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가, 세상의 소리가
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놓치고 지났던 오래된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을 보았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다만 '인생'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 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시종일관 고민하던 시기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기사 그런 질문은 여전하고 답 또한 여전히 없지만.
그리고 또 하나 궂이 꼽자면 제목에 포함된 인생이라는 의미와 포스터에 나란히 서있는 세 인물의 상관관계다.
가족일까?라는 호기심과 함께 이들의 인생이 궁금해서다. 게다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주는 극적인 삶의 정점과 미련없이 꽃잎을 날려버리는 것이 삶의 단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리 보고 싶었을지 모른다.
슬픈 눈빛(나는 체념한 눈빛으로 보였다.)으로 달달한 단팥빵 '도라야키'를 굽는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는 작은 가게 안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여중생이 못마땅할 정도로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고교 진학을 하고 싶다는 말에 그런덴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핀잔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부모와 친구들에게조차 관심에서 멀어진 와카나(우치다 카라)에게 상처와 외로움은 일상이다.
이런 둘의 앞에 알바생으로 삶에 꽤나 적극적인 할머니 도쿠에(키키 키린)가 나타난다.
이 영화는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삶의 이야기를 듣는 도쿠에는 나병(한센병)이라는 이유로 오빠(가족)에게 버림받고 상처와 외로움을 삭인다.
그리고 우발적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있어야 했던 센타로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할 어린 와카나는 엄마의 무관심에 상처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듯 '각자 인생에 사연 하나쯤은 담고 살아간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아픔을 어덯게 치유하고 나누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미 과거의 일로 현재의 삶이 단절되는 일들이 조금은 부당하고 아픈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대인들의 모습일지도.
흐드러지는 벚꽃으로 삶의 절정을 지나 쓸쓸히 거리를 흩날리는 낙엽의 소리까지 말 그대로 각자의 삶을 관통하는 사연을 조용히 관망하게 만든다.
사장님, 아무 잘못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또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요.
이런 인생 이야기도 들려줄 걸 그랬어요.
도쿠에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센타로에게 전해준 편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감정에 무심했던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수다를 떠는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요, 우린 자유로운 존재니깐."이라고 충고하는 도쿠에의 밝은 미소에서 평생을 격리되어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서 센타로의 도라야키 가게에서 느끼는 자유는 가늠할 수 없다.
오래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