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사지가 마비된 남자
의대생 실습 이야기
의대 3학년이 되면 병원 각 과를 돌며 실습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재활의학과 실습을 돌며 만난 환자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다른 과처럼 여기서도 매일 아침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을 따라 오전 회진을 돌게 된다.
병원에도 여느 조직들처럼 구성원 간 서열이 있고 의대생은 그중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다.
교수부터 시작해서 전공의, 간호사, 재활의학과의 경우 담당 물리치료사, 그리고 의대생 순이다.
회진을 돌 때에는 보통 그 서열 순으로 환자에 가깝게 서게 된다.
그래서 보통 의대생들은 환자와 가장 먼 곳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교수님 혹은 담당 주치의 선생님과 환자가 나누는 대화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
이 날도 평범한 아침이었고 평소와 같이 회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 병원 재활의학과에 입원 중인 환자들은 대체로 아래 카테고리로 나뉜다.
1. 교통사고 등 외상으로 수술을 마친 후 온 환자들
2. 만성 질환이나 뇌졸중 등으로 신경계 손상을 입은 고령의 환자들
3. 급성 신경계 질환으로 기능 손실이 생겨 재활 중인 비교적 젊은 환자들
여담이지만 1번 카테고리의 95%는 교통사고 환자다. 그중 오토바이 사고가 약 80% 정도 된다.)
이 환자들이 입원 중 재활치료를 하게 되는데, 내가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 매일 농담도 건네실 정도로 긍정적으로 지내고 계셨다.
물론 몸이 힘드시겠지만, 재활의학과에 입원 중이라는 것 자체가 위험한 고비는 넘긴 상태라는 거니까.
사망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오신 분들도 계실 테니 나름의 기저효과일지도 모르겠다.
또 회복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경과가 보이고 가족들도 자주 면회를 오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절망 수준의 심리상태를 가진 분들이 많지는 않았다.
이번 환자는 꽤 오랜 기간 입원해있던 30대 남성 환자인데, 나와 실습조 동기는 처음 보는 환자였다.
처음 환자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짙은 갈색 눈동자에 뭔지 모를 여러 감정들이 느껴졌다. 슬픔같기도 하고... 무념무상의 공허함 같기도 하고...
촉촉하고 눈물이 고인 듯한 눈인데 환자가 울먹이거나 하던 건 아니니 그냥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환자였다.
의료진과 이야기 나누는 와중에도 그냥 허공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히스토리를 보니 목뼈 부근 신경을 다쳐서 그 아래로 사지가 마비된 상태였다. (C4 lesion)
"아 그래서였나보다. 젊은 나이에 사지마비라니..."
라는 생각을 막 마치기도 전에 전공의 선생님이 나와 동기를 따로 불러 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조용히 이야기해주셨다.
결혼식 전날, 친구들과 bachelor party를 하던 중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헹가래를 쳐줬는데 친구들 중 누군가가 놓쳤던 건지 몰라도 땅에 머리 부분부터 잘못 떨어졌다고 한다.
결혼은 없던 일이 되었고, 약혼녀도 결국 떠나갔다고 한다.
친구들도 미안해서인지 불편해서인지 면회를 오지 않는다고.
그 이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동기 여학생은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다가 나왔다.
모든 환자들에게 다 각자의 개인사가 있기에 숙련된 의사들은 자신의 감정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환자들과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둔다고 한다.
어차피 의사가 제3자 입장에서 환자가 겪는 상황을 다 이해한다고 하는 것도 무례한 거짓말이고, 과하게 감정 이입하는 게 케이스를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 내리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수업시간에 배우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상황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니 환자 본인, 약혼녀, 축하해주던 친구들, 주변 가족들 중 누구 한 명한테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일인 듯했다.
의대 생활을 하다 보면 책이나 강의, 실습을 통해 얻은 지식들보다도 병원에서 예상치 못하는 상황을 겪으며 배운 것들이 훨씬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은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