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피트, 완벽해지다
<안녕, 헤이즐>이나 <나우 이즈 굿> 같은 나이와 상관없이 죽어가는 '시한부'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이나 혹은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넘어선 사랑의 아픔을 다루기에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고 눈물 바람을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데 이 영화 <파이브 피트>는 오롯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와 가깝다. 침울하지 않고 슬프지 않게 만들려는 감독의 고민이 느껴졌다.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스텔라(헤일리 루 리처드슨)는 폐 이식을 위해 병원에서 치료를 하며 지낸다. 병실을 자신의 방처럼 안락하게 꾸미고 자신의 병을 알리는 유튜버로도 활약하며 밝게 지내려 노력한다. 어느 날, 같은 병인 윌(콜 스프로즈)이 임상에 참여하기 위해 입원하고 둘은 첫눈에 끌린다. 다만 윌은 임상이든 치료든 어차피 죽음은 결정되어 있고 당장의 인생이 중요하다며 병원을 벗어날 궁리만 한다. 이 둘은 6피트 이하로 가까워지면 서로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끌리는 만큼 서로를 밀어내지만 결국 사랑은 단 1피트로 완벽해진다.
죽어 간다는 시한부란 그런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이다. 두렵고 억울하고 때론 가늠할 수 없는 상실감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로 채워진 삶을 매일 매 순간 마주해야 하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참담하고 슬프지만 그 속에도 삶이 있으며 그 또래만의 반항과 우정과 사랑이 있음을,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을 안타깝고 애처롭게 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죽음을 불사할 수 있는 사랑을 완벽하게 채우기 위해 1피트를 빼앗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사랑 앞에 모든 걸 버릴 수 있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마주는 인상 깊었다.
어쩌면 죽어가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놀이처럼 벌이는 다소 치기 어린 행동들이 마음 불편해하는 관객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죽어간다고 당장 죽은 게 아니라면 그 안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이 있음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쌓여 있는 약통에 어딜 가나 들고 다녀야 하는 숨통(산소 호흡기)에 벗어날 수 없는 병원 안에서의 삶이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해변으로 하늘로 세상 곳곳을 누빌 수 없다는 현실에서 매번 맛봐야 하는 좌절감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꿈꾸는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걸 보고있다면,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만지세요.
삶은 낭비하기에는 너무 짧으니까요."
이 영화는 시한부라고 할지라도 좌절과 슬픔에 매몰될 필요는 없고, 희망도 좌절도 포기도 상실도 사랑까지도 그 모든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전한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삶일지라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리고 멈추지 말고 터치(스킨십)를 통해 마음을 사랑을 전하라고 하고 있다.
죽음을 슬픔과 상실에 매몰되지 않고 밝고 기분 좋게 대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랑스러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