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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녀는 울지 않습니다

아빠, 이 글은 보지 마세요

얼마 전 아빠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다.      


35개월의 천방지축 아들을 데리고 차로 4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건 꽤 힘들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생일을 축하하며

 식사를 하는  평범한 행복을 상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꿈은 정확하게 4시간 후에 나만의 상상만으로 끝이 났지만.          



네 시간 끝에 도착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그래.. 올라와"라고 힘없이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미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짐작했다.


고향에 내려온다며 사소한 기념품부터 선물들까지 짐이 많았던 나는 동생에게 주차장으로 나와주길 부탁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동생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아빠 집에 계셔?"     

"아니.. 없어 집 나갔어'     

"뭐? 집을 왜 나가?"     

"엄마한테 물어봐"     

"뭘 물어봐, 엄마 아빠 싸우셨어?"     

"엄마한테 물어봐. 나도 잘 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집 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맥이 빠져버렸다.     



우리는 장거리 이동때문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나도 남편도 싸늘한 공기를 감지하고 더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에 바로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얼른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아빠의 아침 생신상을 드리려고 내가 준비해 온 반찬을 꺼냈다.



아빠의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싶어 고향으로 이동하기 전날 하루 종일 도라지를 까고, 야채를 다듬고, 국을 끓였다.     


엄마는 전화를 걸어 아빠에게 딸, 손주, 사위가 와서 밥까지 차려놨으니 싫어도 그냥 밥 한 끼 하고 가라고 했지만 아빠는 식사하러 오지 않으셨다.


사위는 아침밥을 먹지도 못하고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며 한 시간이 지나 아침을 먹었다. 해맑은 우리 아들은 밥상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위해 아침을 굶고 있었다.     



그날을 포함해 내가 고향에 있었던 3박 4일 동안 아빠는 딸, 사위와 손자가 있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아빠는 내게도 전화를 걸어 '너도 내가 왜 집에 안 들어가는지 이유를 들어봐 ‘라고 말하며 아빠 입장만을 전달하는 여전한, 너무나도 여전한 모습에 씁쓸해졌다.     





하지만 난 생각보다 서운하지 않았다. 씁쓸했지만 아빠는 세월이 흘러 변할 것이란 기대를 한 적이 없었고, 난 내가 준비한 밥상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기에 내가 노력한 모습을 전달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엄마의 평생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참아오며 살았는데 아빠는 변하지 않는다며 한탄하고 슬퍼했다.     




우리 아빠는 밖에서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늘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스무 살인 나에게 배낭여행을 하라며 큰돈과 항공권을 주었다. 딸을 미국땅에 혼자 보내는 대범함과 개방적인 태도, 아내에게 좋은 차에 좋은 옷을 사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멋진 남자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아빠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에 비하여 안에서는 꽤 엉망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글로 다 말할 순 없지만..) 경제적인 풍요를 줬다고 생각하고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어딨 냐고 했지만 진정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그렇게 고향에서 씁쓸했던 기억을 담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고향에서의 일은 잊혀갈 무렵 12월 6일에 방송된 "아빠하고 나하고"라는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승연은 아빠와 5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하게 된 부녀였지만 함께 식사할 정도의 편안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 식탁에서 밥을 대접하던 이승연과 아빠는 대화를 하면서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아빠의 앞에서 이승연은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싱크대로 다가간다.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고 물을 쏟아내며 컵을 닦았다. 심호흡을 하고 눈물을 삼키던 그 순간 인터뷰한 내용이 너무나도 공감했던 순간이었다.      


출처: 포토뉴스

인터뷰를 하면서 이승연은 답답한 듯 몇 번이고 나는, 나는, 나는..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      

"너무 화가 나고 너무 답답하고... 나는, 나는 나는.. 막 답답한데 아빠가 짠해.."     

[뭐 이런 뒤죽박죽인 게 있니.....]      



뒤죽박죽의 감정..


아빠를 원망하고 또 미워하지도 못하는 그 감정은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나도 따라 눈물을 흘렸다. 


세상 누구보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다른 사람, 심지어 엄마에게 좋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나에게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그냥 내 아빠인걸..      




글을 쓰다 보면 어디까지 진솔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아빠와 관련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 글의 발행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충동적이고,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것저것 벌려놓고 마무리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아빠와 닮아있다.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돌아서면 아무 일 없이 감정이 사그라들어 상대방이 미치고 팔짝 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혈질인 내 모습도 아빠와 닮아있다.      



닮지 않으려 발버둥 쳤지만 때로는 너무나도 닮아버린 어쩌면 더 이기적인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아빠에 대한 애증이 깊어진.




결혼을 하고 내 아이가 내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란 걸 느끼는 순간마다 아이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부끄럽지만 내 동생이 장애가 있기에 나쁜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나 스스로를 찌르고 공격했다.


무한한 사랑을 주어야 할 때 내 아이에게  의무만의 감정으로 아이를 대했다.     

 

내 감정이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 감정을 쏟아버렸다.


마치 음식물쓰레기처럼. 엄청난 악취를 풍겨대며 절대 개봉하고 싶지 않은 음식물쓰레기봉투처럼 내 마음은 썩은 내가 진동했지만 타인의 앞에서는 꽁꽁 묶어두고 개봉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향을 다녀온 뒤 생각하지 않기로 묶어둔 과거의 어린 나를 떠올렸다.


엄마 아빠의 다툼 속에서 거대한 미세먼지가 몰아치는 그 공기를 온전히 마셨던 나.


출처: 미세미세 어플

공기청정기처럼 미세먼지를 필터해 줄 무언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까맣고도 먼지 가득한 공기를 마스크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미세먼지는 내 마음속 구석구석 파고들어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복직을 했고, 아이는 생각보다 잘 자랐으며 욕심을 내려놓고 한 발짝 뒤로 걸어 거리를 두니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지가 가득했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었다. 나를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책을 읽고 감정을 써나가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남편을 만났다.


밖에서 실속 있는 사람보다 안에서 내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아이에게 잘못한 순간마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화내서 정말 미안해. 엄마도 가끔 너무 화가 나. 정훈아, 용서해 줘”라고 말했다.     



내 아이만큼은 겉과 속이 다른 엄마의 모습으로 간직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존경하지 않는 아빠이지만 싫어할 수도 없는  죄책감을 더욱 느끼게 되는 내 모습만큼은  내 아들에게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이다.     



아빠, 미안해요.

이렇게 아빠를 존경하지 않는 불효막심한 딸이라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빠..



가장 존중하고 존귀하게 대해야 할 사람은 아내와 자식입니다..



불효녀는 울지 않을게요.

건강하세요. 사랑.. 아니 평생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나의 아빠에게


이 글은 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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