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피하세요
어떤가요? 우리가 평소에 많이 듣던 말과 사뭇 다르죠? 흔히 물 들어올 때는 노를 저어라, 심지어는 평소 노를 부단히 젓고 있어야 물 들어올 때 맞춰서 잘 나아갈 수 있다는 어록까지 나왔죠. 아니 그런데 물 들어올 때 피하라니?
네, 맞아요. 정반대로 한 말이에요.
"그냥 하세요." "당장 시작하세요." "시도해야 실패라도 남습니다."와 같은 개인에게 필요한 조언들이 자기계발 강연과 책으로 무수히 나오지만, 이제는 식상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물론 중요하죠. 다 맞는 말이죠. 저도 그런 말 덕분에 꾸준함을 잃지 않고 자극을 받아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고요.
그런데요.
'저스트 두잇이야, 당장 시작해야 해, 실패를 하다 보면 성공에 이르게 되겠지.'하고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가까운 시일 내에 변화를 시도하겠지만, 와닿지 않는 사람이 큰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저라도 이렇게 충격요법을 쓰려는 겁니다.
"물 들어올 때
피하세요."
일러스트: 이동영 작가 X AI물 들어올 때 노를 젓든, 그전부터 꾸준히 저어온 것이 물때를 만나 전진하는 법에 금방 적응했든 핵심은 이겁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재능 or 노력)
저는 2024년 가을, KBS <아침마당 전북>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했냐고요? 제 블로그에 "아침마당 전북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저를 섭외해 주세요."라고 올렸거든요.
https://m.blog.naver.com/lhh2025/223376602892
그걸 보신 작가님과 PD님이 감사하게도 시청자 특집에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나 한 달에 200건 넘게도 강의하는 김창옥급 강사가 아닌 이상 저의 경우 KBS 간판 프로그램 출연의 명분이 딱히 없거든요. 최근 이슈가 된 인물도 아니고, 심지어 전북에 살고 있지도 않은데 섭외가 되었다는 건 저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고향이 전북 군산이고 초중고, 편입 전 대학을 전부 다 전북에서 나왔습니다.) 마치 시청자 특집이라는 것이 저를 섭외할 명분이 된 것만 같았죠.
실제 아침마당 출연 모습시청자로서 인터뷰만 한 게 아니라, 전북 출신의 '글쓰기 강사'로서 저를 제대로 소개하고 단독으로 특강 할 기회까지 주셨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기회였습니다. TV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한들, 아침마당은 여전히 고정 시청자가 있고, 방송 관계자들도 모니터링하는 전통 있는 프로그램이니까요.
저는 출연 당시 30대였음에도 강의를 10년 넘게 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1,000여 회가 넘은 강의 횟수를 자랑했죠. 여기까진 좋았는데, TV 출연은 처음이었다는 걸 제가 미처 간과했던 겁니다. 준비하지 못했어요. 일단 어마어마한 크기의 카메라 두 대가 저를 두 가지 각도로 쏘아보고 있고요.
카메라 사이 중앙에는 큰 모니터가 수강생 대신 썰렁하게 있고요. 강의하는 공간과는 다르게 앞쪽이 텅 빈 녹화장이란 환경적 요소를 미처 시뮬레이션하지 못했던 겁니다. 오히려 MC와 기 센 고정패널들, 한 번 이상 출연한 적이 있던 그날의 게스트들은 다 제 뒤쪽에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분들이 또 리액션을 잘해주는 데 반해 매끄럽지 못한 제 강의에 괜히 생전 하지도 않던 긴장이란 걸 해버린 거죠. 이 모든 것이 저에겐 너무나도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결국 베테랑 PD님이 매만져주신 편집본으로는 꽤 볼 만하게 방송이 나갔지만, 암만 생각해도 저렇게 못할 수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방송을 못했습니다. 못한 관점으로 다시 보면 못하는 것만 보입니다. (ㅎㅎ;)
특히 인터뷰 때 얼마나 길고 짧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나도 모르게 표출된 목소리 떨림과 빨라진 속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단독으로 앞에 나와 특강 하는 절호의 기회에 수도 없이 했을 강의 멘트가 꼬여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건 스스로 용서가 안 되는 지점이었죠. 그 영상이 방영된 후에 유튜브에도 올라왔는데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1,200회 이상은 돌려 본 것 같습니다. (현재 조회수가 1,400회)
아침마당에 출연한 장면을 AI로 그림
다음에 기회가 오면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문제는, 방송은 망치면 다음에 기회가 안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정도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때 물이 들어오면 피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흑역사만 남거든요. 실패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계기가 되는 게 아니라, 계속 리플레이되는 게 문제입니다. 더 방송이 늘 여지가 보이면 다행인데 섭외할 방송관계자들이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저를 데려다 쓸 이유가 없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 말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부딪히지 말라는 소리보다는 미리 각오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메시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완벽한 준비 후에 시작하라는 게 아니라, 저처럼 여유롭게 생각하면 기회가 왔을 때 될 것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완벽한 준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런데 재능이 월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치가 부족한데 마음이 여유로운 것도 문제라는 거예요.
기회가 주어진 후 시일 내에 좀 더 정교하게 준비하지 않았던 탓이니, 최선을 다해 '성심껏' 준비하면 되는 거고요. 내가 당연히 잘하겠지 하고 자만했었으니 경솔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겠죠. 작가님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PPT 같은 것도 띄울 필요 없다고 그랬거든요. 늘 하던 거고, 라디오 고정패널도 당시 2년째 하던 중이었고요. 진짜 TV 방송을 만만하게 본 제가 큰코다친 거였습니다. TV는 처음이었다는 걸 왜 저는 더 겸손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 <아침마당 전북>에 오랫동안 고정패널이었던 분이 코미디언 곽범 씨였고요.
서울에서 방영하는 <아침마당>에는 임영웅 씨가 정식 데뷔 전에 나오기도 했는데요.
이미 재능으로 점철된 그들의 방송출연분을 보면 노력형으로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습니다. 매끄럽고, 여유 있고, 실수나 어색한 지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거든요.
반면에 저는 뭔가 성급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채로 방송에 임했습니다. 너무나 준비 부족 그 자체의 낯선 느낌이었거든요. 그 이후로도 해왔던 강의는 계속 잘했지만, 아침마당에 출연한 걸 보고 저에게 연락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였습니다.
이경규 씨는 강호동 씨를 처음 방송에 데뷔시킬 때, 씨름선수 시절 라디오에 출연해 보인 입담을 보고 한눈에 '재목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하죠. 이건 알아본 이경규 씨의 재능이자, 타고난 강호동 씨가 때를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말하는 데 능력이 있으니 방송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착각한 저를 반성하게 한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재능이 아니라 순전히 후천적 노력으로 강사까지 하고 있는 거였으니까요.
물론 이렇게 한 번 경험을 했으니 TV 방송 출연을 한 번 더 하게 되면, 조금 더 힘을 빼고 평소 실력대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했던 경험이 저에겐 아주 컸으니까요. 일단 부딪혀 본 용기는 스스로 칭찬하고 싶습니다.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도, 평소 제 역량을 어디까지 끌어올려야 하는지도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으니까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 위해서는 평소 노에 대해서 알고, 노 젓는 원리에 대해서 알고, 균형 잡기에 대해서 알고, 체력 관리에 대해서, 바다의 환경에 대해서, 물 때에 대해서, 돌발상황 대비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봐야 한다는 결론을 말씀드리면서,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흑역사 영상 링크를 띄우며 글을 마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l9gtS2m04
방송 출연 섭외(TV·라디오·유튜브·팟캐스트)
모두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