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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중 Nov 24. 2024

나는 도쿄로 가고 있었다

 나는 도쿄로 가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유학이지만, 유학을 마치더라도 귀국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유학과 이민 사이의 무언가라고 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면서, 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들어, 짜증이 났었다.

"왜 하필이면, 미국이나 캐나다도 아니고 일본으로 가는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럴싸한 이유를 이렇게 태연하게 늘어놓곤 했다.

"요새, 한국에서 괜찮은 데 취직하기 엄청 힘들다잖아요. 근데, 또 요즘 일본에서는 사람이 줄어서 그런지, 일본에서 좋은 학교 나온 한국인들을 일본 대기업에서 그렇게 많이 뽑는대요. 일본 대기업에서 경력 좀 쌓고나서, 한국 대기업으로 이직하려고요."

 하지만, 그것은 내게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나는 그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맞추어, 그들이 납득할 만한 답변을 지어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부정할 정도로 특별한 가치관이나 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기업이니 성공이니에 내가 별 관심이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내가 일본으로 가는 진짜 이유는 일본이라면, 나랑 인연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한국의 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어디를 가든 최소한 몇 명쯤은 건너 건너라도 이어져 있을 것 같았으니까. 설령, 그런 일이 진짜 생기더라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을 만큼 한국 사회는 비좁았으니까.

 또한, 나는 내가 지금껏 살아온 동네를 너무나도 떠나고 싶었다. 유년시절을 전부 보낸 이 동네에서 결국 성장기까지 마친 내가 언제까지고 이곳에서 늙어가는 상상을 할 때면, 나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마치 나를 수조에 갇혀, 영원히 변태 할 수 없는 아홀로틀 또는 올챙이 따위의 징그러운 생물처럼 느껴지게 했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어른이 될 수 없어, 여전히 육지로 나가지 못한 채 나이만 들어버린 양서류. 이 얼마나 기괴하고도 끔찍한 생물이 아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나는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무일푼으로 가출하기와 해외의 대학으로 떠나기, 이렇게 두 가지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에는 무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들이 나의 나약하고 썩은 영혼을 구원해낼 수 없고,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장본인이라 해도,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능한 의사였는데, 내가 그런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지독한 난치병에 걸린 탓에 끝내 치료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내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행복하고도 이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그들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분명 나였다. 헌데, 나라는 존재가 그것의 완성을 무참하게 망쳐버렸다. 그런 주제에, 그들에게 하나 뿐인 자식의 기약없는 가출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떠날 수 있겠는가. 나는 나의 불행을 그들에게까지 전이시킬 수는 없었다. 나의 불행은 오직 나만의 것이어야만 했다.

두 번째 방법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꽤나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만약 내가 해외의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면,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바람대로 훗날 자신의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을 풍기면서 그들의 염려를 덜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로써는 이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아니, 이 지긋지긋한 나라에서 화려하게 도망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유학이라는 '도망'은 최고급 한우로 만든 동그랑땡처럼 무척 사치스럽고 이상한 것이었기에, 부담도 많이 되었다. 하지만, 나로써는 그것이 일시적으로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우선, 미국과 유럽부터 알아보았다. 서구권 나라는 비용도 무척 많이 들고(유학으로 가장한 도망에 필요 이상의 예산을 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서구권 나라일수록 한국인끼리 똘똘 뭉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 바로 관두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대학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최소한의 비용이 드는 나라를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멀지 않은 곳에서 최적의 나라를 찾게 되었다. 그 나라는 바로 일본이었다. 다행이도, 일본의 학비와 물가는 한국과 비슷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대학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다, 일본이라면, 한국과 외모적인 차이도 크지 않으니 나는 그곳에 잘 섞여들 수 있을 것이었다. 숨길 수 없는 특징적인 외모로 인해, 서구권 나라에서라면 받을 수 있는 불편한 관심이나 차별도 일본에서라면 내가 입만 잘 닫고 있는 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이것또한 무척이나 중요한 사항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중학시절 있었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로부터 쏟아지는 뜻하지 않은 관심에 남들보다 강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나를 괴롭혔었다.

