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Jul 18. 2024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복잡한 양가적 감정 충만


기상 악화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 공항대교, 100중 연쇄 추돌 사고로 갇힌 사람들은 어디로도 도망갈 수도 없어 패닉 빠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군사용 실험견 에코 11마리가 풀려나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마침 그곳에는 딸 경민(김수안)의 유학길을 배웅하던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이 있었다. 그는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인 안보실장 정현백(김태우)을 깍듯이 모시는 오른팔이다. 정원은 잔뼈 굵은 업무 스킬을 살려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침착하게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리 위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한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개의 위협은 물론, 통신 두절로 연락이 닿지 않아 오직 무전기에 의존해 움직여야 한다. 구출하러 온 헬기마저 추락해 유독가스가 퍼져 앞을 뚫고 나가긴 힘들고 다리는 붕괴 직전이라 고립된 상황이다.      


아쉬움을 상쇄하는 극한 연기력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가족, 재난, 스릴이 총집합해 여름에 어울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기대하게 했다. 팬데믹 이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한국 영화 시장의 과도기에 힘들게 개봉한 영화였다.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함께하는 재난 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생각하며 관람했다.     


시작은 괜찮았다. 특히 안개 낀 공항대교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화 <미스트>의 불안과 혼돈이 떠오르며 현장감도 배가 되었다. 공항을 가려면 건너야 하는 바다 위 다리는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전복하는데 성공적이었다. 라이브 방송을 하며 위험천만한 주행을 펼치던 유튜버의 차량으로 시작된 사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안개로 시야가 좁아진 가운데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모든 것들이 위험과 사투의 대상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공포는 커졌다.     


여덟 캐릭터의 사연도 빠지면 섭섭한 클리셰이기에 익숙한 통과의례로 받아들였다. 고구마, 발암, 빌런, 신파 서사가 등장해도 면역이 단단히 된 상태라 위화감 없이 지나갔다. 소원한 부녀 설정과 후반부 팀플레이는 재난 극복과 생존의 키워드가 가미되어갔다. 영화 <부산행>이 떠올랐다. 앞서 주유비 64,400원으로 얽힌 렉카 기사 조박을 맡은 주지훈은 반려견 조디와 유쾌한 매력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해 주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예수정)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려는 남편(문성근)의 희생, 유리 멘탈의 언니(박희본)와 강철 멘탈의 골프선수 동생(박주현)은 대비와 자매애를 오고 가며 활력을 더해 갔다. 비밀리에 신형 무기를 만들다가 실패한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원 양 박사(김희원)는 나사 빠진 불안함으로 긴장감을 쌓아갔다.     


복잡한 감정이 드는 영화      

인트로부터 어둡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살짝 맛본 터라, 영화 <괴물>이 떠올랐고 비밀 프로젝트의 흥미로움을 유발했다. 그러나 생체실험의 주체가 청와대임이 밝혀지는 순간 스토리의 맥이 빠져 버렸다. 실험견 에코의 움직임과 표정의 어색한 VFX는 몰입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총 11마리의 에코는 집단적, 산발적으로 나타나 위협을 가하지만 정작 무섭지 않다는 단점이 보였다. 살상 무기를 만들려다 실패한 개의 활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 위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건 역시 사람이었다. 사건의 진상을 알기 전 안보실장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 혈안 된 은닉 과정은 ‘이 상황에 저런 생각을..’이란 물음표가 떠오르기 충분했다.     


정원은 앞선 국민 피랍 구출 작전 회의에서 목숨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위에 두었던 인물이었다. 모두를 구할 수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 가장 이성적이고 실질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가 어떤 스타일인지 짐작하게 했다. 거칠 것 없이 승진했고 정현백의 아낌없는 신뢰를 받아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진실을 안 후 확연히 달라진 캐릭터는 당황스러웠다. 윤리적 딜레마는 다소 작위적이고 각성 과정이 투박하게 다가와 이입하기 힘들었다. 동화책 작가였던 아내와 사별 후 일에 매진하다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풀고자 한 노고도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영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캐릭터들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소비되기만 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여러 가지로 아쉽지만 아련한 영화다. 대자본과 스타급 배우의 출연, 최고의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 복잡하게 피어나는 양가적 감정이 큰 이유는 아마 故 이선균의 유작이기 때문일 거다. 완성도와 장르적 호불호를 떠나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배우 얼굴로 시작해 러닝타임 내내 극한 존재감을 채운다. 오랜 연기 경험으로 쌓아 올린 내공이 첫 재난 영화라는 약점까지도 상쇄하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딸을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관객을 향한 작별 인사 같아 복잡한 마음이 커졌다. 그의 노년의 얼굴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속상함이 배가 되었지만,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을 얼굴을 떠올리니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오기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엄마 둘, 아빠 셋인 소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