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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Jun 24. 2024

배민 사용자는 왜 계속 늘지?

꺾이지 않는 상승세


지난 4월 쿠팡이츠가 무료배달을 선언하면서 배달앱 시장이 시끌시끌했습니다. 곧이어 배달의민족(이하 배민)과 요기요가 무료배달에 동참하면서 쿠팡이츠의 차별점은 다소 약화됐지만, 쿠팡이츠는 먼저 시도한 공을 인정받아 요기요와의 순위를 뒤집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요기요와는 반대로 배민의 이용자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겉으로 보기에 배민이 다른 배달앱보다 특별히 나아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점인데요. 고객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바잉 포인트인 가격 측면에서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쿠팡이츠나 요기요보다 매력이 떨어지며, 배달 속도 역시 일반인이 체감할 만큼 확연하게 빠른 느낌도 아닙니다. 배달 속도는 주문 상황에 위치에 따라 복불복인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주요 배달앱 월간 사용자 추이 (출처 : 와이즈앱·리테일·굿즈)


배민이 위기를 겪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쿠팡이츠는 무료배달 전략 이전에도 단건배달이나 와우멤버십과의 연계를 통해 할인쿠폰을 제공하며 위협을 가했고, 요기요는 구독제 멤버십을 통해 이용자를 묶어두려는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쿠팡이츠와 요기요 서로의 점유율만 뺏고 빼앗길 뿐 배민과의 격차는 오히려 계속해서 벌어졌습니다. 여기에 배달산업의 역성장, 공공배달앱과 땡겨요, 두잇 등 신규 경쟁사의 등장에도 배민의 입지는 굳건한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단순히 선점효과로 치부하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를 출시한 배달통과 요기요 등과의 대결에서도 늘 우위를 점하던 배민인데요. 그렇다면 배민은 왜 계속 사용자가 늘어나는 걸까요? 


이상한 현대카드


배민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기에 앞서 잠시 현대카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은 전통적인 빅3 구도(신한, 삼성, KB)를 깨고 신용카드 결제액 2위에 오른 현대카드이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적자에 시달렸었는데요. 당시 구원투수로 발탁된 정태영 대표이사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를 디자인으로 삼으며 '세련미'와 '경제성'이라는 키워드로 브랜딩을 시도했습니다. 


IDEA Design Award 2021 수상한 MY BOOST 카드 플레이트 (출처 : 현대카드/커머셜 뉴스룸)


2003년, 국내 최초로 전용서체를 개발하여 적용했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와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카드 옆면에 색을 넣거나, 돌출형이던 카드번호를 평면형으로 바꾸었고, 라운드형 모서리를 직각 형태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컬러를 적용하여 사용하는 고객들로 하여금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더 나아가 현대카드는 신용카드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문화 마케팅을 시도했습니다. 2007년부터 매년 '슈퍼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평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세계적인 유명 음악인을 초청해 공연을 열었고, '컬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극, 전시 등 다양한 문화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문화 마케팅은 전통적인 신용카드사의 이미지를 혁신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과거 신용카드는 과소비를 유발하고 서민들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지만, 현대카드는 브랜딩을 통해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사용자 경험을 중시함으로써 신용카드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경쟁사보다 혜택이 크지 않더라도 현대카드는 선택하게 만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듯 같은 배민


분야는 다르지만 배민은 현대카드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배민의 창업자 김봉진 의장은 초창기부터 다른 것보다 디자인에 가장 많이 집중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배민의 성공 요인으로 UI/UX를 언급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현대카드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폰트를 개발해서 배포하고, B급 문화와 키치함을 내세운 광고를 통해 배민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배민 옥외광고 (출처 : 우아한형제들)


또한, 현대카드가 콘서트 등으로 문화 마케팅을 시도했듯 배민도 '배민신춘문예', '치믈리에 자격시험' 등 참여형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사용자가 스스로 시간을 쏟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2022년에 열린 배민신춘문예는 무려 53만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센스 있는 작품을 출품하려는 욕심 때문에 틈 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정된 작품은 광고로도 활용되었는데요. 소비자를 마케터로 만들어 적은 비용으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고, 당선된 이들에게는 전국으로 광고가 나가는 뿌듯함을 안겨주어 여러모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들어본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배민은 여기에 'IT 기업 브랜딩'을 은밀하게 더했습니다. 배달 플랫폼은 배달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며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중간에서 수수료만 취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민이 선택한 것은 혁신적인 IT 스타트업 이미지였습니다. 


우아콘 2023 로고 (출처 : 우아한형제들)


우수한 개발자와 분석가를 모집한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시도하고, 우아콘과 같은 기술 콘퍼런스를 열며 IT 기업 브랜딩에 집중했습니다. 또한 자동 서빙 로봇 등의 개발을 통해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미지를 내세웠는데요. 그 결과, 배민은 '네카라쿠배'라는 5대 IT 기업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효과적인 브랜딩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로 하여금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수수료를 좀먹는 기업'이 아닌 '혁신을 통해 배달문화를 선도한 기업'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오래 걸리는 만큼 강력하다


브랜딩은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한번 잘 형성된 브랜딩은 강력한 팬층을 형성합니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고가의 스마트폰을 내놓지만 기존 사용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구매합니다. 나이키는 신지도 않을 신발을 소장하게 만듭니다. 배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쿠팡이츠가 무료배달을 시작하고, 요기요에서 멤버십을 통해 사용자를 유혹해도, 사용자는 잠시 관심을 가질 뿐 결국 배민으로 회귀합니다. 어차피 배민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고,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배민은 단건배달, 무료배달과 같은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빠른 속도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듯 잘 형성된 브랜딩을 통해 '배달은 배민'이라는 인식이 쌓인 이상, 당분간 경쟁사들이 이 허들을 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민은 지금처럼 패스트 팔로워 전략만 안정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지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 때문에 개인적으로 배민에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있습니다. 


배민은 2022년부터 2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7천억 원에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 과정에서 독일 모기업 딜리버리히어로는 4천억 원의 배당금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민이 말로만 혁신이 아닌 진정한 혁신을 위해 노력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듭니다.


물론, 월간 이용자가 2,000만 명이 넘는 앱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IT 기술의 기초 체력 없이는 불가능하며, 배달 동선 최적화 등을 위해 AI와 같은 기술이 적용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민이 과연 '네카라쿠배'에 포함되지 않은 '토스'보다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이키 핏 서비스 (출처 : 나이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애플은 애플워치, 비전프로 등의 혁신적인 제품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으며, 나이키 역시도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발 사이즈를 측정하여 적절한 제품을 추천하는 디지털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즉, 강력한 팬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고객 경험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혁신적인 IT 기업이라 자처하는 배민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테크잇슈는 제가 직접 만드는 쉽고 재밌는 IT 트렌드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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