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활용하고 있는 독학형 커리어 융합 전략
최근 몇년간, 취준생들을 위한 부트캠프 강사로서 활동해왔습니다.
'말이 많다'는 특징이 평소엔 귀따가운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비춰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겐 '섬세하고 이해갈 수 있게 설명해주도록 노력한다' 는 특징으로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떻게보면 단점이 부각되고, 그로 인한 컴플렉스가 잔뜩 생겨날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 그러한 특징마저 저의 자산이자 경험으로 되돌리는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이 힘든 시간을 견뎌갈 수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자 기존 경력을 말소시켜가면서까지 턴오버를 시도했던 10년전의 기억이 문득 떠오르는데, 그때는 한심한 선택이라는 비웃음을 당했지만 현 시점에선 그게 하나의 트렌드/뉴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며 제 나름대로 '트렌드를 선도한다' 는 소소한 어필과 함께
제가 커리어를 어떻게 변환할 수 있었는지, 앞으로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그것이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에게도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며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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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 새벽 3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무역실무자로 일하며 수출입 서류를 정리하고, 세무사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장부를 뒤지던 그 시절. 몸은 힘들었지만, 그보다 답답한 건 따로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일해야 하나?"
매일 반복되는 수작업, 엑셀 파일 하나하나 대조하며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
수십번을 대조해서 계산해도 53억이라는 숫자에 대한 취급기록 중 어긋난 것은 없었다.
증빙자료까지 있었고, 통화로 약속한 내역까지 통신사에 부탁을 해서 확보까지 할만큼 입증에는 자신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사실관계 검증에 기반해서 제시한 내게 돌아온 것은 참 웃기게도 소송이었다.
사실을 말한 것이 누군가의 심기를 거슬러서 오히려 더 큰 분쟁을 만든다는 사실은 두가지 차원으로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내가 하는 일 자체가 글러먹은 것일까:
사실을 이야기하라고 해서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게 나를 법적으로 몰아세울만큼의 미움을 살 일이었던걸까
- 저런 인간들과 계속 일해야만 하는 운명인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렇게 권위로 근거없이 찍어누르는 일이 비일비재한걸까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권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봐야 하는 것일까 등등....
그야말로 하루하루 누군가와 섞이는 것 자체를 생 지옥으로 여겼던 시기는 있었다.
단순히 내가 잘났다는 심리 자체를 떠나서, 온갖 리스크를 지고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이후에 책임을 전가당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 분위기. 어차피 책임을 질 운명이라면 책임에 후회가 없도록 움직여보겠다는 내 나름의 결심마저 뜻대로 펼칠 수 없었던 상황들.
분명히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 왜 우리는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을까? 그 의문이 내 커리어를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무역실무를 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거래처를 찾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인맥이나 전화, 전시회에 의존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디지털 정보를 통해 더 정교하게 거래처를 찾을 수는 없을까?"
당시만 해도 무역업계의 디지털화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B2B 플랫폼들은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못했고 활용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나만의 시스템을 구축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엑셀로 시작했다. 거래처 정보, 연락처, 거래 이력, 시장 트렌드까지 모든 걸 데이터베이스화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관리가 어려워졌고, 분석은 더더욱 복잡해졌다.
몇 달간 혼자서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쳤다. 기술적인 지식도 부족했고, 무역업무와 병행하기에는 시간도 촉박했다.
그때 깨달았다. "혼자서는 힘들겠다. 디지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해야겠다."
그래서 2019년, 큰 결심을 하고 디지털 조직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무역 경험을 살려서 글로벌 마케팅을 담당하는 디지털 마케팅 회사로 옮겼다. 새로운 환경에서 디지털 마케팅을 배우면서, 동시에 내가 그동안 꿈꿔왔던 데이터 기반의 체계적인 업무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디지털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 후, 운명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진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A/B 테스트를 처음 제대로 경험했다.
