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나의 빛바랜 기억 조각들 사이에서 여러 조각이 사라진 날이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묻는다.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도 없지만, 폐가 쓰라릴 듯이 한숨을 가득 삼켜 답을 뱉었다.
받는 이. 소중한 기억 조각
참으로 원망합니다
그런데 미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에게도 탓이 있을 테니까요
보내는 이. 빛바랜 기억 조각
[소중한 기억 조각]에게 영혼 없이 건네는 마지막 편지이다. 원망하지만 미워하고 싶지 않은 이 마음. 그렇게 나의 목숨을 줘도 아깝지 않을 ‘그 조각’이었는데, 이제는 그 조각에게 모든 게 아깝다고 생각이 든다.
처참히 무너진 지 두 달 남짓.
언제나 투명하고 견고했던 [빛바랜 기억 조각]은 꽤 오래전부터 상처를 받아왔다. 그 조각에게도 가끔씩 상처를 받아왔지만, 앞에서는 애써 모른 척 웃어 보였다.
지금은 ‘그냥 모른 척 웃어 보이지 말 걸.’하는 마음뿐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대로 조종당할 수 있는 존재였나. 나는 그 조각에게 어떤 기억 조각이었을까. 그러다가 한 번씩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면, 힘겨웠던 상처의 시간이 손쉽게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모든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온 마음이 너덜너덜하고, 심장 조각 일부분이 커터칼로 찢긴 것만 같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던 나였는데, 그런 나의 실제 모습은 겨울잠을 자는 박쥐가 아닐까.
인간관계도 겨우겨우 이어나가는 처참한 모습이 조금 안쓰럽다. 자기 속은 다 찢어졌으면서 남에게 긍정을 줘야 하는 직업군을 희망하는 것도 안쓰럽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한 개인의 세상을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때로는 사회에 나가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치는 내 모습이 혼란스럽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과 주어진 퀘스트를 하나씩 깨는 느낌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뭐든 해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의 시선도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니니 감사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커다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한 길을 걷는 것이고, 사실 나는 아직도 멋진 사람이 되진 못 했다고 생각한다.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나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며, 아팠던 나의 마음들은 졸업하고 나면 조금씩 치유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게 쌓인 여러 조각에게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좋지 않은 습관이란 것도 잘 아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기분을 지켜주고자 하는 내 마음이 더 앞섰다.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서서히 점차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나는 그 기분 속에서 나를 위해 살아간다. 각자 다들 어디선가 기꺼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에도 나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날에는 친구랑 어디론가 훌쩍 떠날 예정이다. 그게 안 된다면 나 혼자라도 어딘가 떠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