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 판결의 온도 >
선수 교체의 적절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2018 월드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 이긴 경기를 지기도 하고, 지고 있던 경기를 이기는, 경기의 승패와 팀의 운명이 바뀌는 모습을 TV를 통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사람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는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방송에도 적용된다. 패널 섭외에 따라, 누굴 출연시키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승패가 좌지우지된다. 특히,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은 방송일 경우, 출연자 섭외의 실패는 시청률이 저조한 방송에 비해 더 큰 타격을 준다. 더 잘 될 수 있는 방송이 한 번의 실수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쉽다. 사법부가 내린 정식 판결들 중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경우를 선정하여,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고자 한 MBC < 판결의 온도 >는 섣부른 선수 교체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장점을 잃어버렸다. 3개월 만에 정규 편성돼 시청자 곁으로 다가왔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끝에 나온 건 묘수가 아니라 악수(惡手)였다. < 판결의 온도 >는 무엇이 문제일까.
‘시범 방송’을 의미하는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에 변화를 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일럿 방송을 통해 시청자의 반응을 확인하고, 정규편성을 위해 변화를 준다. 방송 시간대를 기존과 다르게 바꾸기도 하고, 프로그램 구성이 달라지기도 하며, 출연자들의 교체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MBC < 판결의 온도 >는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되는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검증한다는 취지로 2018년 3월 15일 첫 파일럿 방송을 했다. 첫 시청률 3.4%를 기록하며, 대중의 높은 관심을 이끌었다. 그 기세에 힘입어 6월 22일 정규편성이 됐다. 첫 방송에서 정규편성까지 제작진에 주어진 시간은 약 3개월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작진은 프로그램에 변화를 줬다.
기존 파일럿 방송의 후반부를 담당하던 < 시간을 달리는 법(法) > 꼭지는 정규편성에서 사라졌다. 앞서 논의된 판결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었고, 무슨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애매모호했던 분량을 정규편성에서 과감히 없앴다.
그런데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에 손을 댔다. 정작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다른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강점에 변화를 줬다.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일에 변화를 줬는데, 이것이 사단이 됐다. 문제의 시작은 바로 프로그램의 핵심인 MC의 교체였다.
두 번의 파일럿 방송은 코미디언 김용만 씨가 이끌었다. 정규편성 이후 현재까지 4번의 방송은 송은이 씨가 이끌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두 사람은 방송인 서장훈 씨와 호흡을 맞추며, 경제, 언론, 사법 분야의 전문가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용만에서 송은이로의 교체는 단순히 MC 한 사람의 교체로 바라 볼 문제가 아니었다. 교체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구성에도 영향을 줬다. 김용만 씨는 2번의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국민의 공감대에서 벗어난 사법부의 판결을 시사평론가 진중권, < 시사in >의 주진우 기자, 전직 부장판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갈무리해 우리 사법부의 판결이 정확히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를 드러냈다.
치열한 논리의 싸움. 수준 높은 논쟁(論爭) 속에서 김용만 씨의 재치 있는 언변과 진행은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느라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에 웃음과 재미를 ‘자연스럽게’ 선사했다. 시사적인 메시지 전달과 재미의 균형을 유지해 ‘쇼양(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의 합성어)’의 특성을 십분 발휘했다.
하지만 송은이 씨의 진행은 문제가 심각했다. 재미를 주려고 지나치게 ‘개그’와 ‘말장난’을 선보이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는 재미의 유무와 함께 복잡한 판결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했다. 내용을 정리하면서 토론된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했던 김용만 씨의 진행과 대비됐다.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유가 없는데 굳이 변화를 준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MC 교체의 정확한 이유는 현재까지 외부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현재 보여주고 있다. 송은이 씨로 교체된 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9%(닐슨 코리아 제공, 7월 13일 기준)를 기록했다. 첫 파일럿 방송에서 보여줬던 3.4%에서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졌다. 왜 교체했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사전적 의미로 시사(時事)는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의미한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출연했다. 그의 출연은 국민의 공감대는커녕 분노를 일으켜 사건이 돼 버린 사법부의 다양한 판결을 다른 누구보다 잘 따져봐 줄 사람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진중권 씨는 두 번의 파일럿에서 그의 역량을 뽐냈다. 복잡한 사법부의 판결 내용을 따져가며, 같이 출연한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에 동의 및 반박, 사법부가 벌여놓은 이상한 판결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과 논리로 싸우고, 다투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냈다. 논쟁(論爭)을 통해, 국민의 정서와 이반 되는 판결로 답답해하는 출연자와 시청자에게 청량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정규편성에서는 진중권 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그가 있었던 자리에 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차지했다. 정규편성 첫 방송에서 임현주 아나운서는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라고 당찬 포부와 다짐을 드러냈다.
