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굿플레이스' 다시보기

다시보기 #1 : 선과 악,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하여

by 지원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쁜 사람입니까?

누군가 내게 이렇게 질문한다면, 선뜻 한쪽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이라 하기에는 양심이 찔리고, 나쁜 사람이라 하기에는 괜히 억울하다. 그래도 특별히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당당하지는 않더라도 나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당신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가? 여기서 천국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당신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천국은 생전에 착하게 살아온 '좋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것이다. 어떠한가?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굿플레이스>의 주인공 엘리너 셸스트롭(크리스틴 벨 역)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그녀는 죽었고, '굿플레이스'에서 눈을 뜬다. 그곳의 설계자 마이클(테드 댄슨 역)과 함께 둘러본 굿플레이스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고, 자신을 그녀의 소울메이트라고 소개한 치디 아나곤예(윌리엄 잭슨 하퍼 역)도 만났다. 이름을 부르면 언제든 바로 나타나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주는 재닛(다르시 카든 역)도 있다. 하지만 엘리너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마이클은 그녀가 생전에 우크라이나 난민 캠프에서 봉사를 하고,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온 인권변호사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가짜 약을 팔던 영업사원으로,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혼란에 빠지다가도 자신이 원래 가야 하는 '배드플레이스'가 '나쁜 사람'들을 영원히 고문하며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실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여기까지가 <굿플레이스>의 초반 줄거리이다. 아이유가 직접 넷플릭스 최애 드라마라고 밝히기도 한 이 작품은 시즌 4까지 있지만 각 회차의 시간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판타지 시트콤이자 윤리극이다. 사후세계를 소재로 하면 스토리가 뻔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금세 드라마 속에 빠져들었고 첫 화가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독특한 스토리 전개와 아주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 덕분에, 주인공 엘리너를 비롯해 치디, 타하니(자밀라 자밀 역), 제이슨(매니 자신토 역), 재닛, 그리고 마이클에게 공감하게 되고 어느 순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전개가 조금 느린 부분이 있긴 하지만 끝까지 다 보는 데에 무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마지막 엔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끝나고 나서도 마지막 여운이 꽤 길게 남았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드라마를 아직 보지 못한 분은 보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가 악인가?

시즌 1에서는 누군가의 실수로 굿플레이스에 잘못 오게 된 엘리너가 굿플레이스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지만 자꾸 의도치 않은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결국 마이클은 엘리너가 잘못 오게 된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배드플레이스로 보내려고 하지만, 치디의 설득으로 그녀가 굿플레이스에 남도록 돕기로 결심한다. 배드플레이스에 가지 않으려면 그녀의 점수를 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애써도 그녀의 점수는 요지부동. 그 이유는 그녀가 행한 모든 일은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의 동기가 선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 그렇다면 이 작품은 선과 악은 행위의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주인공 4인방의 캐릭터만 봐도 드러난다. 누구보다 선을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쳤던 치디와, 주변의 어려운 사람에게 누구보다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그 동기는 결국 자신을 위했던 타하니는, 배드플레이스에서 만남으로써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과 벤담의 결과론적 윤리설을 모두 부정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엘리너와, 정말 순수한 의도였음에도 좋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자꾸만 나쁜 일에 휘말리는 제이슨은, 역시 배드플레이스에서 만남으로써 환경을 탓하거나 누군가의 핑계를 댄다고 해서 행위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가 악일까?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 있는가? (물론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기준이 보다 명확해지지만 여기서는 그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자 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우리를 따라다닌다. 주인공 4인방 중 윤리의식이 가장 투철했던 치디 또한 마찬가지다. 친구가 기분이 나쁠까 봐 이상한 부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치디는 "칸트는 거짓말은 언제나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했어. 어떠한 예외 없이." 라고 말하며 엄청난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친구에게 사실대로 털어놨지만 친구의 표정은 굳는다. 과연 선의의 거짓말은 정말 선한 것인가.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나는 <굿플레이스>를 보면서 그렇게 행위의 선악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악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시즌 3에서 마이클과 재닛은 인간을 평가하는 사후세계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후세계의 회계사들은 분명하게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데, 마이클은 사람이 가장 최근에 굿플레이스에 들어간 게 521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회계팀장에게 는다. 마이클과 재닛, 그리고 인간 4인방은 그들을 배드플레이스로 보내려고 하는 판사(마야 루돌프 역)에게 사후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 점수 집계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설득한다. "요즘의 삶은 너무 복잡해져서 굿플레이스에 갈 만큼 착하게 산다는 건 불가능해졌어요." "그게 첫 번째 문제예요. 삶은 혼란스럽고 엉망이면서 예측 불가능하죠. 두 번째 문제는 어쩌다 좋은 결정을 내릴지라도 점수를 잃는다는 거예요. 의도치 않은 결과 때문에요." 드라마 속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굿플레이스와 배드플레이스를 비교하며 선과 악을 구분 지으려고 애쓰던 그들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선악을 구분하기란 매우 복잡한 일이며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면 뭐가 중요하다는 걸까?

