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긴 했다, 이거지.
올해 3월 중순부터 약국에서 파트타이머로 근무하고 있었다. 병원 셋을 위에 두고 있는 1층 약국이지만 코어타임에만 잠깐 일하고 퇴근하면 그만이니 부담 없이 다녔다. 약국 파트타임만 한 건 아니고, 일이 없는 날이나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쇼핑몰 업로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4월 말에 갑자기 쇼핑몰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도마님. 제가 주말 동안 많이 고민했는데, 더 이상 사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거 같아요."
어쩐지. 건 당 쳐주는 이 아르바이트는 당일 업로드할 물품 개수가 많아야지 많이 벌 수 있는데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이전에도 다른 쇼핑몰의 업로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대표님도 수입이 적어 사업을 접었었다. 같은 이유로 두 번이나 잘리니 이게 경기가 안 좋아서 이러는 건지, 이 사업을 쉽게 보고 덤비다 다치는 대표님들이 많은 건지 헷갈렸다.
"괜찮아요, 대표님. 저희 잘 맞았었는데 너무 아쉽네요. 대표님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잖아요. 8개월이나 했는데."
"그러게요.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죄송해요. 옵션 수정 너무 잘해주셔서 제가 할 일이 없었어요. 늘 성실하게 해 주시고. 정말 잘해주셨어요! 혹시 이 사업 관심 생기시면 이 번호로 다시 연락 주세요.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대표님은 8개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내 사정을 늘 봐주시며 마감 시간이나 당일 할당량을 조절해주시곤 했다. 취업 문제로 힘들어할 땐 음료 기프티콘도 보내주셨는데···.
서로 감사했다고, 아쉽다고, 이후에 하시는 일 잘 되길 빈다는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일이 줄었으니 다음 달에 들어올 월급도 줄텐데 매달 나갈 생활고정비는 그대로라 얼른 다른 일을 구해야 했다. 구인구직앱을 며칠 동안 들여다봤지만 주 2-3회 약국 코어타임을 제외한 시간에 일할 사람을 구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파트타임을 여러 개 구할 수는 없을 테니 이곳도 그만두고 이직해야겠다고.
"국장님, 저 생계비가 너무 급해서. 6월까지만 할게요. 다른 일 구해야겠어요."
국장님은 일을 구하게 되면 그때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구할 때까지 일해도 된다며.
사실, 조금 귀찮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포트폴리오는 볼 때마다 맘에 안 들고! 하늘과 땅에선 왜 현금이 뚝딱 생기지 않느냐며 속으로 얼마나 울었던지.
이력서는 간단히 업데이트할 수 있었지만 자기소개서는 손도 대기 싫었다. 이렇게 게으를 거면 잔머리라도 굴려야겠다 싶었다. 재작년과 올해 약국에서 했던 일 중 유사하게 끼워 맞출 수 있는 구인공고는 죄다 스크랩을 했다. 예를 들면, 약품 재고 관리와 발주 업무를 했다는 것으로 물류 사무직 구인글을 스크랩한다던가, 컴퓨터 자격증과 전산 프로그램을 다뤄본 적이 있다는 것으로 행정직 구인글을 스크랩한다던가.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지원 버튼을 누르기가 꺼려졌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내 자신감이 낮았던 탓도 있을 거고 와중에 재고 따지기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갈 만한 거리에, 9시 이전 출근은 자신이 없으니 빼고, 신입을 뽑는 곳이어야 해! (물경력이니까)
여긴 역에서 내리면 너무 걷는데? 여긴 올라온 담당 업무만 봐도 귀찮아지겠는데? 여긴 재미없겠고, 여긴 공공기관이라 자소서를 새로 써야 하네.
참 웃기는 게, 지원한다고 다 뽑히는 것도 아닌데 뽑혔을 때를 상상했다. 어디가 얼마나 더 귀찮을지 생각하면서 모니터를 흘겨봤다.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면서 오늘 스크랩한 구인공고도 다 봤다며 맥북을 덮어버리기를 또 며칠. 얘 굶어 죽고 싶나?
약국을 또 지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재작년에 직원으로 일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구인구직앱에 동네 약국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올라와있는 약국 구인공고는 멀거나, 풀타임 정규직이 아니거나, 약사를 구하고 있었다. 애초에 지원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주에 갑자기 세 곳정도 동네 약국 구인글이 우르르 올라왔다. 어제도 하고 온 게 약국 파트타임인데 두려울 게 없었다. 전부 지원하고 두 곳에 면접을 보러 갔고 한 곳에 붙었다. (사실 그전 주에 세 달 전 즘 면접 본 다른 약국에서 구인 중이라며 연락이 왔지만 지하철 환승까지 해가며 출퇴근하기 싫어서 거절했다.)
지하철 타면 한 번에 가는 곳, 적당한 거리, 수요일은 일찍 퇴근, 여름휴가가 길고, 매장 크기는 작고, 처방 수도 적다. 토요일 근무도 있지만 수요일처럼 근무시간은 짧다. 여기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면접에서 이것저것 어필했던 기억. 몇 명 더 면접 보고 결정되면 이번 주 주말 전에 연락 주시겠다고 해서 다른 경력자가 있으면 여기도 떨어지겠거니, 조건이 꽤 괜찮으니 경쟁률 좀 있겠지 싶었다. 기대하지 않고 또 열심히 구인구직앱에 들어가 재고 따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오전만 먼저 일해보자고 문자가 와서 당장 좋다고 답장드렸다. 그게 내일이다.
파트타임을 하고 있는 약국 국장님께 일을 구했다고 다시 말씀드렸다. 일주일 만에 구해오니 조금 놀라신 듯하다.
6월까지는 파트타임을 병행해 가며 새로운 약국 업무를 익혀야 한다. 맘 같아서는 당장 이전 약국에서 빠져나오고 풀타임 근무를 시작하고 싶은데, 두 국장님 모두 내 상황을 봐주시고 아다리를 맞춘 거니 감사한 마음으로 6월 마지막 주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