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도비 Jan 01. 2023

남편을 변호하기 위해 글을 썼다.

도비의 말하지 않는 비밀


12월에 매거진을 만들어 글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도비에게도 여느 초심자들에게 온다는 행운이 왔다. 바로 다음 메인 노출. 매거진을 만들자마자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나서 이 나이 먹도록 블로그 한 번 해 본 적 없는 도비는 조금 쫄고 말았다. 가장 사적인 마음이 가장 공적인 공간에 나간다는 점은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더라. 메인에 글이 올라갈 때마다 조마조마하기도 했고, 가끔 너무 크게 공감해 주는 바람에 남편을 향해 욕을 하는 분이 있으면 어쩐지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발칙한 것도 아무나 못 하는 거구나, 세상엔 참 쉽지 않은 일이 많구나.


그래서인지 문득 2021년 봄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이 글을 꺼낼 일이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당시 글을 쓰면서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랑 두 문단 쓰고서는 <말하지 않는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저장한 글이었다. 남편을 변호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도비는 알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때 글을 썼던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니 도비가 곧잘 하는 앓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슬퍼서 써 놓고 가만히 묻어 두었던 글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 Written by Herself>는 19세기말 미국에서 여성이고 흑인인데다 심지어 노예였던 저자가 ‘Linda Brent’라는 가명으로 쓴 자서전이다. 불행의 삼 박자를 모두 갖춘 저자는 노예제도 하에서 백인 남성에게 받은 성적 착취와 속박당한 모성, 그리고 도주를 위한 분투 과정을 책 속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당시 남성의 주도하에 이뤄진 노예해방운동이 놓치고 있었던 "여성" 노예의 고통을 폭로했고, 그로 인해 노예해방운동에 관심이 적었던 백인 여성들의 공감을 크게 이끌어낸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실화 여부가 도마에 오를 정도로 노예치고는 지나치게 유려한 문장과 묘사가 특징이지만 나에게는 텍스트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 준 아주 의미 있는 작품이다. 바로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눈이다. 


주인의 집에서 도주한 후 할머니집 현관 지붕 아래의 작은 다락에서, 빛도 거의 없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무려 7년이나 숨어 지낸 저자는 자신이 그 모든 긴장과 고통을 감내한 이유가 모성애 때문이었다고 집중해서 서술한다. 그리고 그 7년 동안 저자가 배변이나 생리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로부터 독자는 철저히 소외된다. 글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일을 저자는 굳이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도비 역시 마찬가지다. 십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남편과 좋은 시간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다. 귀찮은 면이 있지만 제법 귀여운 꼬마를 둘이나 낳았고, 좋은 기억도 많이 있다. 다만 아마도 지금 내가 쓰는 이유는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된 설움의 해소이기 때문에 나는 필연적으로 내가 겪어온 슬픔과 외로움, 부당함에 서술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독자의 한쪽 눈을 내 슬픔과 설움으로 향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다른 한 눈이 내 예민함과 잘못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우리네 인생에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나도 힘들었던 상황을 핑계 대며 정당화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다.


글을 읽으신 분들이 공감해 주시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내 글에 드러난 파편적 묘사가 남편과 시댁의 전체인 듯 읽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코끼리의 상아만 만지고서 창이라고 생각한 맹인이 도비의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무도 없으면 좋겠다. 그래야 도비도 글을 쓰며 비로소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도비는 정말 자유롭고 싶으니까.




그저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2023년이라니, 2002년 월드컵 당시 공부밖에 모르는 철부지였던 도비는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다 뻥이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잘 수용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을 잘 살아가 보고 싶다. 새해에는 도비가 원래 되게 웃긴 사람이라는 걸 여기 들르는 분들이 다 아시게 되면 좋겠다.


부러운 줄도 모르고 어느 다정한 부부가 부르는 노래가 생각난다.

커피소년이 부릅니다, <모르는 법>.

사람 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주식창이 불타오르는데 나는 왜 팔지를 못할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