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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n 15. 2021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조선 땅에 해방이 온 다음 해 1946년 10월 16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머슴의 자식이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김남주. 아버지는 그가 글을 배워 면서기나 군청 서기를 하기를 바랐다.

그의 바람처럼 아들은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남의 땅에서 근근이 먹고사는 형편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해질녘까지 일을 해야만 했으므로 시인 김남주는 중학교 때까지 낮에 집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그는 전라남도 수재들만 모인다던 광주제일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군청 서기보다 더 나은 삶이 보장되는 시기이기에 머슴의 자식은 그렇게 보장된 미래를 가지게 된 듯했다.

그러나 애초 그의 본성이 아닌 것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며 시대에 순응하여 사는 소시민적 소양은 도무지 찾아볼 수를 없었다.

주입식 교육이 싫어 고등학교를 때려치우더니 검정고시로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이미 박정희 정권이 장기. 독재체제를 확고히 하고자 헌법개정을 하다 하다 이내 유신헌법을 만들고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우리네 민초들을 새벽부터 밤까지 착취하던 시기였기에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그의 말대로 전사(戰士)가 되었고 처절하게 투쟁하다 무려 15년형을 받고 차가운 감옥으로 갔다.

이것이 시인 김남주의 33살까지의 삶이었다.

이후 9년 3개월을 복역하고 1988년 12월 21일 출소하게 된다.

오늘은 그가 출소되기 일 년 전쯤인 1987년 11월 출간된 그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에 수록된 동명의 시를 감상해보자.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의 나무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판검사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형제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험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넘어 평지길 황토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


오, 자유여 자유의 나무여

김남주 시인 시집 '나의 칼 나의 피' 1987년 中


시인 김남주 그는 살아생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어, 나는 시인이라기보다, 무슨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 전사(戰士)!



시를 읽고 있자니 그가 자신을 싸움을 업으로 삼고 살아갈 전사라 했던 말에 대한 다짐처럼 다가온다.

그런 그가 싸웠던 대상은 불평등한 세상이었음을 이 시를 통해 다시금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평등한 세상이라는 싸움의 상대는 보통 상대가 아니다.

아니 이 정도의 표현만으로는 성에 차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부끄럽기까지 하다.

시인은 신의 입김으로도, 바람이라는 위대한 자연의 힘으로도, 왕으로도, 부자, 법관, 군대 등등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과 만들어 놓은 권력으로도 평등의 나무 한 그루 지키기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래서 전사는 '나의 칼 나의 피'라고 말하며 자신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다 순교(殉敎) 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담담히 이야기한다.


왜 인류의 대다수인 민초(民草)들은 불평등한 세상에 갇혀 불행한 살 수밖에 없을까?

시인은 인간이 거친 자연에 대항하여 만든 유위(有爲) 적인 모든 것이 불평등을 조장했다고 말한다.

신(神)이라는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던 형이상학적 권력, 왕과 군대라는 중세적인 권력, 부자와 법관이라는 근대 자본주의의 권력 등 그 어떤 힘도 토지 위에 사는 농부라는 민초의 바람막이 되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 권력을 시인은 하루아침에 부숴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이제 평등을 위한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그의 피를 뿌리고자 한다.

그것은 형이상적인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그 모든 것 위에 그의 피를 뿌리고자 한다. 바위로 험한 산길, 파도로 사나운 뱃길, 황톳길, 긴 밭의 이랑 위, 논둑길, 밥상, 그대 입술, 잠자리, 모두가 평등했다던 원시 석기시대 투쟁의 산물인 투석기 돌에도 그의 순교의 자국을 선명히 남기고자 한다고 굳은 다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그렇게 전사가 되어 투쟁을 하다 옥중에서 얻은 췌장암이 악화되어 마흔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쓰러지고 만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김남주 시인의 시가 중도좌파라는 말도 안 되는 말로 자신을 규정하는 정치세력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마치 엄청난 민주투사인 것처럼 김남주 시인의 시들을 인용하고 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 우파에서는 공산주의 빨갱이의 글로 몰아세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라 화가 날 정도이다. 노동자의 평등 소리만 해도 서슬 퍼렇던 시절 자신의 젊음뿐만 아니라 삶까지 내놓고 투쟁했던 그의 시와 삶을 하잖은 정치 정쟁에 이용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않기를 바라며 김남주 시인의 '나의 칼 나의 피'를 감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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