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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Nov 28. 2022

악취, 그 보이지 않는 폭력

때리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지.....

 얼마전 대학에 다니는 딸래미가 이것 좀 보라면서 이메일을 하나 보여줬다.

어느 교수가 특정 수업의 학생들에게 보낸 단체 메일이었는데 내용인즉슨 이렇다.


"오랫동안 별러왔지만 오늘은 이야기 해야겠다.
몇몇학생들이 뿜어내는 체취로 인해 괴롭다는 민원?이 있었어.
제발 매일같이 샤워하고 데오도란트를 사용해서
급우들에게 예의를 갖춰주면 안되겠니?"



 '불쾌한 냄새'처럼 말 꺼내기 민망한 주제가 또 있을까?

우리는 상대방의 앞니에 고추가루가 끼어있거나 눈에 눈꼽이 끼어있는 것은 그마나 용기내어 지적해줄 수 있지만 그 사람한테서 나는 '냄새'에 대해서 만큼은 소주를 두 병 정도 마시면 모를까, 맨정신으로는 차마 당사자에게 말할 수 없는 사항이다.


허나 그 '차마 말하기 힘듬'이라는 것은 딱 당사자에게만 적용된다. 제 3자에게는 훨씬 쉽게 말할 수 있다.

 고객을 자주 만나는 직장인으로서 황당했던 민원이 있었다.

바로 우리 지점의 청원경찰의 체취가 너무 심해, 들어올 때마다 초입에서부터 아주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러한 불만을 제기하고 시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그 아주머니 고객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반대로 나 역시 여러 고객을 상대하면서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도 '냄새'이다.

항상 친절하고 매너가 좋으신 중년 부인 고객이 반갑게 인사하면서 다가올 때면 정신이 아득해지며 죄송하지만 제발 다른 동료와 일을 보고 가셨으면 하는 이유는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그녀의 깊은 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듯한 지독한 구취 때문이다.

 반대로 성격이 꼬장꼬장하고 지랄맞기로 유명한 한 아저씨 손님을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어울리지도 않게 그에게서 풍기는 은근한 섬유유연제 냄새 덕이다. 그 향이 그의 괴팍한 성격을 '깔끔해서' 그런거라고 약간의 미화까지 해주니 말이다.


 타인을 괴롭히거나 공격하기 위해 일부러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 난 후 믹스 커피 한 잔을 때리고 가까이 다가와서 업무 지시를 내리는 상사에게 살인충동 마저 느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 ㅅㅇ충동이라는 표현은 상당한 과장이지만, 주목할 점은 글쓴이가 괴로움을 넘어선 분노마저 느껴지며 본인을 담배+믹스커피의 냄새 콤보의 공격에 당한 희생자 또는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그에게 업무적으로 괴롭히겠다고 마음 먹었을 지언정 결코 냄새로 혼쭐내려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단순히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악취를 신경쓰지 않음 자체가 '절대악'처럼 인식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아마존닷컴에서 포장업무를 하는 분이 계셨다.

보수나 베네핏에 대해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워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장을 옮기고 싶어 하셨는데, 이유인즉슨 그 팀의 수퍼바이저로 근무하는 인도인 여성 상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가 얼마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고 (그 분 표현에 의하면) 떽떽거리는지 직장생활이 너무 고달프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 분이 덧붙힌 한 마디가 아주 인상깊었는데

"근데 그것보다 더 힘든게 걔 한테서 나는 암내야. 아주 머리가 뽀개질 거 같아서 일을 못하겠어"

인종차별과 더러운 성격 보다 더 힘든 것이 암내라니......

이쯤되면 냄새는 학대의 한 종류가 될 수도 있겠다.


 비위생적인 냄새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신경쓴다고 썼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괴로운 향기?도 있다.

내게는 어릴적 공중 목욕탕에 비치되어 있던 '쾌남 미래파' 남자 스킨 냄새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싸모님 향수 냄새가 그렇다. 차라리 무취가 훨씬 나으리라.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 뿐만 아니라, 집에서 나는 냄새도 그렇다.

주택을 구입하기 전 100군데 정도의 집을 보러 다녔었는데, 모든 집들이 고유의 냄새가 있었다.

아무리 괜찮은 조건의 집이었어도 들어가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면 나는 1분도 못 있고 밖으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냄새야 집주인이 바뀌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요소였지만 문제는 그 놈의 몹쓸 냄새가 그 집을 단순히 둘러보는 것조차 방해했다는 것이다.   


 허나 생활의 냄새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주부의 옷과 머리에 된장과 생선 냄새가 베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며,

요리사에게서 기름 냄새가 날 수 밖에 없고,

직업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마른입에서 냄새가 나기 쉽다.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땀냄새가 나고

현장 기술직 근로자는 먼지와 땀냄새가 일을 했다는 증거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생활의 냄새까지 비난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생활의 냄새를 관리하는 에티켓은 분명한 미덕이다.


흡연자는 가급적 전자 담배를 피우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되도록 물을 자주 마시고 구강 스프레이를 뿌리며,

운동 또는 육체적인 근로 후에는 꼭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조리할 때 환기에 신경을 쓰고 앞치마를 작용하는 등과 같이

최소한 냄새에 무신경하지 않는 것이다.

밖에서 식사를 한 후 가방에서 꺼낸 껌을 입에 넣으며 주변인들에게도 껌을 권하는 이들은 그런 센스를 갖춘 이들이다.




 패션 테러리스트나 인물이 아주 못난 사람에게 흔히들 '악...내 눈!' 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솔직히 이것은 웃자고 하는 이야기일 뿐 실제로 시각적으로 고통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촌스럽게 옷을 입는 사람이 만약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라면 옷 좀 잘 입고 다녀라..라고 말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또한 그런 충고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을 위한 조언이다.

  

 허나 악취를 내뿜고 다니는 사람에게 소리내어 '악....내 코!!' 라고 말할 수 있는 용자는 드물 것이다.

냄새란 그만큼 은밀하고 개인적인 영역이다. 허나 그 냄새를 관리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다기 보다는 주변사람을 배려하는 측면이 더 크다. 본인의 냄새는 아무래도 타인이 더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관리하지 않은 냄새는 의도치 않게 타인에 대한 배려없음을 넘어서서 심한 경우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마치 믹스커피와 담배의 조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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