 나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공립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전에 다니던 사립학교보다 교칙이 느슨한 곳에서 나는 편하게 유학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교실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나에게 한 여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야, 너 맨날 수업 시간에 뭘 그렇게 보는 거야?"

한 번도 얘기해 본 적 없는 그녀가 설마 나에게 말을 거는 건가 싶어, 당황스러워 대답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어? 나.. 그.. 일..본 유학 공부 하고 있어."

나는 병신 같이 말을 더듬어버렸다.

나는 처음에 그녀의 날선 어조 때문에 그녀가 나를 나무라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에게 피해를 끼쳤을 법한 일을 빠르게 돌아가는 지구본처럼 머리를 굴리며 추론해내고 있었다.

'아 시발. 패딩에서 담배 냄새나는 거 때문에 그러나? 흠..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건가? 아까 책상에 엎드려 자면서 코를 좀 심하게 골았었나?'

'아? 아님 담배 한 대 달라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는데.'

여러 생각들이 스치던 찰나, 그녀가 말했다.

"우와, 너 일본 가?"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보니, 진짜 놀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나만큼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근데, 너 혹시 인스타 해?"

'엥? 인스타? 이게 목적이었어?'

"어?.. 어. 하긴 하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에 나는 놀라 또 말을 살짝 더듬었다.

"알려줄 수 있어?"

"아, 그럼 무.. 물론이지."

나는 그녀의 요구에 응해, 반사적으로 내 인스타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그 이유는 내가 거절을 몹시 어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이 무척이나 괴롭게 느껴졌다. 어쩌다 별 다른 이유 없이 거절이라도 하면, 그 일이 꼭 잠들기 전에 머릿속에 떠올라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내게 부탁을 하거나 의지를 할 수 없도록,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런 성격이 사람들에게 이용당해, 무수한 부탁에 시달릴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정말 가끔씩 내게 하는 부탁은 전부 내 능력 안에서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짜증스럽거나 귀찮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쳐 놓은 여러 겹의 벽들을 굳이 허물면서까지 내게 부탁을 해온 것이기 때문에, 그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마저 들어 어떻게든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이성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무얼 물어봐도 되고 무얼 물어봐서는 안되는지, 또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그 당시의 나는 숨길 것은 많은데 보여줄 것은 전혀 없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녀와 나 사이에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것은 정말 다행이었지만.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그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것은 정말 금기였다.).

"여자친구 있었던 적 있어?"

"일본 유학은 어쩌다 가려는 거야?"

"우리 학교에 친한 사람 있어?"

"중학교 어디 나왔어?"

나는 대부분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없어,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며 얼버무렸다. 그렇다고 마땅히 자연스럽게 전환할 화제도 없어 나는 부자연스럽게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질문들을 내가 회피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었고 나의 이상한 태도에 무척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았다. 그런 나머지, 그녀는 나의 중학교 동창들에게 나의 과거에 대해 캐물었다. 아마 그녀는 놀랐을 것이다. 그녀가 들은 내용은 아름답지도 하물며 평범하지도 않은 괴상한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라리 그녀가 환멸을 느끼고 떠나 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대해 시간도 꽤 지났고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던 것 같았다. 그러고는 당돌하게도 내게 와서 말했다.

"태훈아, 나 사실 알게 됐어."

"어? 뭐.. 뭐가?"

"너 혹시 중학교 때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 난 신경 안 써. 괜찮아."


그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다는 고리타분한 표현이 제대로 이해가 갔다.

"어? 잠깐만. 나 교무실 가야 해."