우리 몇 달을 논쟁해왔잖아. 인간이 착한가, 나쁜가.

근데 그렇게 셋이 모여 다시 일어서고 털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어.

정말 중요한 건 인간이 '착하고 나쁜지'가 아니야.

인간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고 하는가'지.

내 희망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물었지?
그게 내 대답이야

- <굿플레이스 시즌4> 6화 '칩 드라이버 미스터리' 中 -


시즌 4에서 참 꾸준하게도 마음에 안 드는 짓만 골라서 하던 브랜트(벤 콜다이크 역)와 한바탕 싸운 엘리너와 친구들은, 절망적이고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시 힘을 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마이클은 드디어 '선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깨닫게 된다. 심지어 나중에는 '나쁜 재닛'마저도 인간의 성장을 위한 노력에 감명받고는 위기의 순간 그들에게 힘을 보탠다. 판사의 마지막 재판 장면에 마이클이 판사에게 한 말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브랜트는 완전한 똥 기저귀로 한 해를 보냈고 점수도 그걸 보여주죠. 하지만 저 숫자는 말하지 못합니다. 내일은 어떤 브랜트가 됐을지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전 시즌에 걸쳐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결국 엘리너와 친구들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그저 노력하고 성장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심지어 배드플레이스의 설계자였던 악마 마이클까지도. 어쩌면 시즌을 거듭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인물은 마이클이지 않을까. 수많은 인간을 고문하고 직접 배드플레이스를 설계한 악마였던 그가, 나중에는 인간들을 위해 사후세계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했으며, 결국은 스스로가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마이클이 <굿플레이스>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찾은 삶의 의미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성장'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걸까?


<굿플레이스>는 시즌 4 마지막 이야기를 통해 이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엘리너, 치디, 타하니, 제이슨은 '가짜 굿플레이스'에서 살았던 시즌1을 제외하고는 매 순간 '진짜 굿플레이스'를 가기 위해 노력했고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결국 그렇게 원하고 바랐던 굿플레이스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시나리오였다. 물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갔지만, 어찌 됐든 마지막에는 굿플레이스에 입성하리라 생각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 났다면 조금은 뻔하고 시시해서, 엔딩으로 오는 과정의 그 모든 일들이 허무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진가는 마지막 엔딩에서 드러난다.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굿플레이스조차도 그들에게 진짜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는 것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굿플레이스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유일한 결함은 무엇이었을까?


치디는 굿플레이스에서 그토록 존경하고 만나고 싶어 했던 고대 철학자 히파티아(리사 쿠드로 역)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엘리너와 치디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이론상으로 파라다이스가 맞아요.
모든 욕구와 필요가 충족되죠.

하지만 무한해요.
완벽이 영원토록 지속하면 사람이 멍해지고 둔해져요.

여기 도착해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모든 걸 하죠.
그러고는 할 일이 끝나요.
하지만 여전히 무한대가 남아요.

이곳은 재미를 죽여요.
열정도, 흥분도, 사랑도요.
남은 게 밀크셰이크뿐일 때까지.

