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쿵쾅 Mar 10. 2021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입니다 2

안녕하세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입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건을 폭로한 후 응원과 연대의 뜻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끝없는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저는 일이 있기 전과 아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푹 자고 일어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러닝을 뛴 후, 사원증을 목에 걸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출근을 합니다. 업무를 보고, 점심에는 동료들과 근처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먹습니다. 남은 시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퇴근 후에는 취미 생활을 즐깁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늘은 핑계를 대고, 점심을 스킵하고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정도랄까요. 이렇듯, 이 일로 인해 저의 일상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회적 이슈인 군 가산점과 관련된 사내 인사 제도에 대한 논리적인 의견을 펼 수 있는지를 보려고 했다'는 해명이 틀린 이유  가지

2. 동아제약에서 배포한 작년 여성 채용 비율 자료가 무의미한 이유

3. 언론에 공개한 사내 메일의 오류 세 가지

4. 최호진 사장님께 드리는 말씀

5. 마지막 말



1. '사회적 이슈인 군 가산점과 관련된 사내 인사 제도에 대한 논리적인 의견을 펼 수 있는지를 보려고 했다'는 해명이 틀린 이유 가지

동아제약이 위와 같이 낸 저 해명이 틀린 이유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JTBC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해당 질문은 공통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제약이 주장하듯이 정말로 사회 이슈에 대한 지원자의 논리성을 보고 싶었다면, 여성 중에서도 군 가산점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남성 중에서도 군 가산점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해당 질문은 공통 질문이었어야 상식적입니다. 저것이 틀린 주장인 또 다른 이유는,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 이슈에 대해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지, 논리 역량을 묻는 질문은 이미 면접 초반에 '한강 섬에 아파트를 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공통 질문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백 번 양보해 동아제약이 정말 순수하게 면접자의 논리 역량이 보고 싶은 것이었다 할지라도, 직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회 이슈에 대한 지식과 논리를 왜 저에게만 요구하였는지 의문입니다.


째, 동아제약은 당시의 상황맥락을 고의적으로 지우고 있습니다. 같이 면접에 참석한 남자 두 분께 군 생활과 관련된 세 개의 질문을 공통적으로 한 후, 제게 '여자라서 군대에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습니다. 심지어, 제게는 몸을 뒤로 젖히고 팔짱을 끼고서 거만한 태도로 물은 반면, 남자 면접자들에게 군 생활 질문을 할 때는 몸을 면접자 가까이로 기울이는 등, 답변을 상당히 주의 깊게 듣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군 가산점 질문 후에 애초에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제게 '군대에 갈 생각이 있냐'라는 질문을 하였고, 제가 답변을 끝내자 인사 팀장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이는 결국,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임금의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군 가산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 답변이 언짢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질문들은 미시적으로 질문 자체만 보아도 성차별에 해당하지만, 거시적으로 전체 상황을 놓고 보아도 성차별에 해당합니다.



