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조지아 구금 사태라는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투자를 오히려 확대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정 회장은 조지아 메타플랜트 현장에 직접 복귀하며 미국 베팅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조지아 구금 사태라는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투자를 오히려 확대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정 회장은 조지아 메타플랜트 현장에 직접 복귀하며 미국 베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최근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방문해 현장을 직접 점검했다. 이번 방문은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 회동에 앞서 이뤄진 것으로,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행보로 풀이된다.
더 놀라운 건 투자 규모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8월 한미정상회담에서 2028년까지 4년간 미국에 260억 달러(약 36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존 계획보다 50억 달러나 늘어난 규모다. 지난 9월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이민 당국에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투자 계획을 철회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한 것이다.
HMGMA 공장은 현대차그룹이 55억 달러(약 7조9959억원)를 투자한 자동차 생산 단지로, 1,176만㎡ 규모에 달한다. 연간 3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췄으며, 향후 50만 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 공장은 현대차의 앨라배마 공장(36만대), 기아 조지아 공장(34만대)에 이은 세 번째 미국 생산 거점으로, 완공되면 미국 내 연간 120만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지난 9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을 체포한 사건은 현대차그룹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핵심 기술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공장 가동 시점이 최소 2~3개월 늦춰질 것으로 예상됐다.
정의선 회장은 당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고, 현대차 호세 무뇨스 사장은 뉴욕 투자자 행사에서 “15년간 조지아에 투자해왔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조지아주에 대한 판매 목표를 올스톱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사태 수습에 적극 나서는 한편, 미국 투자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오히려 9월 18일 조지아 메타플랜트에 27억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고 발표하며 현지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10월에는 구금됐던 직원들이 현장에 복귀하면서 공사가 정상화됐고, 11월에는 미국인 대상 대규모 공개채용을 실시하며 현지 여론 달래기에도 나섰다.
정의선 회장이 미국 베팅을 멈추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대해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던 기존 방식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 현지 생산을 대폭 확대해 관세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 카드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도 개선한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정 회장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참석 하에 21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260억 달러로 증액했다.
미국 현지 생산 비중도 급속히 늘고 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의 올해 1~3분기 가동률은 99.6%로 사실상 풀가동 수준이고, 기아 조지아 공장도 101.4%를 기록했다. HMGMA 공장 역시 올해 1분기 50%에서 상반기 72.6%로 가동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전략은 단순히 완성차 조립 공장을 짓는 수준을 넘어선다.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통한 일관 생산시스템 구축이 핵심이다. 조지아주에는 HMGMA 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합작 공장, 각종 부품 협력사들이 집적돼 있어 완전한 생산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HMGMA 준공식에서 “미국 내에서, 그리고 미국과 함께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에 어느 때보다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을 단순한 수출 시장이 아닌 ‘제2의 본토’로 만들겠다는 장기 비전을 갖고 있다.
특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HMGMA의 유연한 생산 체제는 미국 시장의 수요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강점이 된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성장세가 둔화되고 하이브리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HMGMA는 생산 라인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 가능하다.
조지아 구금 사태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현지 한인 상권 매출이 20% 급감했고, 최소 6개 한국 기업이 대미 투자를 철회하거나 보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대차 관계자들도 “이번 사태로 공장 가동이 늦어지고 비용도 증가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후퇴하지 않았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방한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과 면담을 갖고 비자 문제 해결을 약속했고, 미국 백악관도 인력 복귀 절차 간소화를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이를 계기로 고용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인 채용을 대폭 늘려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조지아 사태 이후에도 미국 투자를 확대한 건 단기적 손실보다 장기적 시장 지배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미국 시장은 연간 1,500만대가 팔리는 세계 최대 수익성 시장이고, 여기서 밀려나면 글로벌 1위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글로벌 판매 700만대, 세계 3위 자동차 기업 목표를 세워뒀다. 이를 달성하려면 미국 시장에서 최소 100만대 이상을 판매해야 하는데, 현지 생산 없이는 불가능한 목표다. 결국 정의선 회장의 미국 베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셈이다.
정 회장은 최근 신년사에서도 “2025년은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지아 메타플랜트는 그가 말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의 핵심 거점인 셈이다. 과연 정의선의 36조원 짜리 승부수가 성공할지,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