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감성에세이집 9편 'Give & Take'
Give & Take
나는 이미 지난 에세이를 통해 나의 인간관계관에 대해 털어놓은 바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그저 좋으면 좋은 대로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연락을 하고 그 사람을 수시로 챙겨주는 것이 응당 해야 하는 것쯤으로 여겼었다. 어리석게 나는 상대방에게도 내가 소중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과 어긋난다는 걸 머지않아 깨달아버렸다. 물론 그 사람들도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그리고 함께한 자리에는 끈끈한 사이처럼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주었다. 그러나 웃는 얼굴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함께한 시간이 무색하게 몇 년의 시간 동안 가벼운 안부 하나조차 물어오지 않는 이들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지 또 어딜 떠나 있는지, 일절 궁금해 하지 않는 이들에게 조금일지라도 마음의 티끌을 흘린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이 남지 않은 추억은 그저 일개의 기억이 되더라.
내 마음이 곪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음을 퍼주던 나를 확 돌아서게 한 사건은 역시 군복무 시절 중에 있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인생의 큰 변화는 대부분 군대에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지난날의 나는 ‘인맥’이라 칭하는 달콤함에 취해 그것이 인간관계의 전부인 줄 알고 광신했다. 대학교 사람들을 두루두루 알고 지낸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들과 그저 인사를 주고받은 것뿐인데 황홀했다. 전화번호부에 500명, 600명, 그 이상 늘어날수록 나의 ‘가짜 자존감’도 따라 차올랐다. 무언가 학교의 유명인이 된 것 같은 허울뿐인 탈을 쓴 채 그것이 나의 매력으로 기인한 것인 양 자신감에 찼었다. 아무리 어렸다 하지만 왜 그토록 우매했던 것일까. 나는 심지어 그 ‘인맥’이 그대로, 내가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평생 이어질 거라 믿었다. 그리고 군대 휴가를 나가면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로 그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휴가를 나와 보니 그 믿음은 그저 공상에 가까웠다. 내가 ‘인맥’의 범주에 넣은 사람들에게 나도 그저 그들의 인맥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물론 내가 휴가를 나온 게 무슨 임금님이 행차한 것처럼 무작정 시간을 할애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아쉽다, 라는 투의 문자 한 통은 내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정도가 상대방과 다를 수 있다는 진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게 소중하면 다른 것 따질 필요 없이 서로 소중함을 나누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뭘 그렇게 자신 있게 믿었던 건지 모르겠다.
상병 때 홧김에 전화번호부의 모든 번호를 지웠었다.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새 토양으로 모든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고자 했다. 이제 ‘인맥’이 아닌 ‘내 사람’들로 전화번호부를 채우자 다짐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은 굉장히 편안했다. 이런 게 무소유의 미덕이었던가. 가지고 있는 게 없으니 불안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더라. 내가 아예 이 나라를 떠날 거면 모를까 어차피 학교로 도로 돌아가게 될 터였는데 그 뒤를 생각지 못했다. 지금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불안하다. 혹여나 전공 선배가 아닐까. 어차피 마주칠 사람들의 번호까지 지우는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선 연락의 지분을 구할 정도 가지고 있다. 한 달 전 즈음에 내가 주도한 모임에서 한 살 터울의 형에게 따져 물은 적이 있다. 동아리 활동을 할 시기에 누구보다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그 모임도 일 년 만에 만들어진 자리였다.
“아니, 형. 왜 먼저 연락을 안 하는 거야.”
형은 난처하단 내색을 비추었다.
“나는 원래 먼저 연락을 못해.”
“아니 대체 왜?”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나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일그러지는 형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차마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나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먼저 연락이 오는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약속을 잡자는 게 아니라 그저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자는 건데. 나는 그런 말을 듣고 나면 결국 그 사람에겐 내가 그다지 소중한 사람이 아닐 거란 결론을 내린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
근본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대체 왜 사람들은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는 걸까. 이와 관련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일관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나는 원래 먼저 연락 안 해.’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사람은 꼬인다, 라는 자신감의 표출인 건가. 아니면 연락을 먼저 해야 하는 이유를 정말 전혀 모르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내뱉는, 그 ‘원래’라는 말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3월 31일에 쓴 글이 있다.
가만 보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순간을 글이다> 중에서
이 글처럼 연락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걸까. 연락을 먼저 하는 사람은 무슨 연락봉사단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란 말인가.
나는 관계에 있어서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또 아무리 서로가 잘 맞더라도, ‘Give & Take가 되지 않는 사람에겐 마음을 주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외톨이’의 길로 인도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표현할 줄도 아는 것이 관계의 기본적인 도리라 믿는다. 상대방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먼저 연락해보는 건 어떨까. 먼저 연락하는 사람의 성의를 조금 더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도 받는 것이 편하고 좋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일 테니.
작가 정용하/201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