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계가 ‘통상임금 확대’라는 초대형 뇌관 앞에 섰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최근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조건부 상여금과 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연간 최대 6조8천억 원에 달하는 추가 인건비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되며, 관세 폭탄과 경기침체로 이미 고통받고 있는 국내 제조업계에 또 다른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가 ‘통상임금 확대’라는 초대형 뇌관 앞에 섰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최근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조건부 상여금과 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연간 최대 6조8천억 원에 달하는 추가 인건비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되며, 관세 폭탄과 경기침체로 이미 고통받고 있는 국내 제조업계에 또 다른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 산업계를 뒤흔든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차 전·현직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기존 통상임금의 3대 요건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중 ‘고정성’ 요건을 제외한 획기적인 결정이었다.
이 판결의 핵심은 명확하다.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 조건부 상여금이나,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만 받는 휴가비, 명절귀향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항목들은 ‘모든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받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됐었다. <a href="https://www.yna.co.kr/view/AKR20250928009600003" rel="noopener">연합뉴스</a>
하지만 대법원은 “고정성 요건은 법령에 근거가 없고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며 이를 통상임금 요건에서 제외했다. 이 판결 이후 2025년 임단협 협상장에서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2025년 9월, 현대차와 기아는 노조와의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차는 휴가비, 명절 지원금, 연구 능률향상비, 연장근로 상여금, 임금체계 개선 조정분 등 5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산입하기로 합의했다. 기아 역시 명절보조금(설·추석 각 110만원), 여름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현대차는 노조원 1인당 연간 평균 318만원을 추가로 지급하게 되며, 4만2천여 명의 노조원을 고려하면 연간 약 1,351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 여기에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 150%를 통상임금에 산입한 것까지 더하면 현대차의 추가 인건비 부담은 무려 연간 2,300억원에 달한다. <a href="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9233136i" rel="noopener">한국경제</a>
기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통상임금 확대로 직원 1인당 최소 300만원 이상의 임금이 추가로 산입되며, 대법원 판결 시점인 2024년 12월 19일부터 소급 적용된다는 점에서 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아 노조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더해 ‘통상임금 특별 위로금 2천만원 지급’까지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이 “통상임금 관련 판결은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결정은 단순히 두 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완성차 업계는 물론 제조업 전반으로 통상임금 확대 요구가 확산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GM은 올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판결을 인지하고 있으며 영향 및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수준에서 합의했지만,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도 2025년 10월 30일, 현대차와 기아에 이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합의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이번 합의로 직원 1인당 월 평균 24만원의 임금 인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생산직 근로자 수가 1,800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사측의 추가 부담은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를 넘어 타 산업으로도 확산 조짐이 뚜렷하다. 삼성전자 소속 직원 500여 명은 최근 수원지방법원에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임금에 어떤 수당을 포함할지가 올해 임단협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며 “정부의 친노동 정책에 탄력을 받은 노조들이 이참에 임금과 각종 수당 인상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떠안게 될 추가 인건비 부담을 연간 6조7,889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국내 기업 당기순이익의 14.7%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경총은 “이 금액이면 9만2천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인건비”라며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청년 실업자에게 1인당 연간 2,794만원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임금이 확대되면 퇴직금도 함께 늘어나는 만큼 기업이 쌓아야 할 충당부채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특히 현대차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과 위협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인건비 상승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통상임금 확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경총 관계자는 “통상임금 산입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근로자의 임금 증가율을 살펴보면 29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0.6%에 불과하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은 4.9%에 달한다”며 “임금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여금을 많이 받는 대기업 근로자일수록 통상임금 확대로 인한 추가 소득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여금이 적은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파업 등 노사분쟁이나 소송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통상임금 갈등이 두드러진 버스업계는 전국에서 파업 우려를 낳으며 진통을 겪었다.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2025년 5월 파업 직전까지 갔다가 유보한 후 9월 다시 공식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여전한 입장차만 확인했다. 경남 창원 버스회사들과 전·현직 운전기사 수백 명 간의 통상임금 소급분 1심 소송은 최근 운전기사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사측의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 위반 주장에 대해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일축했다. 그간 통상임금 소송에서 경영계는 ‘통상임금 확대로 부담이 늘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신의칙 위반을 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대법원이 2020년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등에서 ‘신의칙 항변의 인용 여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제동을 건 것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사측이 신의칙 주장으로 통상임금 책임을 면제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노사로부터 문의나 진정이 들어올 시 기업별로 해당 수당이 구체적으로 통상임금에 산입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마다 수당을 지급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름이 똑같이 ‘명절 수당’일지라도 일률성과 정기성 등이 갖춰지지 않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판결 후 통상임금 질의가 매우 늘어 최대한 답변하고 있지만 해당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될지는 결국 노사가 판단해야 할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임금의 범위나 용어에 대한 기업들의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명칭의 수당이라도 기업마다 지급 조건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통상임금 확대가 한국 기업의 경쟁력 하락을 부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미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와 비교해 높은 인건비 부담을 지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추가 인건비 부담까지 지게 되면 국제 경쟁력이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노동계는 그동안 부당하게 축소됐던 통상임금 범위를 정상화하는 것이며,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 판결이 법령에 근거 없는 ‘고정성’ 요건을 제외한 만큼, 이는 법의 올바른 해석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통상임금 확대 결정은 한국 산업계에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5사는 물론 제조업 전반에 걸쳐 통상임금 확대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며, 이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와 근로자의 소득 증대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져올 전망이다.
관건은 기업의 경쟁력 유지와 근로자의 권리 보장이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균형 있게 조율할 것인가다. 통상임금 확대가 불가피한 흐름이라면,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등을 통해 추가 부담을 상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노사 모두 상생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