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부분의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세탁기는 힘든 방망이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고, 컴퓨터는 복잡한 계산과 데이터 관리를 자동화하여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습니다.
최근의 AI 발전도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글쓰기, 이미지 생성을 비롯해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동화를 통해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자동화는 엄밀히 말히 '수동적' 자동화에 가깝습니다. 세탁기를 사용할 때에도 세탁물의 종류와 양을 직접 설정해 주어야 하고, 혁신적으로 보이는 생성형 AI 서비스도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특별한 명령 기술을 입력해야 합니다.
2025년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자동화의 시대가 열리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IT 리서치 기업 '가트너(Gartner)'는 매년 주목할 만한 기술 트렌드를 발표하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2025년 10대 기술 트렌드'를 발표했는데요. 그중 첫 번째로 언급한 키워드가 바로 'Agentic AI'입니다. AI 에이전트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이 바로 진정한 자동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AI 에이전트란, 시리와 같은 디지털 개인 비서의 진화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개인비서 모델들은 사용자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정적인 기능 때문에 활용도가 낮았지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지금은 더 높은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잠재력을 인식한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들도 앞다투어 AI 에이전트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인 움직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 다음 달부터 기업이 자체 AI 에이전트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ERP/CRM 제품군인 '다이나믹 365'에 10개의 새로운 자율 에이전트를 출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 구글 : '자비스'라는 프로젝트명의 AI 에이전트를 연내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제미나이 기반 웹브라우저를 기반으로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 OpenAI : 샘 알트만은 "AI 에이전트에 비하면 ChatGPT는 멍청한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AI 에이전트의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수익화가 시급한 OpenAI는 B2B 사업의 핵심으로 AI 에이전트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AI 에이전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가장 먼저 AI 에이전트의 실체를 공개한 곳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OpenAI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Anthropic(앤쓰로픽)'입니다.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놀라운 속도로 기술력을 발전시켜 온 앤쓰로픽은 성능 면에서는 이미 OpenAI와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AI 에이전트 서비스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공개하며 OpenAI를 넘어설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공개한 AI 에이전트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Computer use for automating operations
Ant Equipment라는 업체에서 공급업체 양식 작성 요청받았는데, 작성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는 컴퓨터 내부에 흩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이 요청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윈도우 창의 벤더 스프레드시트 또는 검색 포털 탭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Ant Equipment Co.'에 대한 벤더 요청 양식을 작성하세요. 그리고 두 번째 윈도우 창의 양식을 작성할 때 각 필드를 나열하고 확인하세요"
요청을 받은 claude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동작을 수행합니다.
화면 스크린샷 ▶ 스프레드시트 검색(결과 없음) ▶ CRM으로 전환하여 재검색(결과 있음) ▶ 양식에 필요한 정보 확인 ▶ 필드값에 필요한 정보 입력 ▶ 제출
2) Computer use for orchestrating tasks
친구가 다음 주에 샌프란시스코에 올 예정이며, 금문교를 바라보며 일출 하이킹 관광을 시켜주고 싶은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이 요청할 수 있습니다.
"제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오는데 내일 아침 금문교에서 일출을 같이 보고 싶어요. 퍼시픽 하이츠에서 오는데, 전망 좋은 장소를 찾아주시고, 운전 시간과 일출 시간을 확인해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고려해서 캘린더 일정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요청을 받은 claude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동작을 수행합니다.
크롬 실행 ▶ 구글 검색(금문교에서 전망 좋은 장소) ▶ 지도앱 실행 ▶사용자의 지역과 하이킹 장소 사이의 거리 검색 ▶ 구글 검색(내일 일출 시간) ▶ 캘린더 실행 ▶ 일정 등록 및 이동시간을 고려한 출발시간 입력
3) Computer Use for coding
개인 홈페이지를 90년대 스타일로 변경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이 요청할 수 있습니다.
"새 크롬 창으로 이동하여 claude.ai로 이동한 다음, 로드되면 90년대 스타일의 테마로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claude에게 요청하세요"
요청을 받은 claude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동작을 수행합니다.
크롬 실행 ▶ claude.ai 이동 ▶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도록 요청하는 메시지 입력 ▶ 적용
(이 데모 영상의 경우 추가 요청 및 동작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가요? 사실 저는 영상을 보면서 "나보다 나은데?"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동시에 이 기술이 가져올 파급력도 실감했는데요. AI 에이전트는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B2C 시장은 물론, B2B 영역에서도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 산업의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RPA는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의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는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처음 사용할 때 동작들을 입력해 주어야 하고, 업무 프로세스가 변경되면 새로 설정해야 하는 등 여전히 '수동적' 자동화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OpenAI가 B2B 사업의 핵심 전략으로 AI 에이전트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AI라도 웹 브라우저 실행과 같은 기본적인 작업 권한이 없다면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특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기업이 있으니,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ChatGPT 등장 이후 AI 기술 개발이 더디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팀 쿡은 여유가 있었는데요. 애플은 아이폰을 중심으로 아이패드, 비전프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드웨어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분야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유한 애플이 늦더라도 완성도 높은 AI 에이전트를 선보인다면, 하드웨어와의 통합을 통해 경쟁사들을 단숨에 추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앤쓰로픽이 가장 먼저 AI 에이전트의 실체를 공개했지만,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국 AI 에이전트 시장의 승자는 단순히 빨리 시작한 기업이 아닌, 사용자의 디지털 생활과 가장 긴밀하게 통합될 수 있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3년과 2024년이 ChatGPT로 대표되는 챗봇 형태의 AI가 주도했다면, 2025년은 AI 에이전트가 주도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도움을 받는 것을 넘어 실제 우리 업무를 대신해 주는 시대가 오는 것인데요. 만약 ChatGPT 시대에 이를 제대로 활용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지금부터 잘 준비하고 활용하셔셔 새로운 시대의 리더로 거듭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