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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는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데

그놈의 마음을 안 먹어

by 고민베어 이소연


초등(국민)학생 때, 갖고 싶은 대형 레고가 있었다.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뭔가를 사달라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용기 내어 말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올백 맞으면 사줄게.”


안 사주겠다는 말이었다.

당시 한 달 생활비가 40만 원, 그 레고는 11만 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올백을 맞아왔더란다.

(나는 시험은 기억이 안 난다, 레고만 기억날 뿐.)

엄마는 어이없지만 약속을 어길 수 없어 결국 그 레고를 사주셨다.


그 후로도 내가 계속 올백을 맞았느냐고?

그럴 리가. 얻을 것이 없는데 굳이 노력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도 다시는 그런 약속은 하지 않으셨다.




“우리 애는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데…”


정말 많은 부모님들께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먹기’ 자체가 가장 어려운 아이들이 바로 ADHD 기질을 가진 아이들이다.


ADHD의 동기 시스템은 단순한 의지 문제가 아니다.

‘도파민’이라는 보상 회로가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어떤 것에는 놀랄 만큼 몰입하고 어떤 것에는 끝까지 시작도 못한다.

문제는 의지나 습관이 아니라 뇌가 ‘보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인이라면 스스로 즉각적 보상을 설계해야 하고, 부모라면 아이가 당장 즐겁게 반응하는 보상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게임이든, 좋아하는 캐릭터든, 아이돌이든 그 관심이 쓸데없다고 억누르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써야 한다.





우리 엄마는 그 이후로 “하면 잘하는 애가 왜 노력을 안 하느냐”며 당근 대신 채찍을 더 많이 줬다. 공부를 직접 가르치며 점점 더 큰 화를 냈다. 마음만 먹으면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애가 이렇게 쉬운 것도 못하냐고, 못하는 게 아니라 '반항'하는 거라고.

그 결과 나는 오랫동안 시험불안을 겪었다. 스물셋까지.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니 조금씩 알 것 같았고,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벗어났다.


만약 그때, 나의 신경계와 기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엄마가 조금만 이해했다면 어땠을까.


레고가 아니어도, 작은 칭찬이라도 꾸준히 이어졌다면 나의 동기 시스템은 훨씬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일이다.

나 역시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해 오면서 중요한 시점들에 서 있는 부모와 아이들을 보며 차마 다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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