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형동검, 망각에 대한 두려움

일본의 태도를 생각하며

by 동두

우리나라 어느 역사 관련 박물관에 가도 꼭 있는 유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형동검입니다.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되어 한국식 동검이라고 불리는 이 동검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어떤 사회였는지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유물이기도 하죠. 이러한 세형동검을 보는 관람객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역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교과서에서 배운 청동기 시대 내용을 확인할 것이고 예술적 감각이 있는 사람은 청동 특유의 푸른빛이나 세형동검의 모양에 매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인과 같이 온 사람은 세형동검이 있든 없든지 간에 가슴이 띌 것입니다. 학교나 부모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학생은 건성으로 지나칠 것이고 학생들을 인솔해온 교사나 부모는 여러 가지 해설을 하려고 시도할 것 입니다. 또 박물관을 여러 번 돌아본 사람들은 세형동검은 여기도 있다고 하며 지겨워하겠죠.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 하면 세형동검의 용도에 비추어 볼 때 관람객들의 반응은 너무나 의외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세형동검은 잘 아시다시피 청동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구리보다 단단하며 녹이 잘 쓸면서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청동을 희귀하게 여기며 종교적 의기로 많이 만들어 쓰이게 되죠. 그런데 이 청동은 종교적 의기 외에 또 다른 용도가 있습니다. 바로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죠. 청동은 잘 깨지는 성질이 있어 농기구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동은 금속이기 때문에 잘만 가공하면 사람의 살은 잘 꿰뚫을 수 있습니다.



때마침 농업생산력 증가로 불평등이 발생하고 높은 신분의 지도자들에 의해 전쟁이 빗발치게 됩니다. 그래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청동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사람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살상할 수 있을지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동검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에 이용해보니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죠. 예를 들어 사람은 어떤 물체에 찔리면 근육이 순간 경직되어 근육이 인체에 들어온 물체를 꽉 잡아버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체의 자율방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덕분에 외부로의 출혈이 멈추게 되는 것이죠. 실제 칼이나 작살 같은 것에 찔렸을 때 뽑으면 안 되고 꼽힌 상태로 병원에 가야 산다는 것도 출혈을 막아 사망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이유입니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동검으로 사람을 찔렸을 때 상대방의 근육이 경직되어 칼이 뽑히지 않는 현상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번 찌르고 동검이 빠지지 않으면 그 순간에 적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혈구, 즉 피 홈이라 하여 검신에 홈을 파서 그 사이로 피가 나오게 하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칼에 찔린 사람의 피는 빠지고 근육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 칼을 쉽게 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칼을 또 한 번 찔러 확실하게 목숨을 끊게 하거나 다른 상대를 노릴 수 있게 되겠죠.




<세형동검. 칼자루가 분리되어 만들어지는 데 이는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동검의 특징이다.>




그런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효율적인 무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장하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 끔찍한 세형동검을 대량생산하게 됩니다. 거푸집을 만들어 거기다 미리 녹인 청동을 부으면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형동검 특성상 찌르는 데 특화되어 있는데 베기에 특화될 수 있게 동거의 무게중심을 칼자루에서 검신 쪽으로 가도록 개량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무기 발달사 측면에서 볼 때 찌르는 용도의 검에서 베는 용도의 도로 옮겨가고 있었다는 것을 볼 때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사람들도 효율적 살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형동검의 살상능력에 외경심을 가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세형동검을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으로 쓰기 시작했고 족장이나 유력한 사람이 죽었을 때 같이 묻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세형동검은 당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상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최첨단의 무기입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금지하려고 노력하는 ABC무기로 까지 비견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 앞에 핵무기나 생화학무기가 있으면 무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거나 연인과 팔짱끼고 무심코 지나가는 일이 가능하진 않겠죠. 그런데 박물관에서 세형동검을 보는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덤덤하기만 합니다. 왜 우리는 덤덤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시간이 오래되어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동기 시대 때 어떤 전투가 몇 번 일어났는지, 전투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발생했는지, 가해자들은 어떤 흉악한 의도를 가졌으며 반성을 했는지 안했는지, 피해자들은 얼마나 죽고 다치며 인권을 유린당했는지, 피해자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슬퍼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기에 세형동검이 전투에 사용되었다는 사실 외엔 다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몽골의 고려 침략으로 고려인들은 몽골인들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것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전쟁과 달리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고려시대 각종 문집 등에서 기록되어 있어 고려인들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인들은 몽골의 고려 침략을 이유로 몽골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근감 있게 느낍니다. 침략의 원흉인 칭기즈칸의 인생역정을 보며 그의 영웅적인 삶에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민족적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몽골제국의 팽창과정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거나 몽골의 침략이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탐구하고 지적으로 희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칭기즈칸의 영광을 잃어버린 몽골에 동정심을 갖는 모습도 보이죠. 역시 시간이 오래된 탓입니다. 청동기 시대와는 달리 몽골에게 고려가 침략당하가고 고통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하지만 고통스러웠고 끔찍했던 감정 자체는 잊혀 졌기 때문입니다.




문득 일본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조선에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질렀죠. 조선을 강제 병합하고 식민지 조선인들을 2등 시민으로 취급했을 뿐 아니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운영 등 온갖 나쁜 짓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기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국제법과 같은 법리적 해석과 인권문제 등 도덕적 문제를 거론하며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지요. 청동기 시대에 세형동검을 갖고 일어난 전투와 몽골의 고려 침략과 다른 것은 일본 침략의 후유증은 현재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나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이 엄연히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국제적 범죄를 저질렀을 때 입을 싹 닫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권이 발전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귀낀 놈이 성낸다고 한국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해 민족적 파시즘으로 몰아붙이면서 가해자 한국, 피해자 일본이라는 구도 마저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일본이 일본제국의 만행에 의해 나타난 한국인 피해자 분들께서 다 돌아가실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박물관의 세형동검과 같이 시간 속에 묻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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