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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지니 Nov 22. 2024

노을

나를 이루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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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를 만드는 게 일을 그냥 더 하는 건 아니지."


단호하지만 저의 없는 선일의 뜨거운 목소리에 문영은 데이고 있었다. 하지만 통증의 위치를 찾지 못해 어느 곳도 그에게서 바로 떨어질 수 없었다.


"잘한다고 인정을 주진 않아, 사장들은. 더 많은 일을 주지."


문영의 단호함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선일과는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양이 늘어나는 게 아니고 단계를 밟는다고 생각해봐. 운동도 세트를 늘려야 더 효과가 있는 거처럼. 같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는 거야."


문영은 같이 일하는 처지에 할 만큼 하는 자신과 달리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선일이 고까워서 한 말은 아니었다. 사람을 대하는 건 훨씬 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돈이 오가는 관계에선 선일이 미숙하다고 느꼈다. 저렇게 희망적인 마음으로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보다니 상처받고 좌절하게 될 거라고 속으로 단언했다.


"그러니까, 그런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잖아. 가르쳐줄 의무도 없고 같은 돈 받고 일하는 처지에 왜 도와주려는 거야? 내 유능함은 타인의 도구일 뿐이야. 도움 받은 사람도 알려주고 도와줬다고 열심히 할까? 아니, 못 하는 척 일 떠넘길게 뻔해. 잘하려고 생각도 안 할 거라고. 본업도 따로 있는데 거기서 열심히 하고 이런 데서는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어. 이건 그냥 알바잖아. 네가 이쪽일 할 것도 아닌데 여기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건 아닌 거 같아. 나중에 본업에 쓸 에너지가 부족할 수도 있잖아. 그때는 어떡해? 어디서 어떻게 충전하려고?"


"지금도 편해. 힘들지도 않고. 난 본업도 열심히 할 수 있고 알바도 열심히 할 수 있어. 그리고 본업을 못 하게 되면 이런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지금 대충하면 나중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잖아. 난 전부 잘할 수 있는데 왜 대충해? 체력적으로 부족해지는 건 채우면 그만이고 내 의지는 닳는 물건 같은 게 아니야."


일하는 곳에서 문영은 늘 신뢰만큼의 부당함도 받는 사람이었다. 신뢰 가는 선일 또한 어디선가 부당함을 받게 되진 않을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문영을 알 리 없는 선일은 부당함을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또한 문영도 알 수 없었다.


"넌 대충해도 평균이상은 하고 있어, 이미."


"대충해도 평균이상이면 더 했을 때 그냥 이상이 될 수 있는 거잖아."


무결하게 생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꼭 이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문영에게도 있었다. 선일이 재만 남아버리기 전에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급한 문영과 달리 먼저 말을 한 건 선일이었다.


"솔직히 남들처럼 살기 싫어, 나는."


"전혀 남들 같지 않아, 너"


"난 계속 그렇게 살아왔고 넌 지금의 나를 보고 있잖아"


선일을 보면 느껴지던 특별함이 그가 지켜낸 지금 같은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자 문영은 염세적인 자신을 침묵시켰다.


-


돈으로 엮인 관계에서 선을 지키는 건 무의미하다고 경험했다. 선을 넘어 자신을 밀어내는 사람들 때문에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 문영은 항상 일하던 곳을 그만두었다. 선일이 남들 같지 않기에 절벽 아래 지상낙원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건 아니었다. 그저 문영이 사는 세상에 절 벽은 존재하지 않는 걸 알려준 것이다. 어디로 발을 딛어도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앞장서서 뒤따르게 했던 선일은 늘 빨랐다. 일을 적응하는 속도도, 문영에게 다가오는 속도도, 자신의 앞에 가는 그는 여전히 빨라서 따라가기 힘들 때도 있었다. 멈춰있는 문영에게 언제 돌아왔었는지 웃으며 "뭐해, 여기서."라며 금방 또 등을 보이며 앞을 나아간다. 선일을 생각하던 마음이 그에게는 닿지 못했지만 그렇게 문영이 살아가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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