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일지
동방신기로 실컷 구구절절 글을 썼던 사람의 다음 덕후일지가 시아준수라니. 이 무슨 '깐콩이냐 안깐콩이냐'를 외치는 소리인가. 물론 맞다.
하지만 동방신기로 살았던 삶보다 이제는 JYJ로, 김준수로 산 시간이 훨씬 더 길다. 동방신기는 2003년~2009년. 약 6년, 지금의 김준수는 2010년~2024년. 약 14년. 나도 그시절의 나와 다른데 그도 많이 변했다. 그러므로 오늘은 동방신기 이후에 치열하게 살았던 김준수 삶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2009년에서 2010년까지
당시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 7월 31일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세 명의 멤버가 SM에 소송을 내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유노윤호, 최강창민은 SM에 남기로 결정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셋과 둘은 방향이 달랐던 것 같다.
셋은 좀 더 돈도 많이 벌고 싶고 하고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싶고 내가 활동하고 싶을 때 활동하고 싶었던 것 같고 두 명은 안정된 회사 밑에서 안정적으로 아티스트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예전부터 김준수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가 하는 말을 다 믿고 싶었기에 두 명 보다는 세 명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내가 2명을 지지한다고 얘기할 순 없다. 이제와서 보니 2명의 선택도 어렴풋이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는 것이지만, 가슴은 3명을 지지한다. 그런 선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그 뒤 지속된 싸움을 보고 있자면 그 두 사람은 도저히 응원할 수 없기에...)
전속계약 해지 법정 소송이 시작되자 JYJ는 방송길이 막히게 된다. 물론 겉으로 보는 SM의 외압은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 외압은 있었다. 방송 관계자가 되어보니 더더욱 알겠더라. 지금은 정말 많이 없어졌지만 한창 준수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시만 해도 그랬었다. 보이지 않게, 어떨 땐 너무나 눈에 보이게, 외압이 지속되자 당시 3인은 한국 활동이 어려워졌고 일본 소속사인 에이벡스를 통해 JYJ로 처음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후에 한국에서도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데 거기 안에 있던 가사들이 너무 절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게 많아서 그들은 이 노래들을 부르며 많이 울었다.
나는 사실 이 시절 고2-고3이었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재중, 유천은 한국 활동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드라마 활동을 이어갔다. 드라마는 SM이 손을 뻗치기 어려웠지만 가요계에는 절대 발을 딛일 수 없었다. 근데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터지고 거기 수록된 OST '찾았다'도 터지면서 KBS 연기대상에 JYJ가 등장하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SM을 저버린 대가로 JYJ에게는 '노래'를 하나 부르기가 이렇게나 어려웠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말 시상식에 JYJ가 등장했고 팬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2011년만 해도 대학교에 들어가서 적응하느라 바빴던 시기였다. 서울에 가고 싶어했던 20살의 두마베는 결국 지방 국립대를 가게 된다. 이때 준수는 연기 활동을 못하자 뮤지컬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래도 나는 예전 덕질하던 의리로 뮤지컬 모차르트!와 천국의 계단을 보러간다.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이제까지 김준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근데 뮤지컬 가서 보니 준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민영기, 정선아, 신영숙이라는 배우가 너무 발성이 좋아서 그야말로 '지붕 뚫리겠다'는 생각을 했고 소름이 돋았다. 내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구나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었다.
대학교 생활 적응과 뮤지컬의 충격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JYJ에서 탈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학교 친구들은 모두 TV, 연예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 얘기들만 하고 TV는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는 'TV 없으면 도대체 뭐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했을 만큼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안에 속해보려 부단히 노력했다. 관심 없는 화장도 열심히 했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날 첫 MT에 갔는데 갑자기 10학번 선배가 내게 건넨 첫마디, "너 JYJ 팬이지?" 나는 내 크나큰 비밀을 들켜버린 것처럼 놀랐고, 어쩔 수 없이 뼛속까지 숨길 수 없는 JYJ 팬이구나 했다. 알고보니 MT 전에 대전 팬미팅 차대절에서 내 이름이 특이해서 나를 알아봤단다. 하긴 내 이름이면서, JYJ 팬이면서, 대전 살고, 대학교 여기 다니는 사람이 없을 거 같긴 하다. 그 후로 언니와는 내적 끈끈함이 많이 작용되어 나중에 내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받았으며 나는 빠져나갈 수 없는 ‘빠순 굴레’에 빠진다.
