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기록
기억을 더듬어보면 2시비행기를 탔던 것 같다. 인천에서 4시간은 아래로 가야 있는 나의 고향에서 출발했기에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 커다란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섰더니 이제 초여름이 성큼 다가왔다고 이야기 하는 듯 안개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말도 못하게 출렁거리는 마음, 날씨도 안좋고... 가기싫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비자를 사고부터 '가고싶지 않아...'라는 마음이 들었다. 살면서 그렇게 마음편하게 먹고 놀았던 적이 없어서였을까, 출국 한다는 핑계로 꽤나 먹고 놀아서 즐거웠었던 것 같다.
출국날이 다가올수록 '나 사실 가고싶지않아!!!!' 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댔지만, 저질러 놓은 것 들이 있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하면서 자취를 했었지만 바다 건너 엄마와 떨어졌던 시간은 평생을 통틀어 3일 밖에 안된다. 엄마는 내가 대한민국 땅 안에 있으면 안심이 되지만 바다를 건너는 순간 그게 아니니 걱정된다고 말했다.
"딸 지금이라도 가고싶지 않으면 안가도돼"
당장이라도 가고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겠지만 한편으론 포기하고싶지 않았다.
"아냐 엄마 잘 하고 돌아올게" 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했다.
그렇게 네시간동안 인천공항 구경한다며 신난 동생과 엄마 남자친구, 걱정과 사랑이 담긴 이런저런 말들을 내게 하는 엄마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금방이라도 맑아질 것 같았는데 인천을 도착해도 안개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뭔가를 시도했을때 내 앞을 가로막는 것 들이 많거나, 잘 안풀릴땐 하늘이 하지 말라고하는 뜻인 것 같다는... 사실상 핑계? 하늘의 핑계를 대기엔 많은 것 들이 너무 잘 풀렸다.
안개가 너무 껴서 결항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무색하게 공항근처는 햇빛이 쨍쨍했다. 짐을 먼저 내리고 수속을 하려는데 내가 이용할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협약을 맺은 회사였다. 굉장히 저렴하게 끊었는데 줄서있는 사람들을 재치고 편안하고 빠르게 짐 수속을 할 수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2019년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디저트를 사주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지갑이 없었다. 이제 곧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엄마는 또 내게 칠칠치 못하다며 차에 가보겠다고 했고 나는 그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갑은 얌전히 차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지갑을 찾느라 시간을 쓴 탓에 바로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장에 서있는데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계속 울었다.
"엄마 왜울어" 라고 말하는 나도 울고있었다. 남들이 보면 내가 생지옥에 끌려가는줄 알았을거다. 이제 정말 내가 게이트를 통과하려는데 엄마는 계속 울면서 또 웃으면서 인사해서 마음을 아프게했다.
인공눈물 한통과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이제진짜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생각했다.
"하..대체 내가 뭔짓을 한거야..."하고 말이다.
뭔가 안풀리면 또 본인탓할거라고 생각한 하늘은 '대한항공 웨이'를 내게 선물했다. lcc비행기만 타본 내게 지하철 안타고 걸어서 비행기까지 갈 수 있는 행운을 하사하셨다. 승무원 언니들은 친절했고 광저우까지만 가는 비행기라서 생각보다 작았다. 옆에 덩치크신 남자분이 앉아서 답답한 느낌은 들었지만 어차피 3-4시간만 참으면 되니까. '이제 진짜 가요'라는 카톡을 모두에게 돌리고 핸드폰을 잠시 껐다. 엄마가 비행기 타고 읽어보라고 했던 편지를 펼쳤다. 눈물이 한웅큼 흘렀다. 어렸을때 써주시던 편지에 비해 날이 갈수록 짧아지는 글이지만 그날은 심금을 울리던 문장들이었다. 아마 엄마도 그날 다시 쓰라고 펜과 종이를 받아들었다면 더 많은 글자를 써넣었으리라. 눈물은 흐르고 옆자리 아저씨에게 들키고 싶진 않아서 창문을 보고 비련의 드라마 주인공처럼 훌쩍댔다. 이렇게 빨리 끝날줄 알았더라면 울긴 왜울었고 고민은 왜했을까 싶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나는 체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