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팡야에서 받은 감동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곳의 거대한 바위와 물결, 수상 가옥의 느긋한 삶, 그리고 신성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느 순간들. 그 여운을 등에 지고, 우린 다시 여행사 문을 밀었다.
“이번엔 산으로 가보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립공원 투어를 예약했다. 코끼리 트래킹, 레프팅, 폭포 수영이 포함된 일정.
다음 날 아침.
익숙해진 픽업트럭에 몸을 실었다. 차는 도시를 벗어나 곧 깊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선 코끼리들이 한데 모여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곧 우리도 코끼리에 올랐다. 말보다 느리고, 낙타보다 부드러운 움직임. 코끼리는 비탈진 산길과 계곡을 묵묵히 걸었다. 산속의 바람, 흙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 울음소리. 순식간에 우린 ‘지금’이라는 감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트래킹이 끝난 뒤엔 레프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레프팅은 언제나 팀워크가 전부다.짧은 안전교육을 받고, 낯선 외국인들과 한 배를 탔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노를 저었지만, 이내 물살을 타기 시작하자 모두의 리듬이 맞아갔다. 물보라를 맞으며 웃고, 살짝 기울 때마다 몸을 기울이며 서로를 살폈다. 빠다스(보르네오섬)계곡처럼 아찔한 스릴은 없었지만, 이곳의 여유로운 물살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율하게 만들었다. 그날의 배 안에서는 언어보다 몸짓과 웃음이 더 정확한 언어였다.
마지막 코스, 폭포 수영.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계곡 아래, 그녀가 먼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능숙하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 나는 잠시 주저하다 결국 허우적거리며 뒤따랐다.
바다에서 내가 이끌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풍경. 이번엔 그녀가 나를 이끌었다. 그녀는 수영을 배워본 적 없는 나에게 팔의 각도, 다리의 움직임, 물 위에서의 호흡까지 차근차근 알려줬다. 바다에서 내 구명조끼였던 그녀는, 이곳에서도 나를 떠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짐을 최소화하라는 내 말에 충실했던 그녀는 마른 옷 한 벌 없이 하루를 보냈다. 몸은 젖고, 산바람은 차가웠고, 해는 점점 기울어갔다. 결국 나는 내 셔츠 하나를 꺼내 건넸다. 그녀는 팔을 쭉 뻗어 그 셔츠를 입었고, 헐렁한 셔츠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았다.
산속에서 보낸 하루는 바다에서 못다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는 시간이기도 했다. 소란스럽지 않게 웃었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까워지는 경험이었다.
관계는 꼭 이끌거나 따라야만 유지되는 게 아니었다. 나란히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그날의 산이, 그녀가, 코끼리와 물살이, 내게 알려줬다.
바다는"우리가 어디로 가는가"를,
산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 가는가"를 묻고 있었다.
여정은
설렘에서 안정으로,
탐험에서 동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함께한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옮겨 다니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깊어지고, 마음이 천천히 맞춰지는, '조용한 성장의 시간'이었다.
다음 11편은 여행의 절정입니다. 업로드 순서가 틀어졌지만, 11편을 거쳐야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