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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Aug 20. 2017

1회 글쓰기 합평 모임 참여 리뷰(기록)

나는 책을 쓴 작가나 강사(샘)가 아니라, 일원으로 참여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역시 글로써 말해야 한다. 그래서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기록하고, 합평회 멤버들과 본 기록을 공유하는 차원에서(훗날 홍보효과는 덤).

글쓰기 합평회를 했다.

어제 <글쓰기 클래스> 고급반 1기 수강생이 제안하여 개최된 합평회에 참여했다. 성공적이었다고 평한다. 이 모임이 가능한 데는 어느 정도 정서적 교감이 확보된 구성원이 있어서였다. 거기에 더하여 개선점 1가지와 장점 3가지 발견, 노하우 공유를 하는 것으로 흘러갔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좀 더 피드백이 솔직해지고 디테일의 감성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글쓰기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합평을 하려면 일단 글을 써야 하고, 피드백을 하기 위해서도 받기 위해서도 '보다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합의적 미션이 주어진다.


내 주관 모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끼어들어 맺고 끊는 진행 욕심(?)을 내긴 했지만, 주최 주관하는 사람의 결단력은 가장 칭찬해 마땅하다. 무엇보다 모임이 재밌었다. 시간이 짧다는 것은 새로움, 흥미로움을 많이 느꼈다는 방증이 아닌가. 내게 누군가와 함께 글쓰기를 말함에 있어 2시간은 언제나 짧다.

(모임을 주최한 멤버가 사진으로 남기는 걸 선호하지 않아 단체사진은 없다. 전체 녹음도 현장 동의가 없어서 내 글과 내 피드백 부분만을 기록했다. 녹음기록이 주는 효용(책임감, 복기, 모임 발전기반 등)을 그동안의 모임 운영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바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크지만, 모임이 내 주최가 아니니 순순히 따랐다. 그게 건강한 모임 유지에 좋다.
하지만 모임 전까지 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에 글쓰기 클래스 기본반 1기 수강생들과 시도하려다가 끝내 결정을 보류했던 모임이기에 그랬다. 조심스러웠다. 이제 막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샘으로서의 우려가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만큼 나는 참여자로서 고민했다. 모임 유지 시스템을 아이디어로 고안해내려 노력했다. 책을 낸 작가라던가 글쓰기 클래스 샘이라고 해서 어떤 우쭐댐, 명예로움, 권위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모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합평회 멤버로서 내 역할에 대한 심오한 사유의 결과였다.)


우리가 흔히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엄밀히 말하면 글쓰기 클래스도, 합평회도 마찬가지로 누굴 '가르치겠다'는 의도는 없다. 그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전달 혹은 독자로서 생각과 느낌을 글쓴이에게 전달하는 것이다(나아가서는 글쓴이와 독자 간 진정한 소통이 된다). 그럼 무엇이 남을까? 글(작품)이 남고, 사람이 남고, 그로 인하여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피드백을 하는 것 자체가 글쓰기에 도움이 될뿐더러, 피드백을 받고 내 글쓰기를 고민하는 것 역시 매우 큰 역량 향상(발전)을 꾀한다.


첫 모임의 감동을 기반으로 하여 글쓰기 합평회가 인생에 남겨주는 장점을 요약해본다(비판의식은 이 글 전체에 전제로 담았으니 장점만 3가지를 언급하겠다). 이것은 다른 클래스 멤버와도 추가개설해 진행할 수 있는 기획의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글쓰기 클래스 멤버 합평회의 장점


1. 나와 너를 발견하는 힘

서두에 합평의 전제요건으로 장점 3가지와 개선점 1가지, 노하우 등을 나눈다고 했다. 첫날인 어제 의견을 냈고, 모두가 동의•제청해 결정됐다. 우리는 타인의 글을 읽고서 장점 3가지를 외쳐야 할 때,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를 찾기에 앞서 '무엇을 배울지'부터 사색하게 된다.

이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이른바 '발견하는 힘'을 기르는 트레이닝으로 작용한다. 거기엔 글쓴이(너)라는 외부세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나)인 내부 세계로 통하는 길을 터서 소통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내'가 '너'와 대화하기 전에, '나'와 먼저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이 대목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 거지?(내용)' '나는 왜 이 대목에서 의아하게 생각한 거지?(형식)' 내적 질문을 통한 외부세계의 발견은 희열감까지 안겨줄 것이다. 결코 서로의 글에서 '비난'할 거리를 찾아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행위가 합평의 정의는 아닌 거다. 그것이 위험한 이유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틀릴 수 있다'는데 있다. 그리하여 합평은 한 마디로 축약하면 이거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에 소리.



2. 읽고 이해하는 힘

어떤 글을 읽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읽고 말하려면 온전히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온전함'에 있다. '완전한 이해'는 지적 수준이나 취향, 독서 습관 등에 따라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필자처럼 책을 잘 못 읽는 사람에겐 고된 작업이 된다.

또한 누구도 어떤 글을 '완전하게'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방점은 '온전함'에 찍힌다. 이해하지 못하면 오독한 상태에서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 결국 서로에게 불필요한 상처만 안겨줄 뿐이다. 이 지점에서 볼 때, '읽어내야만' 한다는 비장한 의무감마저 들지 않나? 단순히 SNS에서 쓱 '보고' 엄지로 스크롤을 내리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깨닫는 순간, 내 글이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3. 글쓰기에 대한 겸손한 태도

강좌를 열기 전, 난 스스로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잘한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전보다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거나 콘텐츠 전달력을 멤버들로부터 그때그때 입증받아서 자신감이 붙었을 뿐이다. 요즘도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면 무대에 섰다는 긴장은 전혀 안 되는데, 스스로 유려한 스피치에 대한 갈급함을 느낀다. 내 강연에는 거의 대본이 없다. 사전 질문이 있는 경우에만 대본을 준비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준비한 대본을 봐야 할 땐 농담반 진담반으로 "제가 말을 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요.."라고 하기도 한다.

서두가 길었다. 강좌를 열기 불과 몇 달 전 스피치학원 기초반에 등록을 한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그때 스피치 담당 선생님은 내게 '고급반으로 가도 될 실력'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시긴 했다. 동시에 콘텐츠가 좋으니 우쭐할 수도 있는 자신을 내려놓고 기초반부터 시작해 피드백을 받으려는 자세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겸손이다.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내가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를, 내 글을 내려놓아야 한다. 단, 그렇다고 자존감이나 내 글에 대한 자부심, 글쓰기 자신감 따위까지 내려놓으라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비판적 피드백을 하고 있는지 나부터 '비판적 수용'을 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모든 걸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 거름망(필터)을 갖추는 것도 합평회에서 키울 수 있는 '눈'이자 '실력'이다. 비판적 수용이란 스스로 반문하여 정답을 내릴 줄 아는 기제이다. 누구든 합평을 하고자 한다면 합평 후 이 기제를 눈치 보지 말고, 주체적으로 자신에게 발휘해보길 바란다. 그것이 합평회의 묘미가 될 테니까.



고급반 1기 수강생 여러분, 이렇게 좋은 커뮤니티가 이어짐에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박남준(주최자), 오수정(울산에서 KTX 타고 오심), 곽병현(늘 함께 해주시는 원년멤버), 이지은(우아한 글쓰기의 표본으로 멤버들에게 자극이 됨)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
작성자(이동영) 코멘트: 한 달에 한 번 이 합평회가 기다려지는 이유로 글쓰기가, 또 일상이 즐거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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