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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3. 2024

피아노 학원을 보내야 할까?

음악을 사랑하는 활동은 학원 없이도 가능하다

 첫째 아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학원에 다니는 아들 친구들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특별히 지금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음악, 미술, 체육 이른바 음.미.체.를 많이 경험하라는 조언도 받게 된다. 그 조언들은 여러모로 일리가 있다. 음미체 활동은 뇌의 다양한 부분을 자극하고 창의력, 신체 조절 능력뿐 아니라 사회성 및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음미체를 제대로 접한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이 뛰어나며,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던데!? 아.... 우리 아들도 이제 학원을 보내야 하나?

'호두까기인형' 발레 시청 하며 차이코프스키 얘기 중인 첫째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배웠다. 내가 만난 피아노 선생님들은 악보를 보는 법, 건반을 누르는 방법 등을 일러주며 피아노 치는 기술을 익히게 도와주었다. 당시 아주 평범했던 그 교수법은 마치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를 위한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런 기술들은 피아노 연주곡을 감상하고 좋아하게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합주를 통해 알게 된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5번'이 내 음악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곡을 즐겨 들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음악 교육은 단순히 악기 연주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음악 자체를 감상하고 이해하며 즐기는 경험을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 1회 50분 남짓의 피아노 수업으로는 충분히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난 더 이상 두 아들이 어떤 악기를 배우고, 언제 피아노학원에 가야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보다 악기 연주를 배우는 이유와,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이에게 음악을 창작하는 기술은 알려줄 수 없지만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소개할 수 있다. 대부분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결과에 닿는 일들이다.


 다음은 아이들과 아직 못다 한 음악 관련 활동의 위시리스트이다.

1. 무서워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끝까지 들어보기
2. "엘~리 하~이 노래"라는 말 대신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라고 해 보기
3. 비제의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나 혹은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중 '캉캉'이 전체 오페라 중 어디쯤에서 나오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하기
4. 차이코프스키의 모든 발레 음악을 다 듣고서도 여전히 '호두까기인형'의 '행진곡'이 가장 좋은지 따져보기
5. 임윤찬의 독주회 등 기억에 남을만한 공연 함께 관람하기
6.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틀어두고 춤만 출 게 아니라, '토끼전'의 전체 내용과 비교하며 가사의 의미를 따져보기
7. 해금과 바이올린, 태평소와 트럼펫 연주를 직접 듣고 소리의 차이를 느껴보기
8. Nicholas Pesci의 'Feeling Happy'라는 현대식 연주곡이 왜 그렇게 좋은지, 어떤 특별함이 있는지, 어떤 악기(?)로 연주되었을지 이야기 나누기
9. 엄마가 태어난 해에 발매된 유재하의 앨범과 BTS의 노래들을 함께 감상하기
10. AI를 활용하여 곡을 만들고, 그 곡에 어울리는 영상까지 만들어 보기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 명의 원생이 있다면 등록의 이유도 만 가지가 될 것이다. 모든 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본질을 누리자는 다짐은 꼭 유지하고 싶다. 음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음악을 통해 무엇을 얻고 또 경험 하고 싶은지, 아이 스스로 질문할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그 본질 말이다.

동생은 가수, 형은 촬영 감독

 음악을 매개로 자신과 세상을 탐구하는 것은 참 특별한 활동이다. 부모로서 아이의 이 특별함을 함께 하는 것을, 나는 감히 특권이라 말하고 싶다. 오늘도 이 특권의 참맛을 느끼는 하루가 되길 바라본다.


2024년 5월 2일, 미술 태권도 수영 등등 다니고 싶은 학원이 많다는 첫째를 위해 고민하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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