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미래라고 했다. 친환경에 유지비까지 저렴하다며 정부와 제조사가 앞다투어 보급을 확대했다. 하지만 2025년 추석 연휴, 전국 고속도로에서 터져 나온 전기차 차주들의 비명은 화려한 구호 뒤에 감춰진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기차가 미래라고 했다. 친환경에 유지비까지 저렴하다며 정부와 제조사가 앞다투어 보급을 확대했다. 하지만 2025년 추석 연휴, 전국 고속도로에서 터져 나온 전기차 차주들의 비명은 화려한 구호 뒤에 감춰진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충전소에서 40분 넘게 기다렸어요. 애들은 보채고, 화장실도 못 갔어요.” “배터리 10% 남았을 때 찾은 충전소, 고장이었어요. 다음 충전소까지 50km, 진짜 울 뻔했어요.”
이번 추석, 전기차를 타고 귀성길에 오른 수많은 운전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한 내용이다. 전기차 등록 대수는 2021년 27만 대에서 2025년 9월 기준 77만 대를 넘어서며 급증했지만, 충전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추석 특별교통대책 기간 동안 전국 고속도로를 이용한 전기차는 약 170만 대로 추산된다. 2년 전보다 35% 급증한 수치다. 하지만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급속 충전기는 211개소에 1590기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충전기의 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한국도로공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전기차 충전기 중 43%가 100kW 이하 저속 충전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부선의 경우 253기 중 109기가 저속 충전기다. 300kW급 초급속 충전기는 30% 수준에 그쳤다.
한 전기차 오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산 내려가는 길에 충전소 두 군데 들렀다. 첫 번째는 50분 대기, 두 번째는 느린 충전기라 1시간 걸렸다”며 “내연차 타던 때는 20분이면 주유하고 식사까지 끝냈는데, 이제는 휴게소가 ‘전기차 대기소’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충전소 간 거리도 운전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전국 평균 충전소 간격은 약 30km지만, 광주대구선 50.5km, 당진영덕선 45.0km, 중앙선 42.0km 등 노선별 편차가 크다. 특히 수도권 제1순환선 구리~일산 구간은 74km, 중앙선 단양팔경~안동 구간은 70km로 사실상 ‘충전 공백지대’로 지적된다.
한 차주는 “배터리가 10%까지 떨어졌는데 다음 충전소가 50km 남았다는 안내가 떴다. 에어컨 끄고, 속도 줄이고, 식은땀 흘리며 간신히 도착했다”며 “내연차였으면 이런 스트레스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내연차는 주유에 5분이면 충분하다. 긴 정체 속에서도 주유소를 찾아 빠르게 연료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다. 이런 ‘자유로움’이 전기차에서는 불가능하다. 충전소 위치에 따라 경로를 짜야 하고, 충전 시간까지 계산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추석 기간 망향·논공 등 주요 5개 휴게소에 이동형 충전기 14대를 배치하고 고장 점검반도 운영했다. 하지만 20kW급 이동형 충전기는 주행거리 약 100km 확보 수준에 불과해 급증한 전기차 이동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인프라 확충이 더딘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급속 충전기 1기 설치에는 1000만~30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며, 평균 이용률은 30~40% 수준에 머물러 투자 회수 기간이 길다. 특히 지방 노선은 수익성이 낮아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쉽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명절 등 특정 시기에는 대기가 불가피하지만, 평시 이용률을 감안하면 무작정 증설을 하기는 어렵다”며 “충전 효율과 운영 체계 고도화가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밝혔다.
전기차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이다.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고, 유지비도 저렴하다. 특히 도심에서는 회생제동 기능으로 연비 효율을 챙길 수 있고, 원 페달 드라이빙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으로 운전 피로도가 낮다.
하지만 장거리 주행 앞에서 이런 장점은 빛이 바랜다. 대부분의 보급형 전기차는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가 300~400km 수준이고, 이 수치는 여름·겨울철 기온과 에어컨·히터 사용에 따라 20~30%까지 줄어든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충전소 한 번은 필수인 셈이다.
귀성길처럼 차가 막히는 상황에서는 회생 제동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정체로 인해 배터리 소모는 더 커진다. 한 차주는 “아이들 태우고 휴게소에서 50분 대기했다. 애들은 보채고, 화장실도 못 가고, 진짜 지긋지긋했다”며 “다음엔 내연차 빌려서 갈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국에 120만 기의 충전기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만 2356억 원의 인프라 예산을 편성했다. 국토부도 고속도로 충전소 추가 설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는 “보조금 중심 정책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충전 인프라는 설치비 외에도 유지보수, 전력 인입, 고장 대응 등 운영비 부담이 크다. 충전소는 장시간 점유되는 구조상 회전율이 낮아, 주유소가 5분 만에 한 대를 처리하는 반면 전기차 충전에는 30~40분이 걸린다.
현대차그룹은 고속도로 초급속망 ‘E-pit’을 도심형 ‘E-pit City’로 확장 중이며, GS커넥트는 주유소·편의점 복합 충전소를 확대하고 있다. 롯데·신세계·스타필드 등 유통 대기업은 쇼핑몰 내 ‘체류형 충전 인프라’를 통해 충전 시간을 매출로 전환하는 모델을 실험 중이다.
이번 추석 귀성길은 전기차 시대가 직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도심 주행 위주라면 전기차는 여전히 유리한 선택이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이 잦고, 휴게소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면 내연차의 단순함도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산 내려가려다 울 뻔했다”, “방전 직전까지 충전소 찾아 헤맸다”, “전기차에 정 떨어졌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일부는 “다음 명절엔 내연차 빌려서 간다”고까지 말한다.
전기차의 시대는 분명히 왔지만,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선택 전에 자신의 주행 환경과 필요에 맞춰 차종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화려한 구호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그것이 바로 2025년 추석 연휴가 폭로한 전기차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