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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Dec 20. 2023

망태 할아버지

상상력이 폭팔하는 시기, 만 3~5세

 우리 식구에게 "망태 할아버지"는 대화의 주제로 썩 익숙한 인물이 아니다. 작년이었던가...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망태 할아버지 얘기를 들었다며 엄마도 혹시 알고 있느냐 물어 간단히 답한 것이 유일했다.


 그때는 큰 관심 없이 넘기더니 최근 유치원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던 걸까. 며칠 전부터 첫째가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꺼낸다. 어제 저녁 식사 중엔 "엄마 친구가 망태 할아버지 진짜 있다던데?"라고 말했다.


 망태 할아버지의 존재 여부를 묻는 첫째에게 무어라 답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막막한 마음은 비효율적인 언어가 되어 두서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전설이 생긴 이유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fiction & nonfiction 차이 라거나, 이것은 개인의 믿음에 달린 것이니 네게 이로운 결정을 하라는 조언은.. 정말이지 만 4세 아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다.


"진짜 없어? 박사님들이 공부 해 봤대?"
"망태 할아버지 어떻게 생겼어? 사진 검색해 줘"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얘기를 해주어도 '실존한다 믿는 사람이 있는데 엄마 말을 어떻게 믿나' 하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그 존재를 그저 그런가보다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망태 할아버지가 무서워"
"망태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꽉 잠가줘"


 오늘 밤 굿나잇 인사를 하던 첫째는 내게 또 문단속을 부탁했다. 잊힌 것 같았던 망태 할아버지가 잠자리 눕고 보니 또렷해지는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첫째를 보며 새삼 '그래- 우리 첫째는 겁이 많은 아이지' 싶었다.


 첫째는 참 순종적이다. 정해진 규칙도 잘 지키고, 미래에 대한 대비도 잘하며, 조심성이 많아 '주의'보다는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편이다. 반면 양날의 검처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움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상상력 폭발 시기에 겁까지 많으니 이 전설을 큰 공포로 안고 떨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문득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는 겁박의 말 한마디 없이 키운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첫째의 평안한 밤을 위해 그냥 두어선 안 되겠다 싶어 꼭 안고 소리 내어 기도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나쁜 것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용기도 주시리라 믿습니다-
천사를 보내 문마다 두툼한 방어막을 쳐주세요!"


 첫째는 정말 천사가 우리 집에 오는 거냐- 물었고 그럴 거라고- 성경에 하나님의 심부름을 척척 해내는 천사들 이야기가 있더라- 고 답해주었다. 신념의 방향을 바꾸고 아이의 밤은 다시 평안을 찾았다.


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천사들이 보초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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