나는 이렇게 그녀에게 정말 성의 없이 둘러대고는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그러고는 아무 빈 교실로 들어가, 조그만한 창문을 통해서도 밖에서 절대 보이지 않게, 교실문에 등을 착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머리가 핑 돌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중, 그냥 담배 한 대가 간절하게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확 스쳐갔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학교가 끝나기까지 한참 남았었다. 그래서, 그나마 학교에서 적당한 장소를 궁리해내고 있는데 문득 여기서 초긴장을 하며 담배를 피울 바에야, 집 근처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민은 순식간에 장소를 어디로 정할 지에서 어떻게 조퇴증을 받을지로 전환되었다.

‘아 선생님께는 대체 뭐라 말하고 나가지..어?'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머리가 아프다고 말해, 질병 조퇴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곧장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을 유려하게 설득한 뒤, 조퇴증을 끊고 그 지옥에서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학교를 빠져나오니, 거짓말처럼 머리도 심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나는 아까 미루어 두었던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걔는 왜 그런거지? 원래 관계라는 건 시간을 들여 서로의 패를 한 장씩 까서 보여주는 거 아냐? 근데 나는 얘껄 이제 한 장 봤나 싶은데 얘는 자기 멋대로 내 걸 다 봤잖아. 이건 무조건 반칙이지. 이건 무조건 레드카드 퇴장감이야. 이건 롤을 하는데 헬퍼를 켠 거나 다름 없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까의 일을 회상하는데, 문득 이 상황 자체가 그냥 무척 비참하게 느껴졌다. 아까의 헤프닝은 마치 갖가지 겨울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그녀의 앞에서 나만이 발가벗고 있던 꼴이 아니던가.

‘애초에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괜찮다고 하는 거지? 그건 전혀 괜찮은 일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그 어떤 억울함도 그 어떤 저항도 없이 버틸 수 있던 건데. 그게 정말 괜찮았으면 그런 짓을 대체 내가 왜 했는데?'

이런 생각들이 마구 몰아쳤지만,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자격이 없다 생각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자격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왜 내 이력을 캤냐고 추궁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자신을 쫓는 일반인에게  “형사도 아닌 당신이 대체 왜 나를 수사하는 거요? “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은 그저 떳떳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신경 안 쓴다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언제 그녀가 내 과거를 위협적인 무기로서 취해, 내게 휘두를지 모른다는 의심을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로부터 “역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와 비슷한 어떤 말이라도 듣는 순간, 나는 평생 망가진 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또, 나는 내가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완전한 확신까지는 없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도 증명 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의심은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녀와 사귀게 된다면, 나의 변화의 정도가 마치 체중계에 올랐을 때처럼 부정할 수 없는 수치로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도쿄에도 가보기 전에 그 체중계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 체중계에 오르게 된다면 나는 도쿄에 가보기도 전에, 부서질 가능성이 있었다. 부서지더라도 나는 도쿄에서 부서지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버려야겠다고 이내 마음을 먹었다. 즉, 나는 그저 내가 변했다고 막연하게 믿을 수 있는, 그저 어찌저찌 계속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익숙한 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이 언젠가는 제발 낯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개를 땅에 박고 그저 하염없이 한동안을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그랬던 것은 그저 더 이상 내가 망설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는 그냥 심심해서 그랬던 것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지루함을 해소해줄 상대를 찾고 있었는데, 어쩌다 내가 그 상대로 얻어 걸렸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낄 것은 전혀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기분이 왠지 찜찜한 것은 왜일까. 아니, 왜가 아니다. 나는 이미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불행하게도 나의 마음에 아니, 나의 마음을 감싸고 있는 달걀 껍데기와도 같이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껍질에 금이 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틈에서는 썩은 노른자와 같이 시커멓고 찐득거리는 무언가가 질질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게나 악취가 나면서도 흉측한 것을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분명 환멸 당할 것을 예상한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 난 또 도망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익숙한 솜씨로 깨어진 틈을 청테이프 비슷한 것으로 붙여 대충 메꾸는 정도 밖에 없다….‘

이렇게 정신없이 몰아치는 생각에 녹초가 되어서야, 나는 한동안 생각을 멈출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이 나라에서 더는 ‘죄’든 ’ 미련‘이든 무엇이든 남기지나 말자고 다짐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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