- <굿플레이스 시즌4> 12화 '패티' 中 -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불과 10초 전에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한 채 밀크셰이크만 찾았고, 굿플레이스의 다른 사람들 역시 아무런 감정 없이 멍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엘리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행복 좀비'가 되어갔고, 굿플레이스는 엉망이었다. 누구보다 순수하게 본능적으로 살아온 제이슨마저 평생 꿈꿔온 일임에도 빠르게 싫증을 내고 말았고, 굿플레이스를 주관하던 위원회는 이미 도망갔다. 이 모든 것은 히파티아의 말처럼 무한히 남아있는 영원한 시간 때문.


인간은 아주 유한한 존재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 어느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으며, 어떤 무엇도 끝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한대의 세상을 꿈꾼다. 원하는 모든 것을 무한히 누릴 수 있고 영원한 삶이 있는 유토피아를. 엘리너, 치디, 타하니, 제이슨도 그런 곳을 꿈꿔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대로 '그들은 굿플레이스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영원한 삶을 거부하고, 사람들이 사후세계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굿플레이스의 주민들은 삶의 의미를 되찾았고, 활기찬 행복을 누리다 그 모든 것이 지루해질 때쯤 스스로 '진짜 죽음'을 선택한다. 자기도 모르게 지안유가 되어간 제이슨을 시작으로, 우리의 주인공들 역시 하나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마지막을 선택하는 대신 사후세계 설계자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타하니 역시, 결국은 모든 것의 끝을 맞이할 것이다.


인간은 다들 언제나 조금 슬프다고 했죠. 죽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인생에 의미가 생긴다고요.

- <굿플레이스 시즌4> 12화 '패티' 中 -

점점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한 마이클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 삶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죽음'이었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결국 인간의 삶을 완성하는 것은 죽음이며, 끝이 있기에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가고 성장하는 것 역시 그 끝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 당연하면서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인 것 같다. 엔딩을 맞이하기 한참 전, 시즌 3 중반부에 엘리너가 다짐했던 말도 이제는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말도 안 되는 이 특별한 곳에서 행복을 찾아야겠죠, 이 순간에." 엘리너는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자 이제 모두 떠나버렸으니, <굿플레이스>의 진짜 주인공, 마이클이 남았다. 그는 원래 수백 년 동안 인간을 괴롭혀온 잔인한 악마였다. 하지만 엘리너, 치디, 타하니, 제이슨, 그리고 재닛과 함께하면서 그는 점차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인간의 삶을 동경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평범한 인간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가 보여준 마지막 모습은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간의 삶이 가진 가치를 상기시키기 충분했다. 인간이 된 마이클은 엘리너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모든 인간과 똑같이 지내고 있을 거예요.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고, 친구도 몇 있겠죠. 맘에 안 드는 사람도 있고요.

혼자서 많은 것을 깨우치겠죠.
필요할 땐 도움을 구하는 법도 배우면 좋겠네요.

일을 망치고 다시 시도하고 또 망치고
뭘 잘못하기도 하고 그걸 치려고도 할 거예요.
다들 그러고 살아요.

- <굿플레이스 시즌4> 13화 '준비되면 시작해' 中 -.


길고 길었던 드라마 <굿플레이스>는 언젠가 끝이 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인생'을 살아가는 마이클의 인사로 끝이 난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 우편배달부가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네자, 마이클은 이렇게 말한다. "더 괜찮은 말이 있어요. 이렇게 말할게요, 내 친구. 내 심장의 모든 사랑과 우주의 모든 지혜를 담아서 천하게 지내요." 정말로 마음에 드는 엔딩이다. 어느 하나 찝찝한 것 없이 깔끔하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서 이전의 자유로운 일상을 잃어버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몇 달 전부터 코로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무료한 일상에 권태를 느끼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보게 된 <굿플레이스>는 내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선과 악부터 시작해서 인간관계의 문제, 사랑과 이별에 대한 고민, 성장을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까지. 신선한 소재와 참신한 스토리 속에 숨겨진 수많은 질문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이 들어와 있었다. 여전히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주제지만, 이 드라마와 함께 가벼운 듯하면서도 진지하게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엘리너, 치디, 타하니, 제이슨, 그리고 마이클과 함께 삶의 의미를 찾아 여행을 떠난 느낌이랄까. 이제 그들의 시간은 끝이 났지만, 나의 시간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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