2. 동아제약에서 배포한 작년 여성 채용 비율과 해당 직무 합격자 수 자료가 무의미한 이유

언론에 전년도 동아제약 여성 채용 비율 자료를 배포하셨더군요. 이 자료를 보고 동아제약의 위기관리능력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녕 몇 백 명이 근무하는, 90년 가까이 된 중견기업에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입니까. 저 숫자를 통해 '우리는 채용 시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으셨겠지만, 실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시간, 그 장소'에서의 성차별을 지적했지, '작년 여성 채용 현황'이'해당 직무 합격자 성비'를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몇 명의 여성을 채용하였든, 해당 직무의 최종 합격자의 성비가 어떻게 되든, 언론에 배포하신 위 자료들은 제가 지적한 해당 면접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숫자가 그렇다고 하여 제가 당시 당한 성차별이 결코 없던 일이 되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저와 같이 면접에 들어갔다고 글 쓰신 남자분,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제가 기억나는 대로 적겠다'라고 하셨지요. 본인이 인정하듯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기업이 병역 이행을 기준으로 여성과 남성에 임금의 차이를 두는 것이 사실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면 군대에 가겠는가'는 '정확한 워딩'이 아닙니다. 백 번 양보하여 저것이 정확하다 하여도, 이는 두 가지 오류를 가집니다. 첫째, 제가 '사회적 이슈인 군 가산점과 관련된 사내 인사 제도에 대한 논리적인 의견을 펼 수 있는지를 보려고 했다'는 해명이 틀린 이유 두 가지에 적은 이유를 반박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말씀하신 저 문장들의 핵심은 결국 '군 가산점에 대한 찬반 여부'와 '병역의 의무 이행 의지 여부'입니다. 때문에, 말씀하신 저 워딩은 스스로도 인정하시듯 정확하지도 않지만, 설령 정확하다 하여도 제가 주장하는 인사팀장이 던진 문제의 질문과 핵심 메시지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저의 주장에 힘만 실어주신 꼴이 됩니다. 저분의 말씀을 인용한 김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10일 오전 12시쯤 '상반된 주장'이 나왔다며 저 남자분의 말을 인용해 무엇이 진실인지를 묻는 기사 쓰신 제민일보, 전기신문 기자 두 분, 두 분이 보시기에는 이 둘이 '상반된' 주장 같습니까. 혹시 '상반되다'라는 말의 정의를 잘 모르신다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 한번 말하지만, 동아제약이 작년에 여성을 몇 명을 채용하였든, 해당 직무의 최종 합격자 성비가 어떻게 되든, 제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성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것이 동아제약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가 무의미한 이유입니다.



3. 언론에 공개한 사내 메일의 오류 세 가지

최호진 사장님께서 사건과 관련하여 임직원 전체에게 메일을 보내셨다지요. 이 메일에는 크게 세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저에 대한 사과를 왜 사내 메일로 하십니까. 언론에 공개하신 해당 메일에는 "다시 한번 관련 해당 지원자 및 고객 여러분, 그리고 우리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회사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최호진 사장님, '관련 해당 지원자'는 사내에 없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적절한 대처이며, '사과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의 연장선에서,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들으니, 기자분들께 '피해자에게 문자로 사과드렸고, 괜찮으시면 찾아겠다고 했는데 피해자가 거절하셨다'라고 하셨다지요. '우리는 정말로 사과하고 싶은데 저 사람이 우리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뿐'이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으셨습니까. 또, 저에게 처음 문자 주셨을 때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는지, 문자 기록 지우셨습니까. 동아제약 측에서는 제게 사과문 쓰고 계시고, 곧 공지 예정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아제약 측에서 분명 사과문에 저따위 말을 지껄일 것이 뻔해 문자로 아래와 똑같이 말씀드렸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사과문 작성하시면서 '피해자분께 직접 연락드려 사과드렸다'면서 마치 제가 사과를 받아준 것처럼 쓰지 마세요. 저는 동아제약 사과받아준 적 없습니다. 직접 만나서 사과를 받을지 여부는 사과문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라고요.


이토록 제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시는 모습에 이제는 연민의 감정마저 듭니다. 문자로 '사과받아준 적 없으니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사과드렸다는 말 쓰지 말라'라고 말씀 안 드렸으면 공식 사과문에도 마치 제가 사과를 받아준 양 쓰셨겠지요. 이전 글에서도, 그리고 위에 언급하였듯이 동아제약 측에 문자로도 말씀드렸지만, 사과는 받는 사람 기준이며, 저는 동아제약의 사과를 받아준 적이 없습니다. 여, 저는 이 시간부로 필요한만큼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겠습니다.


둘째, 사내 메일에서 "네고왕 댓글창을 보면서 배려라는 단어를 연결시켜 본다"며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배려라는 단어를 중심에 두면 각자의 의견도 존중하고 권리도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지요. 차별 금지는 당위성의 문제이지 배려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도 이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시겠습니까. 저는, 그리고 저와 연대하는 무수한 여성들은 '배려'가 아닌 '차별 금지'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을 사건이 터진 지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도 모르시는 겁니까.


