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당(정부)은 당의 정당성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증오 시간을 이용한다. 당에 반대했던 인물을 텔레스크린에 올리면 모든 당원들은 온갖 힘을 다해서 그를 증오하는 것이다. 한 방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를 향해 욕을 하거나 광포하게 소리를 친다. 아수라장이 될 정도로 분노를 분출하는 건 당에 대한 복종심과 충성심을 보이는 것과 같다.
만약 여기서 증오에 동참하지 않으면 당에 대한 반항으로 의심을 산다. 열의를 다해 분노하지 않는 건 당에 그만큼 충성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당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감시자다. 앞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증오를 하는 건지 아닌지 금방 알아차리고 고발할 수 있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분노를 활용하는 것이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경제가 박살 났고 국가의 앞날이 어두웠다. 국민들은 불만에 가득 찼다. 히틀러는 이 모든 게 유대인의 탓이라고 선동했다. 나쁜 쪽은 독일을 이렇게 만든 영국과 프랑스 탓이라면서. 독일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 결과 나치 독일이 생겨났다.
오늘날에는 흔히 높으신 분들이 문제를 덮기 위해서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연예 스캔들을 뿌린다거나 유명인의 도덕적인 이슈를 퍼뜨린다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이 수법은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가 나고 분노하면서 진짜 중요한 문제을 잊게 된다. 분노하는 동안 사람은 사리분별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증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