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ED
어떤 우울한 밤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난롯가에 앉아 고양이와 함께 언 손과 발을 녹이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라곤 찾을 수 없는 밤이였다. 고양이는 내 무릎 위에 앉아 가르릉 거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장작을 더 집어넣고 고양이에게 따뜻한 우유를 데워주려 일어섰다. 외출하기 전에 데워 둔 우유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고양이는 하루 종일 집을 비운 나를 책망하듯 따라다녔다. 그건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너에게 소홀히 할 생각은 없어.
하루 종일 일할 곳을 알아보고 다녔지만 도무지 써주는 곳이 없다. 내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여겨 고향을 떠나왔지만 결국 부모와 다를 바가 없거나 혹은 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한다. 나의 부모는 아주 고운 커피를 갈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절굿공이를 들고 커피콩을 빻았다. 아주 곱게 갈릴 때까지 빻고 또 빻았다. 눈이 아주 흐릿하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빻았다.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 아버지도 한 번쯤은 곱게 간 그 커피를 마셔봐야 했어야 했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곳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딘지도 알 수 없고, 나의 위치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어머니 또한 생계를 위해 언제나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바느질이며 빨래며 모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우리는 살아있어서 사는 건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여유를 주지 않았다. 비겁하게 도망친 건 나였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용기 있게 삶을 살았고, 도전했고 살아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나를 한 명의 어른으로 만들었고 키워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 불과하다. 이방인. 어디에도 없는. 사라져야 하는 이방인. 어디에도 서술되지 않는 이방인. 나는 가끔 떠오르지 않을 때에 추상적인 인물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내지만 사실은 그건 모두 '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당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함께'니까.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섬뜩함, 불쾌감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기시감. 그것은 모두 나이자 당신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없는 우리들은 계속해서 떠돌 수밖에 없고 어떤 일도 구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야 할 텐데 당신들은 내 글을 읽고 있지만 읽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가, 상관없지.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글이고, 읽어도 상관없는 글이다.
나는 이방인이고 푸르다. 푸르고, 우울하다. 푸르다는 것은 상쾌한 게 아니라 우울한 것이며 비가 내리는 것이고 곧 죽을 것이라는 것, 사멸될 것이라는 것, 장례식이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것, 그러나 나의 방탕한 고양이들은 이 세상에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