 유행시켰고, '무탠다드만 입으면 기본은 간다'라는 인식을 형성시켰는데요. 특히 유튜버 ‘핏더사이즈’와 협업한 ‘시티 레터 컬렉션’이 인기를 끄는 등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한 결과 기존 SPA 브랜드와 다르게 ‘멋있는’ 브랜드로 포지셔닝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무탠다드는 PB 상품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성장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출시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고객 구매 후기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피드백을 실제로 반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에 따라 신규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온 결과, 2종이었던 슬랙스는 43종까지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탠다드는 가성비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PB 상품은 인기 있는 상품을 유사하게 제조하여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전략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가성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많은 PB 상품들이 품질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요. 이와 달리 무탠다드는 저가 경쟁을 고집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들은 '데일리 제품'의 비율이 높은 가운데, 높은 품질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쌓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무탠다드가 약 10년 동안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무탠다드가 꾸준히 성장하면서 존재감이 커지자, 서두에 언급했던 ‘줄타기’라는 숙제를 받게 됐는데요. 무탠다드는 시선을 외부로 돌리며 이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무신사 온라인 스토어를 뛰어넘어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며 판매채널을 확대해 나가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자사 플랫폼 노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단순한 PB 제품을 넘어 하나의 SPA 브랜드로서 정체성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24년 5월을 기준으로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스토어는 총 10곳에 이릅니다. 2021년 5월 홍대 인근에 첫 번째 오프라인 스토어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를 오픈하며 가능성을 확인했고, 엔데믹을 기점으로 신규 오픈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중심이었던 상권 분포도 대구(동성로)와 부산(서면) 등으로 확산되며 다양한 지역에서 오프라인 브랜드 경험을 희망하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부산 서면점 역시 오픈 직후 방문객이 4일 간 2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약 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전국적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대구 동성로 지점은 월평균 방문객이 12만 명에 달하며, 동성로 상권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구 동성로는 코로나 이후 방문객이 확연히 줄어 지자체에서는 정기 공연 등을 통해 활성화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했는데요. 그럼에도 방문객은 쉽게 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무신사 스탠다드 동성로점이 오픈하자 상황이 반전됐고, 방문객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동성로상인회 회장은 "무신사 스탠다드가 들어선 후 평상시에 동성로를 찾지 않던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니 비슷한 매장도 들어서기 시작해 얼어붙은 동성로 상권에 온기가 돌고 있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무신사의 오프라인 진출은 단순한 로드숍 단독 매장 오픈에 그치지 않습니다. 현대백화점 중동점, 롯데몰 수원 등 주요 유통 3사와 협력을 통해 고객 접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롯데몰 동부산점,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등의 추가 입점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백화점과 복합몰 입점은 무탠다드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브랜드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무신사의 행보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 발표됐습니다. 바로 파리 올림픽 대회 출전 대한민국 대표 선수단 개·폐회식 단복 디자인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나온 것인데요. 이쯤 되면 무탠다드는 더 이상 Private Brand가 아닌 Public Brand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신사는 지금까지 쌓아온 무탠다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SPA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거점 기반의 플래그십 스토어의 성공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유통사 진출을 가속화할 예정이며, 기존의 주 고객층인 10~20대 남성을 포함해 30대 이상 직장인, 여성, 가족 단위까지 타깃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무탠다드의 계획에 도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SPA 시장에는 유니클로, 탑텐, 스파오, 에잇세컨즈와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는데요. 특히 유니클로는 전국적으로 160여 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탑텐과 스파오는 유니클로 불매 운동의 여파와 고물가 영향으로 빠르게 성장한 만큼 이들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러나 ‘팝업스토어’와 ‘더현대’가 인기를 끌고 있는 최근 소비 트렌드를 감안했을 때, 무탠다드가 경쟁에서 다크호스로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팝업스토어는 물리적 공간에 브랜드의 메시지를 담고, 다양한 체험 요소들을 통해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 역시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매장 하나하나가 팝업스토어의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SPA 브랜드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로, 최근의 소비 심리와 맞물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오프라인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궁극적으로는 국내 대표 SPA 브랜드로,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이 글은 무신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