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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an 25. 2021

경상도 남자들.

정리하기가 어렵다.

"살아지대요..."라고 말하는 배정남의 말에 아내는 눈물을 훔쳤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잘생긴 배정남은 그렇게 자신의 외롭고 힘든 유년시절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는 배정남을 볼 때마다 '어찌 저렇게 잘생겼나, 남자답게 멋있게 생겼나.' 하며 감탄을 하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쉽사리 배정남의 외모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배정남 같은 외모는 필시 여성보다는 같은 남성에게 어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솔직히 난 아내의 선호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안심한다. '그 덕에 나는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군'


연예인이라면 성별을 불문하고 별 관심 없는 내가 배정남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는 아마도 그가 일본 배우 '다케노우치 유타카'와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 일본어를 공부하던 시절 즐겨보았던 일본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던 그는, 과거에 국내에서도 나름의 흥행에 성공한 영화(소설 원작) '냉정과 열정사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작 지금에 와서 '냉정과 열정사이'라고 하면 그 내용을 잊은 사람이 대다수이겠지만, 그 시절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들어가면 꼭 한 두 명의 홈페이지에서는 이 영화의 ost였던 'the whole nine yards'나 'history'등이 재생되어 나왔다.


솔직히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근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가 지금 한국의 톱배우들 마냥 작품 하나를 하고서는 종종 CF에나 등장하며 몇 년간 자취를 감추고 있는지, 아니면 이제 흘러가버린 옛 기억이 되어버렸지는 '한국의 연예인도 잘 모르는' 내가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내 일본인 친구 '마유코'가 작년에 교제하던 남자가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사촌 동생이라는 것은 좀 흥미로웠다. 특히나 놀랐던 것은 마유코가 내게, 그 남자의 특이한 신체 비밀을 말해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남자의.... 아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큰일 날 뻔했군.


어쩔 수 없는 것은 돌아가신 어르신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다행(?) 히도 나는 배정남과 같은 외롭고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물론, 그 나름의 어려움이야 나를 비롯한 모든 이가 없었을 리 만무하지만, 나의 경우에 그 어려움이라는 것들은 기껏해야 사고 싶은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사달라 졸라대는 수준이거나 엉망인 성적표 걱정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고백해보자면 '나는 꽤 유복했다' 말하고 싶다. 부유함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집안의 주머니 사정 따위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부모님으로부터 G.I 유격대나 패미콤 같은 장난감을 선물 받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그 외의 요청에 대해서 아버지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적은 없었다. 지구본도, 소설집도, 손목시계도 고민하다 어렵게 말씀을 드리면, 아버지는 무심하게 듣지도 않은 채 하시다가 며칠 후면 나의 선호도 고려하지 않고 요청한 물건들을 책상 위에 놓아두시고는 했다. 이집트 여행 중 누군가 내게 '시계 바꿀래?'라고 하기 전까지는 나의 그 손목시계가 '태그호이어'인 것도 몰랐던 나는, 지금 글을 써봐도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고이 접어 서랍 속에 정리하기가 어렵다. 계속 어딘가에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2020년 10월 20일에 작성한.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배정남'이 모티브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간의 흐름이 지금과 맞지 않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최근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라는 유튜브 콘텐츠로 다시금 '배정남'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만, 아내의 반응을 보자면 그녀의 생각 역시 많이 바뀐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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