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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굴굴 Jan 22. 2024

가난한 마음

그해 여름,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 부쩍 늘었다. 보통 늦은 오후 카페에 둘러앉아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는 한국사 시험을 앞두고 기출 문제를 풀었고, 누구는 언론고시 스터디 과제로 일주일 치 기사를 훑었다. 나는 그 옆에서 별다른 계획 없이 책을 읽거나 글을 썼는데, 그러다 한 번씩 친구들이 무얼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각종 유인물, 무심하게 얹은 팔꿈치, 턱을 받치기 위해 펼친 손바닥. 그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시선은 항상 찌푸린 미간에서 멈추고 말았다. 집중하는 표정은 왜 그리 쉽게 구겨지는지. 몇 마디 말로 다릴 수 없는 그 뜻을 알기에 얼음만 남은 컵을 혼자 달그닥거렸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이어폰에서는 브로콜리너마저가 부른 <졸업>이 한창 흘러 나왔다. 대학을 떠난 직후라 그 노랫말은 더욱 먹먹하게 와닿았다. 특히 소속에 대한 갈증을 적잖이 느끼고 있었다. 얼른 이다음 발판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도무지 디딜 곳을 알지 못해 일찌감치 떨어진 발만 아등바등 허공을 걸었다. 게다가 갑작스레 불어닥친 전염병의 여파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바람에, 친구들은 행여 자기 차례를 놓치게 될까 수심이 가득했다. 기약 없는 채용 공고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날들. 내놓고 푸념하진 않았지만, 눈썹 사이 새겨진 여러 갈래의 주름이 대신 아우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불안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우울과 염세로 빚은 농담을 실컷 주고받으며 가슴속 응어리를 털어내는 한편, 드문드문 모바일 게임에 몰두해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미래가 견디기 힘든 밤에는 근처 강변으로 함께 산책에 나섰다. 준비생의 눈에는 무엇이든 부러움을 사는지 친구들과 노상 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란 뻔했다. 저기 불을 밝힌 건물들은 대충 세어도 수백수천 개가 넘는데, 과연 우리 몸 맡길 데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이내 몇 년 뒤 모습 따위를 상상하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손에 닿는 기쁨들을 그러모아 작은 위안으로 삼기도 잦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시절을 동화처럼 기억한다. 결국 저마다의 자리로 향하고 나서는 지금처럼 일상을 공유하기도 어렵겠지. 해가 지고 친구들과 헤어질 적에는 그런 짐작으로 느닷없이 서운해졌다. 어떻게든 당장의 시기를 벗어나고 싶다가도 가끔은 그 모든 순간을 마냥 붙들고 싶었다. 연결된 마음이 애틋했으므로. 각자 전해오는 소식마다 격려를 다했던 친구들은 동시에 부담을 덜어 주려 애써 무심하게 굴었다. 상처받기 싫어 상처 주지 않으려 했고, 의지하고 싶어 의지가 되려 했다. 내가 가진 결핍이야 여전했지만,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금세 충만한 감정이 들었다. 어떤 날에는 축제의 절정에 서 있는 양 황홀하니 아쉽기까지 했다.


어쩌면 우리는 우연히 한 정거장에 모여 환승을 기다리는 처지였을지도 모른다. 배차 간격이 제각각인 탓에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간 친구도 있었던 반면, 느지막이 도착한 버스에 겨우 오른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종내 외따로 흩어졌다. 아까의 노랫말은 후렴구에서 이렇게 이어진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벌써 몇 년이 지나 다들 제 생활을 챙기기 바쁜 요즘, 나는 친구들이 어디에 있더라도 그저 행복하기를 바란다. 모쪼록 원했던 성취를 이루어 보다 단단한 땅을 밟기를, 조금이나마 안락한 삶을 누리기를. 다만 괜한 욕심을 보태자면, 그토록 불안한 가운데서야 싹트던 감각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무더운 계절을 버텨 낸 힘에 관해 오롯이 나의 곁을 지켜 준 친구들 덕분이라 여긴다. 물론 그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았냐고 묻는다면, 차마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기나긴 터널을 통과한 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딱히 새롭지 않다. A는 직장에서 부조리를 겪어 이직을 결심했고, B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법률 상담을 받고 있으며, C는 난데없이 가족 구성원을 홀로 부양하게 되었다. 어쩐지 고생 끝에는 낙이 아닌 다른 고생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나는 그런 근황을 접하며 별수 없이 그해 여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던 그때 그 가난한 마음을 오래도록 가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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