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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의한조각 Sep 27. 2020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내가 유일하게 나 다울 수 있는 존재.

나이를 먹어가면서 '척'을 해야 할 때가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속상하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면 그저 잘 사는 척. 이렇게 '척' 하고 살아가다 보니 속병이 생겼다. 마냥 어린애처럼 투정 부릴 수 없는 나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화가 나면 화도 내 보고, 하기 싫다고 징징 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어른'이기에 그렇지 못한다. 나는 엄마 앞에서는 강하고 밝은 딸이며, 고객 앞에서는 친절한 직원이고 상사 앞에서는 그저 묵묵히 수긍하고 일하는 부하직원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그저 웃으며 좋은 척 넘기는 게 많았고, 어른들의 세계는 강해야만 한다고 믿으며 스스로 강한 척하고 살았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구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인 지금의 배우자다.  지금의 남편은 21살 때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그 당시에도 남녀 사이에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구질구질하지 않게 끝내지 않기 위해 '쿨한 척'을 참 많이 했다.


참 추웠던 그 해의 한 겨울날,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리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행관들이 우리의 짐을 밖으로 다 옮겨버렸고, 우리 가족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대학교 2학년의 나, 그리고 추운 겨울에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우리 가족.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먼저 생각했다. '집이 이렇게 됐는데 온전한 정신으로 연애를 할 수 있을까'부터  '부모님이 저렇게 고생하시는데 연애한답시고 혼자 행복한 것은 나쁜 거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나의 모든 생각은 남자 친구와의 이별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가정사를 알릴 수 있었던 대학 동기가 나의 결심을 막았다.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잘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이별해서 더 힘들 필요가 있냐? 남자 친구마저도 없으면 너의 행복은 어디서 찾냐?"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가정사에 문제가 생긴 것 제외하곤 남자 친구와 이별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만남을 유지한 남자 친구와 7년을 연애하고 우리는 작년 봄에 결혼했다. 그 당시에 혼자만의 착각으로 이별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보다 남자 친구는 배려심이 많고 여리고 눈물이 많은 남자다. 이 남자를 알게 해 준 테니스 동아리 회장 언니도 고맙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나의 유일한 대학 동기에게도 고맙다.  


내년이면 나는 서른 살이 된다. 나의 이십 대를 오직 이 한 남자와 보냈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다. 나의 이십 대에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모든 순간에 이 남자가 나와 함께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스무한 살에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몇 년 뒤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유일한 딸인 나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고, 그런 엄마에게 기대 펑펑 울지 못한 채 나는 강한 딸이 되어야만 했다.


몇 년간 취업이 안됐고, 취업한 줄 알았던 공공기관에서는 다른 낙하산에게 밀려 쫓겨났다. 알바를 병행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도서관에 박혀 지냈다. 그때도 남자 친구는 함께 도서관에 있어주었다. 이후 힘들게 취업한 회사에서는 오해를 받아 억울한 적도 있었고, 결혼 후에는 유산으로 소중한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다 떠나는 것일까 우울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 난 어른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면 난 더 이상 성장하기 싫었고, 힘든 일을 겪어야 진정 비로소 어른이 된다면 어른 되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모든 순간에 지금의 남편이 있었고, 나와 함께 울어주었고 속상해주었다. 힘든 시기를 같이 욕해주고 위로해주었다. 내가 유일하게 '척'을 하지 않았도 되며, 7살 꼬마 아이처럼 모든 걸 털어놓고 징징거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남편은 때로는 아빠 같았고, 때로는 선생님 같이 달래 주었다.


그는 오늘도 운전을 하면서 나의 주제곡이라며 노래 한 곡을 불러준다.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곡을 들으면 내 생각이 난다면서 말이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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