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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플레이크 Jun 18. 2021

베를리너들이 사랑한 공원 ① 티어가르텐, 쾨너파크

베를린 다이어리

코로나가 지배한 지난 1년 반, 베를린에서는 갈 수 있는 곳이 공원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공원이라서 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베를리너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공원에서 모두가 각자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사실 베를린 사람들은 공원뿐 아니라 강, 호수, 숲 등 자연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혹은 비가 올 때도!) 사람들은 갈 데라곤 공원 밖에 없는 것처럼 항상 나와 앉아있다. 맥주 한 병을 들고 혹은 와인을 나눠 마시며 기나긴 오후를 베를리너답게 보낸다. 여행자였을 때부터 좋아했던 베를린의 공원을 모아봤다. 그중엔 살면서 더 사랑하게 된 공원들도 있다.

 

여행자도, 현지인도 모두 품어 안는 티어가르텐

베를린에는 총 2500개의 크고 작은 공원이 있다. 베를린을 처음 오는 여행자라면 도시 중심부에 있는 티어가르텐을 가장 먼저 들르게 될 것이다.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듯이 베를린에는 티어가르텐 공원이 있다.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됐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공원 크기만 63만여 평에 달한다.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전승기념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거대한 브로콜리처럼 뻗어있는 티어가르텐의 방대한 숲을 볼 수 있다. 도시는 그 평평한 숲 너머에서 경계를 이룬다. 이 전승기념탑을 중심으로 동쪽 끝으로 가면 브란덴부르크 문이, 서쪽 끝으로 가면 샤를로텐부르크 궁이 나온다. 북쪽에는 대통령 관저인 벨뷔 궁전이 있고, 남쪽으로 가면 동물원과 현대 건축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는 포츠다머 플라츠로 갈라진다. 베를린의 중요한 랜드마크가 모두 티어가르텐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 티어가르텐 공원을 걸었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2시간은 거뜬히 걸리는 규모다. 한 번에 다 돌아보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안 하는 것이 좋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다른 모습이 가득하다. 많은 조각상과 작은 연못들, 잘 정돈된 잔디가 펼쳐지는가 하면, 거대한 나무 기둥이 도열한 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공원 안에서 유난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도 있다. 배를 탈 수 있는 호수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비어가든, ‘카페 노이암제’이다. 여름이면 이 비어가든에는 거의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다. 관광객도 많지만 현지인들에게도 변함없이 사랑받는다. 호수에서는 배도 빌려 탈 수 있다. 베를린에 사는 한 친구는 한국에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무조건 이곳으로 데려와 노를 젓게 한다. 베를린 초보 여행자들은 처음엔 어디로 배를 몰아야 할지 갈팡질팡 하지만 양팔 뻐근하게 노를 젓다 보면 티어가르텐 호수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베를린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 물으면 의외로 친구들은 이 호수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노 젓던 시간을 고백한다. 바쁜 일상을 잊고 초록에 둘러싸여 있던, 그 평화로운 시간에 모두가 위로를 받고 갔다.   


사진출처: @다스 스투에 호텔(Das Stue Hotel)

몇 해 전 취재차 베를린에 왔을 땐 운 좋게 티어가르텐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최고급 빈티지 가구와 디자인으로 꾸며진 ‘다스 스투에(Das Stue)’ 호텔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부티크 호텔로 꼽히는 그곳에서 제일 인기 있는 방은 동물원이 보이는 방이다. 내 방에선 기린이 보였다. 사람들은 동물이 보이는 전망을 갖기 위해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한다. 하지만 깨닫는다. 발코니에 앉으면 동물원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시골 냄새 때문에 10분도 앉아있기 힘들다는 걸. 하지만 피곤한 불평 대신 모두가 웃어넘길 수 있다. 호텔에서 기린이 내다보이던 럭셔리 룸도, 단품으로 정성스럽게 내주던 에그 베네딕트 아침식사도 모두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일어나자마자 티어가르텐 공원으로 들어가 걸었던 이른 아침이다. 이런 아침을 베를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고요하고 신비로운 아침 햇살 속에서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티어가르텐에 산다는 야생 여우를 만날 것 같은, 그런 아침이었다.

사실 베를린의 숲과 공원에는 여우와 멧돼지, 라쿤, 토끼 등 꽤 많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새벽에 클럽을 나온 젊은이들이 크로이츠베르크 거리에서 마주친 건 여우들이었고, 록다운 기간 동안에는 여우가 시내 중심지인 알렉산더 플라츠에까지 나타났다고 했다. 크로이츠베르크에 사는 한 남자는 원래 동네 이웃처럼 종종 마주치는 여우가 있었는데, 전에는 멀리 피해서 돌아가던 그 여우가 록다운 후부터는 그냥 자기 앞을 가로질러 간다는 인터뷰를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록다운이 되고 아무도 나다닐 수 없었을 때, 인간이 사라진 텅 빈 도시를 활보한 건 야생동물들이었다.


작년 4월의 뉴스가 어느새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언제 끝나나 싶게 길게만 느껴졌던 록다운 기간도 끝나고 사람들은 이제 일상을 되찾고 있다. 독일은 백신 접종의 효과로 확진자가 크게 줄었다. 한여름 같은 날씨 덕분인지 더더욱 활기차다. 모든 사람들이 레스토랑 야외 자리에 앉아 밤 10시까지 환하고 긴 하루를 즐긴다. 어제는 독일과 프랑스의 유로 2020 경기가 있었다. 야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코로나가 정말 끝나가는 걸까. 매년 백신을 맞더라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맞을 것이다.  



노이쾰른에 숨어 있는 귀족 정원, 쾨너파크

베를린의 홍대 같은 동네인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노이쾰른(Neukölln)이 나온다.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집값 싼 동네를 찾아 처음 미테에서 크로이츠베르크로,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더 밀려난 곳이 노이쾰른이다. 베를린의 중심지보다 치안이 안 좋다고는 해도, 노이쾰른만큼 요즘 베를린을 잘 보여주는 핫한 동네도 없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체 못 하는 끼를 발산하며 돌아다니고, 숨은 클럽과 바가 모여 있으며, 온갖 그라피티와 자유로움이 넘쳐난다. 이런 거침없는 동네 분위기 속에 시간을 초월한 궁전 공원이 숨어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공원이라 불리는, 쾨너파크(Körnerpark)다. 노이쾰른에 살지 않는 이상, 현지인도 잘 모르는 이 공원은 노이쾰른의 땅 7m 아래에 숨어 있다. 공원에는 프랑스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아름다운 조각상과 분수대, 잘 가꾼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잔디를 걷지 말라는 표지판이 버젓이 세워져 있지만 햇살 좋은 날, 사람들은 당당하게 잔디밭 한가운데로 들어가 앉는다.

공원이 되기 오래전  지하는 커다란 자갈 구덩이 밭이었다. 당시 땅의 주인이었던 프란츠 쾨너 씨가 자신의 이름을 후대 공원 이름에 넣는 것을 조건으로 시에 넘겨주었고, 당대의 유명 건축가가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이곳을 완성했다. 공원으로 내려가면 삼면이 거대한 옹벽으로 되어 있고 담쟁이덩굴로 가득  있다. 은밀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베르사유 궁의 미니 정원을 거니는 듯한 우아함이 느껴지는 .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은 샤를로텐부르크  앞의 공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노이쾰른의  느닷없는 지하 정원에서 훨씬  신화적이고 우아한 시간을 만나게 된다. 쾨너파크는 내가 베를린에 살면서 발견하고 사랑하게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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