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에세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리뷰

책리뷰

by 작가 정용하
썸네일.jpg



나는 한수희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 전에 자기만의 색채가 드러나는 글이 좋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한수희 작가는 한수희 작가만의 감성이 있다. 별 얘기 아니어도 그 감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감성이 나와 비슷해서 좋다. 한껏 예민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며 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그것.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나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나뿐이 아니구나. 나처럼 예민한 사람도 어찌어찌 잘 이겨내고 있구나.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구나, 하고.



IMG_1909.JPG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병에 걸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만큼은 잘 살고 싶어서. 몸이 하는 말을 잘 듣기 위해서. 다름 아닌 나의 위장과 비장을 위해서. p18



IMG_1911.JPG



나는 특히 한수희 작가의 균형 감각을 좋아한다. 한수희 작가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다. 나이를 먹다 보면 이상한 '개똥철학'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녀에겐 그런 게 없어 좋다. 누구나 자기만의 가치관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순간, 그것은 '개똥철학'이 되고 '꼰대'가 된다. 나도 부족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쳐. 나이가 조금 많다는 이유로 뭔가를 더 알고 있다고 티를 내거나 가르치려 드는 건 스스로 부족함을 숨기려는 방어기제고, 꼰대가 되는 길이다. 한수희 작가는 그런 태도가 없어서 좋다. 이건 나의 방법이고, 어쩌면 나에게만 유효한 거야, 라는 식의 화법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돼야지.



IMG_1912.JPG



나는 원래 산만하다. 이 생각을 하다 저 일을 하고 저 고민을 하다 그것을 먹는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그런 나로 40년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됐다. 그런 나로도 굶어 죽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리고 아직 굶어 죽지 않았다. p26



IMG_1914.JPG



한수희 작가의 책은 지금껏 세 권을 읽었다. <온전히 나답게>,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든다. 그녀에게 점점 더 빠져든다. 어떻게 하면 그녀처럼 잘 쓸 수 있을까. 그것은 그만큼 그녀가 품은 감성이 풍부하단 것이고, 그녀가 예민하단 것이다. 작가는 예민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 남들이 받는 자극 이상의 것을 받아들여야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항상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감정이나 상황을 포착해 글로 옮긴다. 그만큼 그들이 더 고달프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수많은 자극에 의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어렵고 못 견디는 것이다. 작가의 삶이 숭고해 보이면서 안타까운 이유다.


IMG_1915.JPG



내가 자라면서 갖게 된 마음속의 스승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누더기도사 같은 사람들. 어깨에 힘을 뺀 사람들. 욕심과 두려움에 눈멀지 않았던 사람들. 느슨하지만 날카로운 사람들. 가끔은 지질할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인간적이던 사람들.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느려서, 때로는 그 속도를 비웃어서 출세와는 거리가 있던 사람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고, 봄이 오면 또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 자연스럽게 살던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멋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세상은 멋있는 사람을 끝내 내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p49



IMG_1916.JPG



한수희 작가의 책은 지금껏 세 권을 읽었다. <온전히 나답게>,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든다. 그녀에게 점점 더 빠져든다. 어떻게 하면 그녀처럼 잘 쓸 수 있을까. 그것은 그만큼 그녀가 품은 감성이 풍부하단 것이고, 그녀가 예민하단 것이다. 작가는 예민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 남들이 받는 자극 이상의 것을 받아들여야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항상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감정이나 상황을 포착해 글로 옮긴다. 그만큼 그들이 더 고달프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수많은 자극에 의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어렵고 못 견디는 것이다. 작가의 삶이 숭고해 보이면서 안타까운 이유다.



IMG_1918.JPG



마흔이 넘은 나는 그 시험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걸 배웠다. 아무리 멀어 보여도, 아무리 높아 보여도, 한 번에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에 닿아 있겠구나. 그러니까 꾸준함의 힘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해야 했다면, 주말이고 휴일이고 가릴 것 없이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면, 그 시간을 제대로 버틸 수 있었을까. 결국 꾸준함이라는 것은 무리하지 않는 것과 등을 맞대고 있다. 꾸준하게 오래 하려면 자기 속도를, 자기 한계를 잘 알아야 한다. 무리하면서 오래 할 수는 없다. p75



IMG_1917.JPG



이 책은 한수희의 에세이 신간이다. 특별한 컨셉은 느껴지지 않고 그저 그녀가 쓴 글을 모은 책이다. 글의 분위기는 전작 <온전히 나답게>와 다르지 않다. 좀 더 담백하고 가벼워졌다는 느낌은 있다. 전작에서는 어딘가 좇기는 듯 불안한 마음도 노출됐는데, 확실히 그때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지 이 책에서는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는 느낌. 또 그때는 아이들이 어렸고 지금은 어느 정도 컸다는 차이도 클 것이다. <온전히 나답게>는 2016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2019년에 나왔다.



IMG_1908.JPG



삶은 피멍이 들도록 부딪쳐오는 수많은 장애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걸 이제는 안다. 돈으로, 가짜 행복으로, 일시적인 위안물들로 가리려고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신 차리고 살라며 뺨을 때리고, 또 어떤 이들은 다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멘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그 멘토들도 다 망해버린 건 아닐까.

뭐, 그래도 괜찮지. 망해도 괜찮지. 망해도, 망한 후에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p121



사진1.jpg



한수희 책에 한 번 빠지고 나면 아마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녀가 그 어떤 작가보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아주 쉽게, 잘 읽히게 쓰면서 전하고 싶은 의미도 아주 훌륭하게 전달한다. 따뜻하면서 배울 수도 있는. 앞으로 한수희 작가의 책은 전부 찾아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녀가 집필 활동을 좀 꾸준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그게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한수희 작가 글을 좋아하고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바랄 것이다.


IMG_1921.JPG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이다. 행복은 늘 KTX만큼이나 빠르게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불행은 그보다 더 오래 머문다. 만일 행복이 삶의 목표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야심가일 것이다. 그보다는 불행만 피해도 다행이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소박하고 현실성 있다. p165




2019.10.05.

작가 정용하












매거진의 이전글김영하 <여행의 이유> 이전에 <보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