셋째, 전송하신 해당 사내 메일에서 '성차별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언급하셨지요. 아직까지도 문제의 질문이 '성차별'이 아닌 성차별적 '오해'를 야기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댓글 사과문에서는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불쾌한 경험' 정도로 갈음하시더니 이제는 성차별적 '오해'를 야기하는 질문이라고 피해 사실을 축소하시는 모습을 보며, 90년 가까이 된 중견기업에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됩니다.



4. 최호진 사장님께 드리는 말씀

최호진 사장님,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며 '리더, 그리고 리더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신은 리더이십니까, 보스이십니까. 위에도 언급하였듯, 저는 몇 백 명이 모인, 90년 가까이 된 중견기업에 이번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분명 위기관리 담당 실무진을 비롯한 임원들과 머리를 맞대셨겠지요. 혹시 실무진과 임원 중에 제가 이전 글에서 요구한 사과문의 요건을 갖춘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자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까. 아니면 그러한 의견을 사장님께서 묵과하셨습니까. 전자라면 그러한 실무진과 임원을 두신 사장님의 경영자로서의 안목을 의심하게 되고, 후자라면 경영자로서의 의사소통 능력을 의심하게 됩니다.


혹시 <유럽 도시기행>이라는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제목 그대로 작가가 유럽을 여행하며 쓴 여행 산문입니다. 저는 저 책에서 하나의 도시를 한 명의 사람으로 치환해 설명한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과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으나 10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소멸한 아테네를 보고 '곱게 늙지 못한 미소년' 같다고 묘사합니다. 아주 잘 생기고 덕도 잘 쌓아 명망 있고 존경받던 판사가 나락으로 떨어져 아주 초라하게 늙어가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또, 예술과 문화를 꽃피우고 수많은 전쟁을 치러내 부와 권력과 존경을 동시에 손에 넣고 현재도 한 나라의 수도로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 로마를 보고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요. 그리고는 “대단히 현명하거나 학식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수완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고, 나름 인생의 맛과 멋도 알았던 그는 빛바랜 명품 정장을 입고 다닌다. 누구 앞에서든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돈지갑이 얄팍해도 기죽지 않는다. 인생은 덧없이 짧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때 거두었던 세속적 성공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로마를 묘사합니다. 


하나의 도시를 한 명의 사람으로 치환해 그 도시의 탄생과 소멸까지의 과정, 그리고 사람들이 그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책을 통해 관찰해보니, 저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호진 사장님, 당신은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으시며, 또 동아제약이 어떤 기업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자식과도 같은 회사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른 개선 방안을 제시하여 임직원들이 존경하고 믿고 따를 수 있는 탁월한 리더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변명만 늘어놓다 개인이 쓴 글 한 편에 회사를 휘청이게 만든 무능한 리더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또, 동아제약이 아테네와 로마 중, 어느 쪽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저는 동아제약에서 제게 면접 날짜 안내 메일을 보냈을 때, 그곳에 적힌 문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번 면접이 동아제약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기회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쓰여있었지요.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일을 슬기롭게 극복해서 동아제약을 임직원, 그리고 미래의 지원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5. 마지막 말

글의 초입에도 말씀드렸지만, 함께 울어주시고 연대해주시는 분들 덕에 저는 일이 있기 전과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또, 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 부담이 되지 않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일에서 정말로 두려움과 부담을 느껴야 하는 쪽은 제가 아닌 동아제약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담담히, 그리고 끝까지 맞설 것입니다.


그리고 동아제약은 아셔야 합니다. 변명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여, 저는 동아제약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은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문'을 '동아제약 채용 홈페이지 메인보름 이상 게재'할 것을 요구합니다. 1) 해당 질문이 성차별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 '성차별 질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2) 저것이 왜 잘못된 질문인지 설명하고, 3) 댓글로 사과문을 작성한 것이 잘못된 대처였음을 인정하고, 4) 앞서 사과문에서 성차별을 '불쾌한 경험' 정도로 치부한 것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 설명하고, 5) 조직 차원의 범죄임에도 개인의 일탈로 갈음하여 마무리하려 했던 점을 인정하고, 6) 사내 인사 제도 개편 방안을 담은,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문'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동아제약 최호진 사장님께 다시 한번 묻습니다. 당신은 리더이십니까, 보스이십니까.








작가의 이전글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입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