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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l 15. 2022

안도현- 스며드는 것

간장 게장 먹기 전엔 읽지 말기

안도현 시인은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전라도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중에 전주에 있는 우석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는 등 경상도 출신으로 전라도에서 지지를 받으며 활동하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89년 여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을 당한 이력이 있다.

이쯤에서 무언가 비슷한 느낌의 시인 한 명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같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당했던 또 한 명의 시인이 도종환 국회의원이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진보 성향의 정치활동을 펴고 있는데 도종환 국회의원이 제도권 진보 성향 문인이라면 안도현 시인은 재야에서 활동하는 진보 성향의 문인이라 할 수 있다.


요즘도 정치적 활동과 문학창작에 열성적이신 시인 안도현 님의 '스며드는 것'을 감상해 보자.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 없이' 中 2004年



도저히 간장게장 사진을 못 넣겠다.

식탁에 올라온 간장게장. 그 간장게장의 알밴 어미게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바닷물보다 더 짜고 더 어두운 간장에 온몸이 담가질 때 살려고 버둥거리다 스며드는 역한 간장 물에 도저히 히 버틸 재간이 없자 마지막으로 알들에게 말한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인사말을 끝으로 어미 게와 모든 알들은 영원한 수면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시(詩)를 읽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알배기 꽃게를 간장 물에 담가 먹는 간장게장은 단언컨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슬픈 음식이리라.


사실 꽃게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본능적으로 살려고 버둥거리기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닷물보다 염도가 휠씬 높은 간장 물이 몸에 스며들 때 모든 감각이 아득해지는 혼수상태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꽃게가 자신의 유전자를 품은 알들에게 저녁이 왔다며 잠을 청하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인(文人)의 감수성으로 바라본 세상을 은유적 표현 간략하게 표현했는데, 하필 그 흔한 간장 게장을 통해 이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에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시를 읽고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며 절로 그 애절함에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시가 필요한 이유이며 시가 사랑받는 것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살아있는 꽃게가 시커먼 간장 물에 담가져 살려고 버둥거리다 의식이 멀어져 이내 움직움이 없어지는 과정을 우리네 삶에 은유하여 간장 게장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식으로 만들어 버린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 마지막으로 나에게 묻고 싶다 지금 나에게 이처럼 처절하게 스며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시인 안도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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