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 보면 팬들이 분노하는 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팬들이 야구를 보면서 분노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근본에는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최근 이러한 야구팬들을 야구 외적으로 분노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티빙의 야구 중계 유료화(유무선)입니다.
그동안 TV 중계를 접하기 어려웠던 야구팬들은 네이버 등에서 제공하는 무료 중계를 통해 야구를 즐길 수 있었는데요. 티빙이 중계권을 낙찰받은 데 이어 유료로 제공한다고 발표하자 팬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졌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계 초반 "무료보다 못한 유료중계"라는 부실 중계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야구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티빙 보이콧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일부 야구팬들은 '보편적 시청권' 침해를 이유로 유료화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률은 OTT 서비스 등장 이전에 제정된 것이라 제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해석에도 모호한 부분이 있어 논의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티빙은 예정대로 유료 중계를 지속했는데요. 유료화가 시작되면 고객이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과는 달리, 오히려 각종 지표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이어졌고, 어느덧 넷플릭스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프로야구 중계를 통해 티빙이 성공을 거두면서 분명해진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요. 앞으로 TV와 OTT의 경계는 더욱 흐려질 것이며, 각자의 영역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와 OTT 플랫폼 모두가 동일한 선상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는 이른바 *OTV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OTV란, OTT+TV의 합성어로 필자가 만든 용어입니다.)
/ 사실, OTT와 TV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시그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넷플릭스가 '넷플릭스 다이렉트'라는 라이브 채널 서비스를 시도하며 이러한 흐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서비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반으로 넷플릭스가 직접 편성한 프로그램을 재생해 주는 서비스로, 콘텐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넷플릭스 증후군'을 겪고 있는 이용자들에게 유용한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OTT 플랫폼에서 TV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OTT와 TV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제작과 편성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OTT 플랫폼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TV에서 방영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동시 방영을 하는 콘텐츠도 많아지고 있고요. 대표적으로 MBC가 제작한 '피지컬 100'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거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서진이네2'가 tvN, 티빙, 프라임비디오에서 동시 방영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 여기에 최근 OTT에서 시도하고 있는 스포츠 중계는 OTV 시대를 더욱 앞당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OTT 플랫폼들은 TV와의 차별화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해 왔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들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요. 이는 TV 시청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익숙했었기 때문에 이 수요를 흡수시키고자 했던 전략이었습니다.
반면, OTT 플랫폼들이 스포츠 중계에 쉽게 진입하지 못한 이유는 소비자들이 오랫동안 이를 무료로 이용해 왔기에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TV 업계에서는 스포츠 중계를 OTT 플랫폼이 침범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로 여겼는데요. 최근 들어 콘텐츠 소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이러한 장벽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콘텐츠 소비 인식 변화의 사례로는 음원과 웹툰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약 20년 전만 해도 음원은 '불법 다운로드'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P2P를 통한 무료 공유가 일반적이었는데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됨에 따라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원을 유료로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웹툰 역시 10년 전만 하더라도 포털사이트의 무료 미끼 상품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유료화가 정착되었고, 어느새 네이버웹툰이 나스닥에 상장하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야구 중계 유료화의 성공은 스포츠 중계도 유료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TV와 OTT를 단순히 콘텐츠로만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OTT는 TV를 대체할 수 있지만, TV는 OTT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물리적인 장비가 필요한 TV와 달리, OTT는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어떤 디바이스로든 접속이 가능합니다. 그나마 콘텐츠가 차별화되어 있던 시점까지는 물리적 제약에도 TV와 OTT를 동시에 구독할 명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차별화가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이 굳이 두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TV의 자구책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물론, TV 업계에도 기회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닐슨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 TV 사용자 중 38.3%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일반적으로 TV를 통해 전통적인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지만, 바꿔 생각하면 이 38.3%를 다시 TV 콘텐츠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고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쨌든 TV 앞에 앉은 사람들이니까요.
이 38.3%의 시청자들을 다시 TV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역시나 콘텐츠의 힘이 가장 중요합니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도, 티빙이나 쿠팡플레이가 각각 국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강력한 콘텐츠 덕분이었습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큰 역할을 했고, 티빙과 쿠팡플레이는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스포츠 콘텐츠가 기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콘텐츠의 힘만으로도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또한, 같은 경기라도 중계의 퀄리티와 화제성에 따라 시청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전현무가 캐스터로 등장한 올림픽 중계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콘텐츠 제작 능력과 동일한 콘텐츠라도 가공 능력에 따라 TV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지금까지 티빙의 야구 중계 유료화와 이로 인해 예상되는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미래를 속단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티빙의 야구중계 유료화 성공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TV 업계로 하여금 앞으로의 생존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과연 TV가 OTT의 공세를 이겨내고 전통의 미디어 강자로서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