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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Dec 17. 2018

가난을 혐오하는 것

야자를 하다 문득 느꼈던 울컥함의 원흉

열아홉,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바로 최신 휴대폰이 출시되는 주에 주변인들 가장 먼저 휴대폰을 구입하는 것.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는 간절했다. 야간 자율학습 도중 몽롱하게 찾아온 그 마음을 당시에는 가볍게 치부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 생각, 간지러움, 고통, 같은 것들이 뭉쳐서 나를 마구 때렸다. 아프고 괴로웠다. 무엇보다도 억울했다. 


 난 최신 휴대폰이 여유와 부의 상징이라 생각했다. 가난에 허덕이며 나의 손에 쥐어진 것은 늘 출시일이 한참 지난, 흔히 '보급형'이라 불리는 휴대폰들이었다. 어린 나의 눈엔 최신 휴대폰을 손에 넣고서는 이건 이래서 좋고, 이건 이래서 별로라는 둥 사용기를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럴 때면 나는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친구의 목소리와 대뜸 멀어져서는, 스스로의 가난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로도 넘지 못하곤 했던, 아마 영원히 넘지 못할 부러움. 그런 결론이 날 때면 나는 손에 들린 휴대폰을 슬그머니 숨기곤 했다. 


 그 이후, 나에게는 내 가난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무언가를 구입할 때 친구들과 나의 사고 회로였다. 친구들은 사고 싶거나 사야 하는 것이 있으면 샀다. 가격을 주의 깊게 보며 '이걸 샀을 때 한 달간 생활이 위태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먹고 싶은 특정 과자가 비싸서 가진 돈을 한참 헤아려보다가 결국에는 '늘 사는 과자'를 사고야 마는 사람들이 수백수천 명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거의 없었다. 그 드묾 속에 내가 자리해 있다는 걸 알았을 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누군가를 탓하는 감정도 아니었고 서글픈 것도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아렸다. 


 병원에 가기 위해 내가 과연 병원비를 지불할 수 있을지, 처방전 값이 혹시나 오르진 않았을지, 그러면 이미 제조된 약에 대해 내가 어떤 책임소재를 갖게 될지에 대한 걱정들을 남들은 하지 않는다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부터 나는 내 행동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것을 기점으로, 나는 가난을 혐오하게 되었다. 은연중에 내 혐오심은 점점 커져서 확실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돈을 막 쓰고 다녔다. 내가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한 소비습관을 보이며, 남들에게 '나 이 정도로 여유 있고 돈 가지고 있어'라는 걸 어필하려고 했다. 특히 또래 친구들에게. 나는 절대 작고 좁고 꿉꿉한 내 방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밖이 너무 춥거나 더우면 누구네 집을 정해 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집은 항상 친척이 와 있거나 대청소 중이었다. 친구들도 썩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확인할 방도가 없으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넘어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묘한 패배감과 함께 우울감을 느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학교에서는 취약계층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스키캠프를 보내 주거나 무상으로 교재를 제공하곤 했다. 그날도 학교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는 교과서 따위를 받기 위해 교무실로 가고 있었다. 너무도 우울했다. 몇 번 피해봤으나 담임 선생님은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받으러 오라'고 했다. 싫은 나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교무실로 들어선 나는 당시에 짝사랑하던 선생님이 자리에 계신지부터 확인했다. 누구든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의 단점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할 따름이다. 그때 내 단점은 가난이었다. 교과서를 받는다는 행위 자체는 스스로가 불우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계신 상황에서 교과서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자리는 비어있었다. 재빠르게 담임 선생님의 자리에 놓인 묵직한 꾸러미를 안아 들었다. 그 순간, 오지 않기를 바랐던 선생님이 걸어오고 계신 게 아닌가.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정말이지 증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걸으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교실에 들어서자 내 표정을 못 본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런 많은 교과서가 어디서 났냐며 부러워했다. 나는 선생님이 심부름시키신 거 때문에 줬다고만 했다.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심부름했는데. 왜 안 주시지. OO이 너무 예뻐하시는 거 아니야? 나도 문제집 사야 되는데. 묵묵히, 죽고만 싶었다. 이런 교과서 따위 없어도 좋으니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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