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냉장고 안에 남겨놨던 과일들을 모두 먹은 후 체크아웃을 위해 숙소 안을 정리했다. 분리배출 방식이 우리나라와 약간 차이가 나서 비닐류와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모아놨다. 일본 현지인 집에서의 짧은 생활이었으나 만약 다음 기회가 있다면 또 머물고 싶을 만큼 아쉬웠다.
도로 위를 지나가는 에노덴을 동영상으로 담으려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건널목에서 잠시 기다렸다. 모처럼 바닷가에 왔는데 모래사장을 밟아보질 못한 것도 무척 아쉬웠다. 다음 행선지인 오후나까지는 쇼난 모노레일을 타고 가야 하는데,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쇼난에노시마(湘南江の島) 역이 에노시마 역 건너편에 있다.
놀이기구처럼 레일 위에 매달려 운행하는 쇼난 모노레일을 타고 오후나(大船) 역에서 내렸다. 아주 오랜 옛날, 이곳에 바닷물이 흘러들어왔을 때 좁쌀을 실은 배가 드나들어 ‘아와후네(粟船)’라고도 불렸다고 하니,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오후나 역에서 바라보면 건너편 산 위로 거대한 관음상이 보인다. 11년 전, 남편과는 그저 신기한 모노레일 전차를 타보려던 것뿐이었으나 관음상까지 우연히 보고선 일부러 가봤던 거다. 오후나 역 코인라커에 짐을 넣고 약간 헤매며 전찻길 위를 통과해 관음상이 있는 곳으로 넘어갔다. 절로 올라가는 길을 찾을 때도 좀 헤맸는데, 가는 길도 그새 잘 정비되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골목길에 나 있는 입구에서 급경사진 보도를 천천히 올라가면 절 입구가 나온다. 입장료는 문 앞에 놓여있는 통에 넣으면 되는데 잔돈이 없어 절 안에 있는 숍에 들어가 계산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려다보면 인자한 미소를 띤 관음보살님이 어서 오라 반겨주신다.
마치 성모 마리아 같은 모습의 희고 고운 관세음보살님 앞에 엄마는 또 정성 들여 기도드리셨다.
대관음상 안에는 조용한 기도 공간이 있다. 이 대관음상은 쇼와 4년(1929년)부터 짓기 시작했으나 세계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23년 간 방치되었다가 1970년대에야 완성되었다. 그 완성 배경엔 한국전쟁 특수가 있었고, 원폭 재해자를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는 등의 껄끄러운 면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딸과 함께 이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와 감사를 방문노트에 적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