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키운 자식

: 다 줘도 늘 모자라게 느끼는 건.

by 호시탐탐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봤다. (제목은 '칼을 꺼내어 휘두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화는 미스터리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되면서 경찰과 탐정 브누아 블랑이 그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얼핏 '아가사 크리스티'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각본에, 누가 더 좋은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배우들이 출연한다. 단순 '미스터리 모던 추리 스릴러' 장르물로 보이지만 영화는 인종차별,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 당연하게 누렸던 것을 위협받을 때의 민낯 등 다양한 미국 사회문제까지 담고 있다. 본 사람들이 모두 추천이라고 해서 봤는데, 역시 안 봤더라면 엄청 아쉬울 뻔했다.(강력 추천!!)


출처: 네이버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보고 나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좋은 부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할런의 가족들은 '겉으로 보기에 제법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모두 아버지의 재력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할런의 85세 생일날 각자의 사정으로 모두 할런과 심하게 다투게 된다. 이런 할런의 고민을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는 간병인 마르타뿐이다. 할런은 작가로서는 인정받고 성공했지만, 자식들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잘못 살아온 것 같다고 후회한다. (자세한 영화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죽을 때 이 돈 다 싸갈 거야?"

합정으로 이사온지 5년 정도 됐다. 성남 집주인은 계약할 때와 문제가 생겼을 때만 연락했지만 합정에선 종종 집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처음에는 집주인에게 연락이 온다는 건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이야기? 가 아니라도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테니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4층에 올라와 줄 수 있어요?"

"지금요?"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다. 귀찮았지만 카디건만 걸치고 올라갔다. 집주인 아저씨와 아줌마는 대략 50년생, 그러니까 우리 아빠 나이다. 무슨 일인가하면 집주인 아저씨가 퇴직을 하시고 개인택시를 하셨었는데 술에 취한 고객들과 심하게 싸우고, 인터내셔널 택시로 바꾸셨단다. 잘 모르지만 인터내셔널 택시는 예약으로 운영이 되나 보다. 그런데 핸드폰을 만지다 뭘 잘못 만지셨는지 핸드폰 자판이 이상하게 눌린다고 좀 봐달라는 거였다.


끄응.. 나도 기계치라 핸드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단은 검색을 해 보고, 남동생에게 물으면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데 평소 무섭기만 하던 집주인 아저씨가 깊은 한숨과 함께 갑자기 푸념을 시작했다. 딸이 나랑 동갑인데 미용을 배우겠다고 해서 몇백을 들여 학원을 끊어줬는데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뒀고, 그 문제로 집주인 아저씨와 다투다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딸이 집을 나가면서 던진 말에 두 부모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죽을 때 이 돈 다 싸갈 거야?"


집주인 아저씨는 딸을 향해 욕을 퍼부었고, 아줌마는 둘 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아이가 뭔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저 돈을 쥐어줬던 게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딸은 38살이 되도록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다. 38살이면 가출이 아니라 독립을 해도 될 나이인데.. 그런데도 다 큰 딸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그냥 둘 수도 없는 엄마 마음과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둘 수 없어 화만 내는 아빠 마음이다.


집주인 아저씨는 늘 '기본'이 중요하다며 동네 여기저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서는 싸움닭이다. 그런 그에게도 자식 문제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같은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나는 스무 살부터 중 3인 동생과 함께 살았다. 남동생은 혼자 컸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키웠다고 생각한다.

10년이 넘도록 남동생을 '키우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일이 있다.

남동생은 29살이 될 때까지 취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야 하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도 없이 휴학을 하고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남동생이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싶은 마음과 계속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어떻게 하면 남동생에게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는지 몰랐다. 그러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합의서'를 작성했다. 서른이 되면 월세와 생활비를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 없고, 더 이상 남동생을 거둘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남동생은 in 서울 취직을 포기하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독립했다.


'나 때문에' 동생의 인생이 잘못되는 건 아닐까? 늘 마음이 쓰였다. (그렇다. 나는 브라더 콤플렉스다.) 남동생 일이라면 늘 전전긍긍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남동생에게 '합의서'에 관해 물었다. 남동생은 처음에는 당연히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괜찮다'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 결정이 옳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다.




'이러려고 내가 아빠가 되었나'

용인에 사는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여유가 생겨 오랜만에 마트에 둘째 아들을 데리고 갔단다. 신난 아이가 장난감 2개를 사달라고 했다. 와이프가 알면 분명 잔소리할 게 뻔했지만 좋아하는 아들을 보니 뭐라도 사주고 싶어 1개만 고르라고 했더니 아들이 물었단다.

"아빠는 능력이 없어?"

7살 아들에게 아빠가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고 구구절절 설명해 봤지만, 아들은 이미 자신을 능력 없는 아빠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고.


그리고 최근에는 집에 들아와 잠든 첫째 아들의 방문을 여는데 문이 잠겨있더란다. 아침에 아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잘 때 아빠가 들어오니까'라고 말했단다. 오빠는 '이러려고 내가 아빠가 되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씁쓸했다. 요즘엔 부모의 경쟁력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도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자식이 아니고 남동생이라... 같은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키워보니'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괜찮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부모가 되기가 겁이 난다. 그래서 '부모'가 된 이들을 존경한다.


다 줘도 늘 모자라게 느끼는 건 자식 마음인가

다 줘도 늘 모자라게 느끼는 건 부모 마음인가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어렵지만,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쉽다.

그냥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3분만 통화해도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겨우 그 정도로?

그렇다. 겨우 그 정도로 가능하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는 걸 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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