두 가지 크리에이티브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지 논의하던 중, 경험 많은 선배들은 "A안이 감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테스트 결과, B안이 전환율이 23% 더 높게 나왔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느낌'을 믿어왔고, 데이터는 그걸 조용히 반박하고 있었다."
무역업계에서 느꼈던 그 답답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아닌, 경험과 감에 의존한 의사결정. 이 작은 충격이 내 커리어 전환의 진짜 시작점이 됐다.
그 후로는 퇴근하고 새벽까지 공부했다. 무역실무 시절 엑셀로 시도했던 그 시스템화의 꿈을, 이번에는 제대로 실현해보고 싶었다.
Python 기초부터 시작했다. 변수, 함수, 반복문... 처음에는 모든 게 외계어 같았다. 하지만 무역업계에서 수작업으로 처리했던 데이터들을 떠올리며 버텼다. "이걸 배우면 그때 그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다음은 SQL이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는 방법을 배우면서, 무역실무 시절 꿈꿨던 '체계적인 거래처 관리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엑셀 VBA 자동화도 배웠다. 매주 5시간씩 걸리던 성과 리포트 작성을 30분으로 줄였을 때의 그 짜릿함. 무역업계에서 밤새 정리했던 수출입 서류들이 떠올랐다. "그때 이런 걸 알았다면..."
GA4 데이터 수집과 Tableau 시각화까지 배우면서, 드디어 '데이터로 말하는' 마케터가 되어갔다. 고객 분석으로 리타겟팅 캠페인의 전환률을 147% 개선했을 때, 비로소 확신했다. '감'으로 시작했던 마케팅이 '구조'로 설계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했다. 처음 사용해보고 소름이 돋았다. "이게 진짜 AI구나." 동시에 깨달았다. "이런 도구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ChatGPT는 나의 개인 튜터가 되어주었다. 코딩하다 막힐 때, 데이터 분석 방법이 궁금할 때, 24시간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선생님이 생긴 것 같았다. 학습 속도가 배가 되었다.
3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강의실에 선다. 수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AI를 배운다고 해서 개발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대신, 여러분이 하는 일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지금 나는 실무 경험을 토대로 비전공자 대상의 AI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코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둔 수업이다.
500페이지짜리 교재를 제작했다가 완전히 폐기했던 적도 있다. 너무 이론적이고 실무와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역실무 시절의 경험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아는 것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수업을 완전히 리디자인했다. 실무 사례 중심으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 "수학이 처음으로 이해됐다", "이제 데이터가 무섭지 않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무역업계에서 느꼈던 그 답답함을 함께 해결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되돌아보니 참 신기하다. 새벽 3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며 세무조사 서류를 정리했던 그 시절이, 지금 AI 강사가 된 나를 만들어준 셈이다.
그래도 첫 직장이니 니가 철저히 배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이야기에 20대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금쪽이'로 살아왔다. 좋게 말하면 낭중지추, 나쁘게 말하면 매사 불평불만만 가득한 내부총질에만 진심인 녀석.
나의 의견을 가로막을 때마다 항상 듣던 이야기는
'조직은 너 하나의 반론 하나로 바뀌는 곳이 아니다.'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절대 흔들릴 일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막막함을 느낀 순간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매번 누군가의 말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고, 나만의 도피처같이 여기고 만난 A/B 테스트가 데이터의 힘을 깨닫게 해줬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이 지금 수강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만약 지금 어떤 업무에서든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변화의 신호일 수도 있다. 나처럼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을 무시하지 마라.
비전공자도, 문과생도 괜찮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 문제는 곧 포트폴리오가 되고, 그 포트폴리오는 당신의 커리어를 설명해줄 것이다.
혼자서 한계를 느낀다면, 과감히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처럼 디지털 조직으로 이직하는 것도 좋고, 온라인 커뮤니티나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이 말을 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엔 엑셀도 버거웠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됐다고."
세무조사의 지옥 같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당신의 답답함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