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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큐레이터, 월급 얼마나 받을까?

That Paycheck… Was This a Joke?

by 초희

다행히도 전 운이 좋았어요.

석사 과정을 졸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박물관의 '박힌 돌'이 되었거든요.

한 땀 한 땀 눈물로 써 내린 논문에 대한 보상을 꽤나 빨리 받는구나,

나를 받아 준 박물관에 '백골이 진토 되어', 정말 뼈라도 묻고 싶을 정도로 온 청춘을 바치고 싶었죠.

그렇게 3개월, 박물관 도슨트로 활동하기 위한 교육 과정과 시험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온전한' 첫 달 월급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200은커녕, 180도 안 되는 숫자.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죠.

First real paycheck.
Eyes. nearly. popped.
Not even $1,500.
Actually… not even $1,300.
I seriously thought something was wrong.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통근 비용은 물론,

하루 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점심값을 대중 머릿속으로 셈해 봤어요.

당시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신세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한 학기에 5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던 대학원 등록금도 떠올랐어요.

정말이지 티끌만 한 월급으로 60년 정년까지 살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했죠.

I couldn’t stop thinking about the $3,650 per semester
I had paid for grad school.
And now… 60 more years on this salary?
It's impossible.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 하나.

저, ‘정규직’이 아니었더라고요.

And then came the kicker:
I wasn’t even a full-time employee.


지원공고에서 본 '공무직'이라는 세 글자,

공무원과 음절이 비슷해서 당연히 정규직인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공무직은 무기계약직의 다른 이름이었어요.

“공무직” is just another name for a permanent non-regular contract.


그런데 이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취업을 담보할 수 없는 역사학과 출신이잖아요.

어디서든 받아 주면 사실, 땡큐죠.

이런 사정 탓에 저와 같이 박물관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 모두

정규직이든, 공무직이든 그걸 세밀하게 따질 처지가 못됐어요.

공무직조차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으니까요.

박물관 공무직 월급은 한국에 있는 모든 박물관이 비슷한 수준이었죠.

And it’s not just me.
This is what museum workers across Korea are dealing with.


제가 박물관에 입사했던 게 자그마치 2019년의 일이에요.

그런데 박물관 공무직 월급은 박물관마다 사정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2025년 지금도 대부분 200을 넘지 못해요.

심지어 공무직은 호봉제 대상도 아니라서 매년 월급이 오르지도 못하죠.

Even now, most museum positions don’t pay over $1,500.
There’s no pay grade system either,
so raises? Not a thing.


번쩍번쩍 윤이 나는 내관과 외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쾌적한 환경.

그 안을 누비는 수많은 직원들,

겉보기엔 화려한 박물관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현실이죠.

그럼에도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꿈꾸며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It’s a far cry from the grand buildings visitors see.
And yet, every year, more and more people
pour their money and time into grad school,
hoping for a job in a museum.


각박한 박물관 인력 시장에는 늘 절망과 원성이 가득해요.

육아 대체 인력을 구하는 공고의 조회수는 몇 천을 상회할 정도이고,

지원자 중에는 석사를 넘어 심지어 '박사' 졸업생들도 수두룩하죠.

많은 이들이 날마다 채용공고를 들여다보며 속을 새카맣게 태울 수밖에요.

A single job posting gets tens of thousands of views.
And many of the applicants have PhDs.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생 때 절 뜯어말렸는지.

돈이 전부인 시대에, 신념 하나로 ‘영끌’ 공부했지만,

현실은… 참 각박했어요.

That’s when it finally hit me.
Why everyone tried so hard to talk me out of it back in school.
In a world that worships money,
I chased my dream with all I had.
And reality… hit hard.


얄궃게도, 일은 참 재밌고 보람찼어요.

고등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천진하게 역사를 다시 전공으로 택할 수 있을 정도로요.

역사 교과서 속 빛바랜 사진들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갖은 사연들이

너무도 궁금하던 시절이었죠.

학부, 대학원을 거치며 다양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 낸 사람들의 무수한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이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일러 주었죠.

이렇게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전할 때면

온 세상을 가진 듯 뿌듯했어요.

그렇게 박물관에서의 경험은 제 커리어 여정의 든든한 발판이 되어 줬어요.

It was tough,
my experience at the museum gave me a strong foundation in my 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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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은 '일요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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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초희_ch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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