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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란제리 밀수 먹고사니즘

by 장혜령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이하= 보고타)은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박병장(권해효)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파산한 아버지(김종수)는 베트남에서 인연이 있는 박병장을 찾아 무작정 콜롬비아로 흘러 들어 왔다. 주문처럼 “콜롬비아는 미국으로 가는 톨게이트일 뿐이야”라고 말했지만. 결국 아메리칸드림의 실패로 정착하고야 만다. 고국에 돌아갈 시간만 기다렸지만 무능력한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김호정)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국희는 변해 간다. 빈민가인 1구역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6구역으로 올라가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사람은 국희뿐이었다.


콜롬비아 ‘의류 밀수’, ‘한인 이민 역사’의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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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국희의 12년을 빗대 모진 풍파를 겪으며 뿌리내리고 자생한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의 방식을 탐구한다. 대우에서 파견된 주재원, 주무관, 유학생 등 각자 계획과는 다르게 눌러앉게 된 사람들의 기억을 토대로 한다. ‘돈’을 벌어 금의환향을 꿈꿨지만 ‘돈’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는 눅진한 비극이 야심 많은 청년의 성장사로 펼쳐진다.


흔히 남미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단골 소재 ‘마약’ 소재를 배제하고 ‘동대문 란제리 밀수’라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를 끈다. 현지 상인, 세관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굳건한 입지를 다져간 한인사회의 역사와 그늘을 비춘다.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심으로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카르텔이 형성된다. 거기에 콜롬비아의 이국적인 풍광이 거친 공기에 사무쳐 조화를 이룬다. 고국에서 떠밀려 간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이전투구가 드라마틱 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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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리 잡지 못해 이역만리 보고타까지 온 동포끼리 서로를 믿지 못해 속고 속이는 배신과 암투가 벌어진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맥거핀으로 쓰인 ‘총’을 쫓기 위한 동력이다. ‘되는 일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혼란이 개성 강한 인물들의 충돌로 시너지를 뿜어낸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기회의 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고타의 실제로 자리 잡은 박병장을 현지인들은 철저히 이방인으로 생각한다. 앞에서는 웃으며 호형호제하나, 뒤에서는 호박씨 까는 형국이다. 이는 멕시코 민중가요 ‘라 쿠카라차(La Cucaracha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로 조롱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흥겨운 리듬 속에 멕시코 혁명에 담긴 구슬픈 애환의 역사와 가난한 농민을 은유하는 노래는 끈질긴 생명력을 품은 한인의 상징과도 맞물린다.


10대부터 30대까지 들여다본 한 인물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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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삶의 열정을 쏟는 치열한 사람들을 세세히 비추며 사람 냄새나는 이국적 풍광을 쫓는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나라 콜롬비아의 현지 생활을 이해하는 지표가 된다. 한국에서 콜롬비아는 ‘커피의 나라’이거나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란 대사로 알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최초 콜롬비아 로케이션을 담은 이색적인 풍경은 단연 볼거리다. 카리브해의 휴양도시 카르타헤나, 지중해의 섬나라 사이프러스 등을 담은 생생함이 살아 있다. 당초 올로케이션을 목표로 했으나 팬데믹으로 촬영 중단된 상황을 넘어선 송중기의 소년미가 프레임을 꽉 채운다. 한 남성의 얼굴에 굴곡진 한인 이민 개척사를 녹여냈다.


송중기는 최근 어둡고 스산한 현실을 그린 누아르, 피카레스크 장르 삼부작에 출연했다. <화란>, <로기완>, <보고타>로 이어져 ‘송중기의 청춘 성장 삼부작’처럼 보이는 이유다. 부모님과 낯선 땅으로 이민 온 19세 국희에서 출발해, 20대, 30대까지 선보였다. 촬영 당시 35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 다채로운 얼굴을 드러낸 한 인물의 존재감만으로 하드캐리 하는 이미지의 영화가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다.


[인터뷰] 국희 역의 송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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