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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an 16. 2024

<라이즈> 공연 시작 전 남친의 외도를 목격했다

누구나 실수하고 좌절하며 또다시 살아간다. 매일 인생이 잘 풀린다면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란 말처럼. 실패도 자주 해봐야 한숨 돌리고 나아갈 기회를 얻는다. 틀리면 어떤가.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면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혹여나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서 길을 찾아가면 되고, 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들어서도 된다. 인간은 그리 완벽하지 않아 살아볼 만하다. 불투명한 원석을 매번 갈고닦다 보면 반짝이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재능, 사랑, 경력 무엇 하나 흠 없이 완벽했었다. 남부러울 것 없던 삶을 살던 26살 발레리나 엘리즈(마리옹 바르보)는 공연 도중 부상을 입고 슬럼프에 빠진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인생에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6살 때부터 시작한 발레는 엘리즈 자체였다. 20년 동안 발레 말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인생.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아 드디어 ‘라 바야데르’ 주연으로 일생일대의 꿈을 이룰 찰나, 추락하고야 만 것이다.     


하필이면 무대 등장 직전 연인의 외도를 목격해 집중력이 깨져버린 게 화근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재활하고 있지만 당장 얼마 후 있을 공연조차 불투명해졌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수술 밖에 답이 없고, 발레는 접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듣게 된다.      


일생일대의 슬럼프에 빠져 무기력한 날을 보내던 엘리즈는 머리도 식힐 겸 친구들과 브르타뉴로 떠난다. 친구 찬스로 아티스트 레지던스에서 케이터링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오랜만에 파리를 떠나 복잡한 마음도 정리하고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 영감을 얻고 싶었다. 잠시 날개가 꺾였던 엘리즈는 서서히 다시 날아오를 태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눈과 귀가 들썩이는 성장영화     

<라이즈>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썸원 썸웨어>로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신작이다. 20년 동안 무용에 관한 영화를 꿈꿔왔다던 감독의 숙원과 같은 영화다. 현대 무용가이자 안무가, 작곡가이기도 한 ‘호페쉬 쉑터’와 협업해 무용에 빗댄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피오 마르마이’와 ‘프랑수와 시빌’이 또다시 합류해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전작들과 공통점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과 도시의 상반된 공간 대비,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둔 메시지로 특유의 개그 코드와 긍정 기운을 선물한다. 전작이 좋았다면 약간의 변주를 준 성장 이야기에 흠뻑 빠질 것이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10년 만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장남, 가업을 도맡아 운영 중인 둘째, 형이 야속한 막내가 가업(와이너리)을 물려받는 과정을 펼쳤다. 먼지 쌓인 와인의 시간과 아름다운 사계절을 달콤 쌉싸름한 인생을 빗대며 명언이 쏟아냈던 영화다. <썸원 썸웨어>에서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섬세한 감정을 담았다. 쿨하고 시크해 보이지만 사실은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파리지앵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라이즈>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이 더해져 드라마틱 하게 전개된다. 진로 탐색뿐만 아닌, 소원했던 가족과의 관계도 개선되는 훈훈한 공감도 이끌어 낸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26세에 찾아온 시련은 작은 해프닝일 뿐. 뻔한 충고 같지만 실패는 어쩌면 인생 2막을 열게 될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올해 세운 계획에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될 것 같다. 제목 라이즈(Rise)처럼 바닥을 치고 힘껏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제2의 인생을 시재하려는 사람을 향한 응원으로 꽉 차있다. 진부한 메시지라 할지라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보며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영화다.      


발레와 현대무용, 힙합까지 티켓 하나 값으로 다양한 공연을 직관한 느낌이다. 파리 오페라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마리옹 바르보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무용수 메디 바키의 케미와 춤사위도 매력적이다. 오프닝과 클로징의 감각적인 음악이 인상 깊다. 발레하는 엘리즈의 모습에 힙합 스타일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신선한 조합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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