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내가 가장 잘(자신있게)해내는 것
여태껏 나는 도전했던 공모전마다 '아이디어상'을 휩쓸었다. 특히 글쓰기 부문은 교내 백일장 장려상 급의 수상을 초중고 매해마다 빠짐없이, 심지어는 군대 훈련소에서까지 했었다.
글로 써서 받은 대상 수상은 딱 한 번 뿐이었다. 교장실에서 상장을 수여받고 전교생에게 방송이 되얶다. 중 3시절 교통안전 글짓기였다. 그 얘길 해보려 한다.
입시학원을 차려서 학생들을 다 채간 음악선생님이 본래 우리반 담임이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는지 학교에서 잘린 뒤 기술•산업 선생님이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고등학교 진학시험을 얼마 안 남겼지만 새로운 담임은 늘 자율학습 네 글자만 칠판에 써놓은 채 뒷 구석 자리에서 까만 기기로 주식투자에만 골몰해있었고, 학생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나처럼 나머지 공부반에서 일등먹던 학생들에게 인문계 갈 성적도 안 되면서 실업계 안 간다고 구박만 할 뿐이었다. 담임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멘트는 "네가(네 까짓 게) 뭘 하겠다고.."였다.
그러다 교통안전 글짓기라는 게 교육청으로부터 의무과정으로 하달되었는지 공지를 하는 담임이 글 써서 내 볼 사람 손들라고 하니 우리반 상위권 학생들과 함께 번쩍 손을 든 내게 한마디 하셨다. "네가 뭔 글짓기를 하겠냐, 쯧, 해봐라 마"라며 겨우 중3에게 그런 미친 소리를 하던 담임.
나는 공부를 하기 싫으니 인문계 갈 성적이 안 되는 건 맞지만 교통안전 글짓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 무슨 상관인가 생각하며 그냥 재미있게 써서 냈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수상자들을 살펴보니 시험 성적순으로 전교 1등과 2등이 각각 내 뒤를 따랐다. 정확하게는 특이하게도 상 이름이 '금상'이었는데, 전교 꼴찌가 금상을 받았고, 각각 전교 1,2등이 은상과 동상을 나눠 가진 것이다. 내가 볼 땐 그들이 결코 글을 잘 써서가 아님은 그 동안의 교내 백일장 운영 및 수상자 선정 행태를 보아 잘 알고는 있다. 어쨌든 내 이름 뒤에 대상을 공표받은 순간은 날 개무시한 담임 코를 납작하게 한 듯해 통쾌하고 짜릿했다. 다만 그 담임이 나의 수상사실을 반 아이들에게 공표하며 "우리반 이동영이 금상이네? 오호(잠시 침묵)거봐, 내가 너도 쓰면 될 거라고 했지?" 하는 것이다.
그땐 순진해서 그랬지, 지금 내 성질 같아선 "처음엔 선생님이 제가(저 주제에) 뭘 하겠냐면서요?"하고 반항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차별이 철저하게 성적순•촌지순이기 때문에 나는 어디에도 정치적 세력을 모으지 못했으므로 홀로 속으로 다시 꽁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날이었다.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서 나를 점심시간에 호출했다. 수상원고를 뒤척이면서 내게 해주신 진심어린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다.
"동영학생은 글을 정말 잘 써요. 지금은 중3이니까 입시준비 잘하고, 졸업하고 나면 책 많이 읽고 글을 계속 쓰세요. 동영이는 꼭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아 지금 이 글을 쓰는데 눈물이 다 난다ㅠㅠ 자존감이라는 말을 몰랐던 그 때에 나의 자존감은 순간 급상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을 워낙 안 읽어서 그때 학교 도서관을 처음 들어가본 터라, 사서 선생님도 처음 뵈어 얼굴이나 이름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그 한마디의 온기만은 내 얼음장같던 학교생활을 사르르 녹여주었다.
그 이후로도 담임은 어쩜 변함이 없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입시 원서를 내면 백퍼 떨어진다며 집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부모님 바꾸라는데, 안 계신다니까 "얌마 이동영, 넌 안 돼! 알어? 너 까짓게 분수를 알고 덤벼야지! 부모님 오시면 꼭 인문계 안 갈거라고 말해! 알았어? 이번에 학교 오실 것도 없다고. 임마, 이동영 너는 안 된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것은 기억의 왜곡이 아니라, 실화이다. 저 사건에 대한 글을 그 날 바로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곱씹은 것이다. 상처가 아니라, 어이없음과 황당함의 감정이 그 당시엔 훨씬 컸다.
아마 담임이 그 당일날 주식이 잘 안 풀렸나보지. 다음날 부모님은 우리 아들은 인문계에 지원을 해야만 하겠다며 학교를 왈칵 엎고 오셨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지금은 그로부터 15년도 훌쩍 지났다. 아, 이걸 말 안하고 넘어가려니까 강좌를 연 강사로서의 공신력이 떨어질 것 같아 덧붙여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수장학생으로 편입전•후 모두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사공부는 잘했다. 다만 전공을 살리진 않았다. 참고로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는 아니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내 생각을 내 느낌을 내 감정을 표현해내고 있다. 더불어 글쓰기 강좌도 열어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쓰기는 역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니까. 그때 그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인정을 잊을 수 없으니까. 새 담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계속 인정받아 왔던 것은 내게 글쓰기 하나였으니까.
당장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여한이 없을 만큼,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니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책을 쓰며 충분한 돈만 벌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