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고 싶은 것’과 종종 술래잡기를 한다. 처음 술래 역할은 내가 맡는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뒤쫓아 달린다. 하고 싶은 것만을 바라보며 하하 호호 웃으면서 달려간다. 이렇듯 하고 싶은 것만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상태는 참 즐겁다. 그런데 이런 상태는 쉽게 깨져버릴 때가 많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해야 하는 것’ 혹은 ‘잘 하고 싶은 것’으로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배신감과 거리감이 밀려올 때면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도망친다. 잡히지 않게 있는 힘껏 도망친다. 이렇듯 처음엔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이 순수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내가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 혹은 잘하고 싶은 욕심의 대상으로 변해버리면 열정이 금방 식어 꾸준히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이렇게 정신없는 술래잡기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를 발견했다. 먼저는 영어 공부다. 학창시절 나는 영어를 꽤 좋아하는 학생이었는데, 사범대에 들어간 후부터는 영어와 담을 쌓았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정적인 계기랄 것은 없다.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내 생각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들이 하는 말도 알아듣고 싶다는 마음이 쌓이고 쌓였던 것이다. 매일 유튜브 영어 강의를 하나씩 보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어플을 활용하고, 일주일에 2번씩 전화영어를 하고 있다. 영어 실력이 제자리걸음이기는 해도, 영어를 즐기는 이 상태가 만족스럽다.
내가 즐기는 것 두 번째는 ‘이야기’이다. 근래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나묭 작가의 브런치 연재글이다. 3가지 이야기가 요즘 나를 가장 사로잡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는데, ‘친절함’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참 친절한 사람들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상에는 많은 이들의 친절함이 잔잔하게 녹아있어 우리 사회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어제 본 뉴스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7번째 대도시 점령했고, 반복되는 산업재해로 누군가의 가족들은 이유 없이 죽었으며, 10대의 증여 재산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땡볕에서 2시간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2천원을 번다고 했다.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세상의 소식이다. 때로는 이런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나는 친절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세상 어딘가에 무지개색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총을 가지고 사람들을 해치는 것들을 물리치는 시크한 언니와, 아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야말로 진심인 유쾌한 의사들,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나와 무관한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상이 이야기일지라도 현실에 발붙인 사람에게서 나온 이야기이므로.
마지막으로는 ‘정리하기’를 꼽을테다. 무엇을 정리하느냐면, 나의 하루, 내가 가진 물건, 내가 가진 추억을 정리한다. 30살을 기념하는 여행 도중 충동적으로 구매한 10년 일기장이 있다. 이 일기장에 적을 수 있는 하루의 분량은 많아봤자 3~4문장 정도다. 그러나 꾸준히 적으며 짧은 시간이라도 나의 하루를 정리하며 내 마음을 다독이려고 하고 있다. 명문장을 남기는 것은 아니어도, 후에 내가 남겨온 서툰 흔적들을 확인하면서 키득거릴 수 있겠지. 옷가지나 화장품, 책 등 내 방을 채우려고 하는 물건들도 조금씩 정리하면서 필요 없는 것은 비우고 있다. ‘미니멀리즘 지향인’으로서 조금씩 정리하고 비워냈을 때의 가벼워진 느낌이 좋다. 또한 오랜시간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추억 보물창고인 편지 더미도 들춰서 펼쳐보고 클리어 파일에 정리하였고, 데이터 보관용 클라우드를 열어 엄마와의 12박 15일 여행의 사진도 정리해서 앨범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게 정리한 거야?’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는 방의 주인이지만 앞으로도 꼼지락꼼지락 정리를 즐겨 하는 인간이 되려고 한다.
‘우리는 내면의 어린 아티스트를 돌보는 부모이므로 그 아이가 안정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아티스트 웨이>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된 ‘나’의 입장으로서 나의 어린 아티스트에게 좋은 것을 공급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고 싶은 것을 충동적으로만 하지 않고, 부담감이 느껴지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하게 되길... 하는 부모의 마음 말이다. 사실 나는 내 어린 아티스트에게 영어공부, 독서, 정리를 여러 가지를 하루에 ‘2분’만 하자고 달래가며 꾸준히 하고 있다. 내 어린 아티스트가 꾸준히 즐길 만한 것들을 쉽게 내려놓지 않도록 말이다. 휴..... 나는 꾸준히 즐기는 것이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