그런데 임현주 아나운서는 그저 ‘평범’하기만 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이 자신들만의 전문성을 드러내며,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치열하게 다른 출연자들과 논리로 치고받는 장면에서 그녀는 존재감이 없었다. 전문적인 분석과 의견 제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방청객과 시청자가 담담해야 할 몫인 공감과 분노를 프로그램에서 드러내는데 그쳤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는 정규편성에서 등장하며, “공중파에서 최초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는 점만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그쳤다. 그녀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는 점을 시청자가 굳이 알아야 되는 지도 의문이며, 이마저도 사법부의 판결을 분석하는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애매모호했다. 왜 사람을 교체했는지 두 번째로 의문이 드는 지점이었다.
두 번의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독일인인 다니엘 린데만,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가 각각 출연해, 우리 사법부가 내린 판결에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제시했다. 신선했다. 국내에서 자신들의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사례를 토대로 우리 법이 무엇이 문제인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에서 다른 지를 설명했다.
그런데 정규 편성이 된 뒤, 붙박이 출연이 아닌 외국인 출연자 몫이 방송인 ‘사유리’ 씨로 고정이 됐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바라보겠다는 자세는 앞선 파일럿 프로그램의 출연자들과 동일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사유리 씨는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보고, 엉뚱한 답변과 대책 없는 해결책 제시로 단순히 ‘재미’와 ‘웃음’ 전달하는데 그쳤다. 파일럿 방송에서 다니엘과 알베르토가 보여줬던 충고와 조언은 정규편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바꾼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마지막 대목이었다.
방송인 사유리 씨의 이러한 모습은 국민이 생각하는 법의 수준이 무엇인지, 우리 사법부의 판결이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를 따져봐야 할 상황에서 판결의 내용을 단순한 '웃음거리'로 머물게 했다. 이 과정에서 송은이 MC와 이뤄지는 반복적인 말장난으로 사법부의 이상판 판결을 보며,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데 힘들게 했다.
그래서 결국 깨져버렸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앞으로의 방송을 기대하게 했던 사회적 메시지 전달과 웃음의 균형이 무너져버렸다. 국민의 법 감정을 살펴보고, 사법부의 판결을 검증하겠다던 프로그램이 갖고 있던 취지는 웃음과 재미라는 요소에 가려져 본래의 의도가 감소됐다.
MBC < 판결의 온도 >는 시즌제로 기획됐다. 첫 시즌은 8월 10일부로 끝이 난다. 아쉽게도 첫 방송에 비해 현재 시청률이 오름세에 있지 않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복합적인 이유에서 기인한다. 다양한 원인 때문인제, 지금까지 < 판결의 온도 >가 보여준 원인은 '사람'에 있었다. 다가오는 시즌에서는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파일럿 방송에서 보여준 장점을 살리기 위해, MBC < 판결의 온도 >는 정규편성에서 보여준 출연자 교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결방안은 간단하다. 장고 끝에 나온 악수(惡手)를 무르면 된다. 다시 사람을 바꿔 변화를 주면 된다. 원래의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감출 수 있는 출연자를 섭외하면 된다.
사람의 교체와 함께 다가오는 시즌에서 MBC < 판결의 온도 >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 기획될 시즌에서는 첫 파일럿에서 보여줬던, “사법부의 판결을 따져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으로는 부족하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되는 판결과 솜방망이 처벌로,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민원이 폭주하는 상황이다. MBC < 판결의 온도 >는 사법부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흐름에 부합하는 방송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기다려 본다. 비록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뒀지만 지금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다시 따져보고, 뒤집어야 한다. 처음 보여줬던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