'의리'로 빠순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중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나의 빠순 생활에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별 기대 없이 보러갔던 엘리자벳에서 그는 다시 태어났다. 신비한 그의 목소리가 초월적인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김준수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순간이었다. 나는 그 공연을 보며 울었다. 최정상의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이 무대로 뮤지컬 어워즈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때부터 활동을 쉬지 않고 달리기 시작한다.
엘리자벳에 영향을 많이 받은 첫번째 솔로 앨범 '타란탈레그라'를 발매했고 첫번째 콘서트를 가보곤 "어제의 김준수와 내일의 김준수는 다르니 모든 공연을 다 가야한다"는 어떤 신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다시 불타오른 마음은 꺼질 줄 모르고 계속 솟구쳤다.
그러나 나는 당첨운과 거리가 먼 사람. 응모 하는 족족 떨어졌고 시험도 찍으면 항상 잘 틀리는 타입이다. 그런데 나의 순수한 이 사랑에 하늘이 감동했을까 9년 만에 처음으로 팬사인회에 당첨되었다. 그것도 CD 고작 1장 샀는데 말이다. 한껏 차려입고 갔는데 사인도 정말 쏜살같이 하고 하고 싶은 말 못해서 버벅이다가 "아 진짜요?"만 듣고 내려왔다. 싸인은 고이 모셔져 우리 본가에 있다. 나중에 꼭 좋은 곳에 전시해주리라.
끝나고 질문 타임이 있었는데
평생을 발표나 질문이 있다고 손을 들어본 적 없는
내가 무슨 용기가 생긴 건지 손을 들었다.
얼떨결에 뽑혔고 진짜 되도 않는 질문을 막 던졌다.
나만 보면서 1분여 가량 동안 답을 해주는데.. 사람 미치게 하더라. 이 좋은 걸 다른 팬들은 9년동안 누리고 살았겠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욱 김준수에 미쳐갔다. 모든 순간은 김준수를 위해 살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고 대학교 학점은 나가리가 되고 서울은 뺀질나게 드나들었다.
2013년 일본 소속사 에이백스에서 JYJ대신 2인 동방신기를 택하면서 JYJ도 일본 활동이 어려워졌는데 그래도 JYJ의 인기를 막을 순 없었는지 3년 만에 다시 도쿄돔에 재 입성했다.
학생 때 나는 해외투어를 꼭 가고 싶어했다. 그때 당시에는 카시오페아 투어가 있어서 비행기+숙박+티켓까지 해서 파는 티켓이 있었는데 학생 신분이라 해보지 못했다. 해외투어도 혼자하면 절대 못할 일이었겠지만 덕친(덕질 친구)이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못 가게 되서 다 예약은 되어있고 돈만 내면 된다는 것. 비행기도 내 이름으로 바꿔준다고 하고, 호텔, 콘서트 티켓 등 모든 것이 구비 완료 되어있다고 한다. 2박 3일 가는데 돈은 80만원. 나는 당장 돈을 입금했고 엄마한테는 그냥 여행 간다고 했다. 그것도 바로 다음주에. 엄마는 처음에 반대하다가 돈을 다 냈다고 하니 결국 다녀오라고 했다.
처음 가본 낯선 일본 공연장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웅장하고 스케일도 크고 음향도 좋았다. 100% 일본어로 진행된 공연이었고 나는 3층 (다음날은 심지어 4층) 꼭대기 석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했고 가슴이 벅찼다. 또 한 번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를 느꼈다.
일본 공연을 가보며 신기했던 점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모든 좌석이 랜덤으로 지정된다는 점이다. 표를 살 때 층만 나눠져있으며 층마다 어떤 자리든 가격은 동일하다. 모든 사람들은 공연장에 입성하면서 콘서트 티켓을 어떤 기계에 넣는데 그 기계가 좌석을 랜덤으로 지정해준다. 우리나라 앞자리는 프리미엄이라고 돈을 붙여 파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신기한 점 두 번째는 우리나라 콘서트는 되게 그 가수를 보려고 치중되어있는 반면에 일본 콘서트는 '나 자신'이 즐기려고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 그래서 핫도그를 들고 들어와서 앉아서 즐기면서 영화보듯 재밌게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만약 먹거리 들고 콘서트에 들어갔다면 아주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록 점점 미쳐가던 어느 날, 덕질의 정점을 찍는 김준수의 두 번째 정규 앨범 'Incredible'이 나온다.
글이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